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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6-19
 제목  마틴 로이드 존스(Martin Lloyd-Jones, 1899~1981)
 주제어  로이드 존스 [영국] [목사] [설교가] [청교도]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로이드 존스는 웨일즈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14세까지 자랐다. 그의 가족은 그 후 런던으로 이주하였으며, 로이드 존스는 그곳 런던에서 약학을 공부하고 25세에는 영국에서 제일 우수한 외과의가 되었다. 로이드 존스는 그밖에도 M.R.C.S.와 M.R.C.P. 그리고 M.D.(이것은 그가 런던대학교에서 받은 약학박사 학위로서 그가 ‘박사’로 알려진 이유이다) 등을 포함한 몇 개의 의과 학위를 수여 받았다. 그러면서 그는 눈부신 사상가요 웅변가였다.

 

 

■ 그리스도 외에는 
 
영국 테이피 밸리(Teifi Valley)에 있는 뉴캐슬 엠린(Newcastle Emlyn)의 도시 밖에 있는 웰쉬 웨일즈(Welsh Wales) 마을 중앙에 있는 교회 뜰에는 한 무덤이 있다.

그 무덤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마틴 로이드 존스 1899년 - 1981년 :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마틴 로이드 존스(David Martyn Lloyd-Jones) 목사(1899-1981)는 청교도 혁명의 후예이며 20세기 영적 거인이라 불린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1921년 내과 전문의 의학박사로 화려하게 출발하였지만 진정한 영적 의사의 길을 걷게 된다.

로이드 존스의 말씀은 웨스트민스터의 채플에서 행하여 졌는데 2000여 명의 성도들이 성경과 노트를 가지고 운집하였다. 특히 금요일마다 열리는 성경학교에서는 1200명 이상의 대학생들과 신학생들이 성경 강해를 경청했다.

그의 첫 목회시절(1927-1938)의 설교는 전도설교였다. 그 당시 영국 교회들이 일상적으로 기독교를 단순히 인정하고 있었으며 그 결과 복음이 지니는 놀라움이나 능력에 대한 확신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쇠퇴해가고 있었던 시기였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구원에 대한 실제적인 경험을 강조했다. 명목뿐인 기독교를 경고했고, 복음의 능력을 강조했다. 그의 복음주의적 전도와 설교는 모든 사람들을 해갈시켰으며 비 진리에 오도되어 중독된 영혼들에게 완전하고 시원한 해독제였다.

자유주의 신학이 점점 침투해오는 시기에 로이드 존스 목사는 성경은 정확무오한 진리의 유일한 원천이며, 마지막 선을 그어주는 재판장임을 밝히며, 복음의 역사를 선포한 인물이다.

한편 그의 후기사역에는 초 교파적인 복음전파사역이 진행되었다. 그는 복음주의자들에게 '세상과 타협함이 없이 언약을 굳게 잡고 인간의 유일한 대답인 성경의 복음을 두려움 없이 선포하며 성령의 능력 앞에 하나될 것'을 촉구했다.

"인간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 사도 바울도 혼자 힘으로 단 한 영혼도 변화시키지 못했으며, 그는 단지 하나님의 대리자였던 것입니다. 부흥은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주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는 기독교는 미미한 종교가 아니라 살아서 약동하는 실제적인 생명임을 곳곳에 전파했다.

20세기 교회 안팎은 혼란과 혼돈으로 기독교 신앙은 의심받고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인간으로 전락하고 있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신비주의, 지식과 윤리, 사회개혁으로 치닫던 교회의 변화 속에서 로이드 존스는 복음을 고수하며, 신학적인 논쟁과 성경을 부정하는 자들에게 사실적인 성령의 능력을 선포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될 21세기 전도캠프시대에 전도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과거 복음주의의 깊은 성화된 뿌리와 역사를 로이드 존스를 통해 살펴보며, 그 바탕을 가지고 새롭게 갱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를 소개한다.


