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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kcmseoul  작성일  2008-04-11
 자료구분  주제어  주제어  이삭 줍는 룻
 내용

성경:룻기1:22-2:2                여호와이레(1)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 라는 뜻인 '여호와이레'는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 대신하여 바칠 번제 제물을 준비하여 주신 하나님을 경험하고는 감격과 감사에 겨워 고백한 말입니다(창세기22:13-14). 여호와이레는 우리 보다 한발 앞서 인도하시는 주 하나님을 보여주며 또한 우리의 삶이 여전히 의미를 가지고 전개됨을 확신시켜 줍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여호와이레로 역사하십니다. 여기에 나오미와 룻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Ⅰ. 보리 추수할 때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룻1:22). 나오미와 룻이 고향 베들레헴 땅을 밟은 시점이 보리 수확이 한참 이루어지고 있을 때입니다. 이게 뭐 그다지 그들에게 중요하냐고 반문하시려는지 모르지만 빈털터리로 돌아 온 그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희망적인 메시지입니다.

Ⅱ. 양식을 구할 수 있는 시기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룻2:2). 나오미와 룻이 고향에 왔지만 당장 먹고 살 끼니부터 걱정해야 할 처지입니다. 만일 그들이 돌아 온 시기가 보리 추수 시기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돈이나 양식을 꾸어다가 살아야 할 것이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구걸해야 할 절박한 입장입니다. 보리 수확 철이라는 사실은 그래도 풍성함이 도는 사회라는 것을 암시하여 줍니다. 그만큼 사람 인심도 각박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먹고살기 힘들면 인심이 흉흉해집니다. 형편도 여의치 않고 게다가 인정이 메마른 사회로 되어버리면 가장 크게 타격을 입는 계층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마땅히 일감도 없고 구걸도 여의치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나오미와 룻이 돌아 온 시기가 농한기나 빈궁기였다면  정말 삶이 힘들어 졌을 것입니다. 누구 하나 딱한 이들을 돌아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굶어 죽기 딱 알맞은 철입니다. 그런데 풍성함과 여유 그리고 인심이 훈훈한 시기인 보리 수확철입니다. 들녘엔 누렇게 익은 보리 이삭들이 넘실거리고 이곳 저곳 흥겨움에 콧노래를 부르며 바쁘게 보리 추수하는 사람들로 북적댑니다. 아울러 보리 수확철은 가나한 사람들에게도 행복한 시절입니다. 왜냐하면 보리 수확할 땅이 없어도 추수하는 곳을 따라 다니며 바닥에 흘려진 보리 이삭을 주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확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이삭은 하나님이 정하신 가난한 사람들의 몫입니다(레위기23:22).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추수 시 떨어진 이삭을 챙기지도 않았고 일부러 이삭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수확하는 밭을 따라다니며 떨어진 이삭을 줍기만 하여도 가난한 사람들은 풍성한 양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과부인 나오미와 룻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때마침 그들이 돌아 온 시기가 보리 추수철이기에 생존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오묘합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두 과부가 살 수 있는 길을 예비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빈손으로 돌아왔기에 자칫 굶어 죽을 수도 있으련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게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으로 그들에게 다가오셨습니다. 나오미와 룻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꼭 붙들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돌보십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보다 한 발 앞서 인도하시는 주 하나님이십니다. 왜 하필 하나님은 나오미와 룻을 보리 추수할 시기에 맞추어 돌아오게 하셨는가를 곰곰이 음미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룻기2:3-4                  여호와이레(2)

  때때로 우리는 뜻하지 않은 일을 경험할 경우가 있습니다. 우연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도 특이한 사건으로 기억 될 일을 경험할 때 과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은 주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와 인도하심에 새삼 놀라워합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이 나에게 닥쳐 올 경우 우리는 겸손히 주님의 손길을 느끼고 감사함으로 화답합니다. 평범한 우리네 인생 여정은 뜻하지 않았던 주 하나님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다양하게 전개됩니다. 결국 인생은 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현장입니다.

Ⅰ. 보아스의 밭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3절). 본문에서 '우연히'는 히브리어로 '    '(미크레)인데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발생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먹고살기 위한 식량을 얻기 위해 시어머니 나오미의 허락을 받고 룻은 이삭을 주우러 밭으러 나갔습니다. 룻의 관심은 오로지 땅에 떨어진 보리 이삭을 많이 줍는 것입니다. 누구의 밭에서 이삭을 주울 것인가에 대하여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양식을 얻는 일이 당면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룻이 추수하는 일꾼을 따라다니며 바닥에 흘려진 보리 이삭을 줍게 된 밭은 다름 아닌 가까운 친척인 보아스의 밭입니다. 일부러 룻이 죽은 시아버지의 친족 중에 속한 밭들이 어디인가를 눈여겨보고 찾아다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룻에게는 관심 밖입니다. 그런데 애초부터 룻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시작됩니다. 성경은 이러한 상황 전개를 룻이 우연찮게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Ⅱ. 보아스의 등장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4절 상반절).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보리 이삭을 줍고 있을 그 때에 밭의 소유주인 보아스가 현장 독려 차 찾아옵니다. 너무도 절묘하게 타이밍이 맞추어져 갑니다. 보아스가 룻이 자기 밭에서 이삭 줍는 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 온 것 아닙니다. 보아스는 단지 보리 추수 현장을 살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일하는 추수꾼들을 격려하고 상황이 어떻게 되어지고 있는가가 궁금하였기에 밭으로 나온 것뿐입니다. 밭의 주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룻의 얼굴을 보기 위해 밭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필 룻이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을 때 보아스가 밭에 나왔나 하는 점입니다. 단지 우연으로 돌리면 되나요?

Ⅲ. 보아스의 눈에 띔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 줍고 있고 그리고 때맞추어 보아스가 도착합니다. 그런데 상황은 그것으로 종결되지 않고 새로운 국면으로 펼쳐집니다. 바로 보아스의 눈에 룻이 뜨였다는 사실입니다.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뉘 소녀냐?"(5절) 가난한 사람들이 밭에서 이삭 줍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고 추수 때면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는 흔하고 평범한 광경입니다. 그러기에 늘 그러했듯이 이삭 단 사이에서 허리를 굽히고 부지런히 떨어진 보리 이삭을 줍고 있는 룻을 보고도 가볍게 생각하여 어느 가난한 젊은 아낙네가 이삭 주우려니 하며 무심코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별 생각 없이 지나 갈 수 있는 일이 오늘따라 유난히 보아스의 관심을 끕니다. 이름 모를 젊은 아낙네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갑니다. 누굴까? 알고 싶어집니다. 결국 감독하는 종을 불러 확인하려 듭니다. "이는 뉘 소녀냐?" 참 신기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룻이 행한 발걸음 '우연히'는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보아스가 행한 '마침'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보아스의 눈에 룻의 모습이 띠인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들보다 한발 앞서 행하시는 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진행되어진 주님의 역사요 시간입니다. 나오미와 룻에게는 분명히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으로 역사하심을 보여줍니다. 보리 추수시기에 돌아오게 하시고 그 때를 나오미와 룻을 위하여 크게 역사하실 기회로 만들어 가신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삶을 여호와이레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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