■ 어린시절과 학창시절

마틴 로이드 존스는 1899년 11월 20일 영국 웨일즈 동남부 해항에 있는 카디프 도날드 스트리트에서 아버지 헨리 로이드 존스와 어머니 매기 로이드 존스의 사이에 3형제(형은 헤롤드, 동생 빈센트)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잡화상을 하던 아버지 헨리는 천성적으로 낙천주의자였고, 영예심이 아주 강하고 곧은 사람이었다. 헨리는 16세기말과 17세기에 영국에서 발생한 회중교회에 관심이 많았으며 기독교의 최선의 일은 교육과 사회적인 행동을 통하여 사회변혁을 성취하는 것이라며 교회 연합을 제창하기도 했다.
어머니 매기는 철저한 영국국교도인으로 성품이 매우 관대하고 마음이 여리고 감정에 약한 사람이었다.

1906년 로이드 존스 가족은 카디간 주의 랭게이토의 마을로 이사하였고, 마틴은 이곳에서 1910년 1월이 되기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지냈다. 마틴은 11세가 되기 전 책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고, 당시 마틴의 교사들은 축구와 여러 놀이에 빠져있는 마틴을 향해 중학교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1911년 마틴은 트리가론의 읍내 중학교 시험에 차석으로 합격하였다. 트리가론의 읍내의 학교에서 새로운 중학생활을 적응해 가면서 1913년 마틴은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마틴은 별탈 없이 트리가론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내던 중 1914년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움이 닥쳐 세 아들은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를 도와 우유배달을 해야만 했다.

마틴은 이때 새벽부터 우유를 배달하며 삶의 훈련을 받았다. 1915년 다시 학교로 돌아가 마틴은 의학공부를 다시 할 것을 결심했고, 그 후 런던대학에서 실시하는 고등학교 시험에 합격하여 1916년 성 바돌로매 병원에서의 의학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 의학생 시절과 회심

성 바돌로매 병원은 성 바울 가(街)에서 가까운 런던의 옛도시에 위치해 있었고, 1123년 라헤리라고 하는 한 수도사인 그리스도인에 의해 세워져 1923년에는 런던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메디칼학교를 확보한 곳이었다. 마틴은 이곳에서 그의 의학 수업 제1단계 목표인 M.R.C.S.와 L.R.C.P. 학위를 1921년 6월에 얻었다.

한편 마틴은 복음전도에 관심이 많았던 채링크로스 교회(피터 휴즈 그리피쓰 목사)의 주일학교부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틴은 그때를 "아주 여러 해 동안 사실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전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때에도 나는 교회의 멤버였다"라고 회상했다.

이후 마틴은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교회당을 가득 메웠던 윌리암스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정기적으로 찾았고, 마틴은 점차 사람에게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이 있다는 '죄'에 대한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특히 마틴은 자기의 주임교수인 호더를 따라 이스링톤의 가난한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할 기회가 있었다. 호더는 환자들에 대한 병력을 기록하는데 "너무 많이 먹는 것이 문제", "너무 많이 마시고 있음" 등의 비슷한 논평을 적고 있었다.

그때 마틴에게 강하게 부딪혀 온 것은 그 논평이 의학적인 것도 아니고 지식적인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도덕적인 빈궁과 영적인 공허감이었다. 마틴에게 그러한 모습들은 에스겔이 본 골짜기의 환상에 나타난 마른 뼈들의 모습이었다. 사람의 욕심 자체에 무언가 잘못이 있음을 간파하기 시작한 그는 후에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내가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임을 깨닫게 하셨고, 내가 세상의 노예이며, 마귀의 노예이며, 육신의 노예였음을 알게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했다.


■ 의사에서 목회자로 
 
마틴 로이드 존스가 세상에 대해 분석하면서 깨달았던 것은 자기 자신의 죄악성이었다.

사람의 욕심 자체에 무언가 잘못이 있음을 간파하기 시작하였다. 그 모든 것들이 바로 그 죄라는 질병의 모든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성경과 그의 체험을 통해서 자기는 하나님에 대하여 실제 죽어 있으며 그는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의 지배적인 원리를 발견하였다.

1924년과 1925년(25-26세) 로이드 존스는 채링 크로스 가에 있는 채링 크로스 채플에서 두 번의 연설을 하게 되었다. 그는 문학과 토론을 위한 공회 모임이 열리는 금요집회에서 '시대의 표적들'이란 제목을 내걸고, 웨일즈의 영적 궁핍과 텅 비어 가는 당시 교회의 상황, 설교로 정치를 하는 목회자들 등을 비판하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25세의 젊은 의사의 이러한 연설은 당시 복음이 희미해져 가고 있는 웨일즈의 각계 각층의 사람들에게 충격을 일으켰고, 여러 가지 호응과 비판의 반응을 자아내게 했다. 로이드 존즈는 의학계의 매력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그 강력한 힘이 자신을 끌고 있음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 목회의 소명

로이드 존스는 자신의 직속 스승인 호더의 방을 사용할 정도로 이미 바돌로매 병원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지만 목회의 길로 향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갈등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만일 말하는 수완이나 다른 사람을 듣기 좋게 하는 능력이 로이드 존스에게 목회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한 전부였다면, 그는 의학의 직업을 떠날 결심을 굳혔을 것이다. 그러나 어려움은 그가 목회로 전향하겠다는 결심이 하나님의 분명한 소명으로 되어지는 일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많은 고민 끝에 현재의 위치에서 의사 직분을 고수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1926년 어느 초여름 그의 친구 윌리암스 부부와 레스터 광장에 나갔을 때였다. 많은 군중과 현란한 광장 속에서 로이드 존스는 구세군 밴드가 연주하는 찬송가를 들으며 '바로 이 사람들' 이야말로 나의 사람들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찬송가는 그를 항상 따라다니던 세상과 하나님의 일에 대한 주제를 내포한 노래였다.

그가 또 목회의 길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바돌로매 병원의 주임교수들 중에 유명한 축에 드는 의사가 자신과 가까운 친구관계에 있던 부인이 아무 이유도 없이 죽었을 때 의사로서 어떤 힘을 쓸 수 없는 허무감에 빠진 모습을 보았을 때였다.

"아무리 많은 질병의 고통이 덜어진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죽어야 하는 것이다.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사람들로 죽는 것이다. 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먼저 화해하지 아니하고는 그런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때 그는 사도 바울이 말한바 "나는 헬라인이나 야만인에게 다 빚진 자라"(롬1:14)는 말씀을 깨닫기 시작했다.

로이드 존스는 1924년부터 채링 크로스에서 주일학교 반을 맡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1925년 후반에는 채링 크로스의 절제회에서 이미 목회에 대한 결심을 하고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기독교는 단순하게 사람을 개선하는 것의 차원을 넘어 생명을 완전히 살리는 성경의 말씀에 대해 밝혀가고 있었다.


■ 샌드필즈에서 사역의 시작

"설교의 의무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찾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1927년 1월 로이드 존스는 베단 로이드 존스와 결혼을 한 뒤 그해 2월 애버라본 샌드필즈 베들레헴 선진운동 홀 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다. 그는 어떤 프로그램으로도 교회를 이끌어 가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 서기는 여느 목회자들과는 다른 로이드 존스에게 놀라기 시작했다.

그는 주일 설교에서 "교회는 세상에 가까워짐으로써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참된 생명과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권을 나타냄으로써 전진해 나가야 한다. 근본적인 요청은 교회가 자신의 참다운 본질을 다시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밝혀가기 시작했다.

한편 로이드 존스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많은 젊은이들에게 "여러분은 복음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믿음에 대하여 스스로 자문해 보십니까? 여러분의 믿음에 대해 확신합니까?"라는 질문을 하며 그리스도인에 대한 능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 부흥

"부흥을 창조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마십시오. 부흥이란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부흥이 가장 늦게 찾아오는 교회는 부흥하려고 노력하는 바로 그 교회입니다."
1929년부터 1931년까지 로이드 존스가 샌드필즈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 주저앉았던 많은 옛 교인들과 교회 밖의 영혼들이 교회로 찾아왔다.
로이드 존스 부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 당시 샌드필즈 지역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는 실제적인 가난보다는 술 문제였다고 한다. 부두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으면서 때로 술을 덤으로 대신 받기도 했다. 이들은 술을 먹지 않기 위한 대안으로 로이드 존스의 사택 현관으로 찾아와 술을 맡겨 로이드 존스의 집에는 술이 가득 차기도 했다.
한편 애버라본에서 유명했던 영매(靈媒)가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생계수단을 포기하기도 했고, 지역에서 가장 평판이 좋지 않던 청년들이 그리스도로 변화되어 새 삶을 얻기도 했다.
'News Chronicle'의 남웨일즈 특파원인 그리피쓰 존스는 샌드필즈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흥에 대해 '영혼의 의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애버라본의 샌드필즈 지역은 빈민가였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황폐했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천대받으며 사는 듯한 이 지역은 희망이 없는 듯 해 보였다. 이러한 황량한 작은 세계에 젊은 의사 목회자가 들어왔다. 그는 이 지역을 절망의 늪에서 건져내려고 복음의 소망을 주었다.
기독교는 단순한 하나의 우화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살아가는 하나의 삶이다!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은 500명을 넘어섰다. 이미 믿던 사람들과 구원받지 못할 죄인으로 여기던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바자회나 세속적인 연극들이 그 교회에서 행해지지 않는다. 다만 구원의 위대한 드라마만이 연출되었다."
그러나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러한 기록들을 향해 '나에 대해서 말하지 마시오. 내 구주에 대해서만 말하시오'라고 말할 뿐이었다.


■ 북 웨일즈에서 북미까지

"오늘날 전체 비극은 세상이 마귀의 손에 사로잡혀 있는데 기독교회는 느리고 답답하고 거추장스럽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1930년대 초반부터 로이드 존스는 북웨일즈 지역의 앵글시(Anglesey), 렉스헴 근처의 로스 지역 등 여러 지역의 초청으로 순회 설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여러 지역을 순회하면서도 로이드 존스는 끊임없이 목회사역에 대해 연구를 하였고, 깊은 심중으로 말씀을 묵상하는 것에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한편 로이드 존스는 정신적 질병에 시달리는 영혼들 하나 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사역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스도인이었다가 순간적인 실패와 좌절 속에 '죄책감'에 사로잡힌 사람들, 노이로제, 스트레스에 걸린 사람들 등 '정신적 불만'이라고 의사들이 진단해 놓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순전히 영적인 도움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들에게 구원의 확신에 대한 참된 기초를 말해주기 시작할 때, 그처럼 무섭게 거칠던 사람이 차츰 어린아이처럼 평정을 되찾게 되었다. 이러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신하고 다시 분명히 설 때까지 로이드 존스는 지속적으로 그들과 만남을 가졌다.

1932년, 로이드 존스는 캐나다 토론토의 쉐르본 가에 있는 연합 장로교회의 초청을 받아 9주일 동안의 집회를 갖기도 했다. 이후 로이드 존스는 미국을 처음 방문하여 차우타우콰 학회(Chautauqua Institution)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이곳은 원래 주일학교 교사들을 돕는 목적으로 시작된 단체였으며 철저하게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곳이었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르면서 문학, 드라마, 연주회 같은 것이 주로 진행되며 복음과는 상관없는 듯 변해갔다.
로이드 존스는 30명이 채 안 되는 목사들이 모인 이 회관에서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18:9-10)'는 확신을 가지고 복음의 해방감과 능력에 대해 힘있게 설교를 했다.
이후 5일째 마지막날이 될 때 차우타우콰 회관의 6000석의 좌석에는 보기 좋게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 참고고리 :  마틴 로이드 존스, 그 삶과 설교 - 진정한 기독교 ...

                     로이드 존스 저작 목록  

                     마틴 로이드 존스의 생애와 사상

                     마틴 로이드-존스 박사의 목회

                     20세기 최고의 설교자 로이드 존스 -웨스트민스트 사역(1938-68)

                     로이드 존스의 성령세례

>> 연결고리 : 설교, 목사, 영국, 청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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