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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6-06-01
 제목  마틴 로이드 존스, 그 삶과 설교 - 진정한 기독교
 주제어  [설교학] [영국] [목사]
 자료출처  활천, 손동식  성경본문  
 내용

손동식
서울신학대학 신학과(B.A)와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학과(Th.M)를 졸업한 후
공군군목과 총회교육국 장년부 간사로 사역하다
현재 영국의 런던 바이블 칼리지에서 찰스 스펄전,
마틴 로이드 존스, 존 스토트의 설교를 연구하고 있다.


 

며칠 전 아침 유럽 크리스천 한인신문의 전면을 장식한 이 요란한 기독교 광고를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도 단순히 한 교회에서 하는 이벤트성 기도회가 아니라 유명한 부흥강사를 모시고 독일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메인 스타디움에서 개최되는 거국적(?) 기도회라 더욱 그러했습니다. 새로운 화젯거리를 찾는 매스컴의 특성상 이 기도회가 교회주관으로 열린다는 유별난 사실이 해외 토픽감으로 보도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 형평성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축구 외에 얼마나 많은 스포츠 종목을 위해 교회가 기도회를 가져야 할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크고 작은 사회문제로부터 운동경기의 승리까지 세상의‘모든 짐’을 기꺼이 떠맡고자 하는 교회의 선한 동기야 이해되지만, 그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이 종국적으로 교회의 고유한 존재가치와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또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언젠가 어느 중진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타깃을 잃어버린 한국교회’라는 화두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긴급한 질문

로이드 존스는 사도행전 설교를 통하여 오늘날 기독교가 무엇인가라는 것보다 더 긴급한 질문이 없음을 전제하면서, 현대의 가장 큰 비극 중 한 가지는 복음이 무엇이며, 교회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관해 깊은 혼란 속에 빠져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더욱 혼란스러운 사실은 이러한 혼란을 초래한 장본인이 바로 교회 그 자신이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그는 ‘본질적으로’ 기독교가 이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혹은 고상하고 긍정적인 삶에 도움을 준다거나 또는 행복해지거나 병 낫기 위해 믿는 어떤 것이 아님을 지적합니다. 또한 기독교는 단순히 정치에 적용해야 할 이념도, 도덕적인 행동도 아님을 지적합니다. 그는 만약 기독교가 단순히 철학이나 정치적 이념에 불과하다면 아무도 이를 믿을 의무가 없을 것임을 역설합니다. 그저 이 사람은 이것을 믿고 저 사람은 저것을 믿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기독교

로이드 존스는 교회가 무엇이며, 기독교가 무엇인지 바로 알기 원한다면, 이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처음으로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무엇을 했는지를 발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권위를 가지고‘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기독교이며 교회는 이런 일을 해야 한다’라고 선언한다면 ‘그것이 교회가 태동한 사도행전이 말하는 것과 일치하는가’라고 물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는 곧 사도 누가가 기독교와 예수에 관하여 데오빌로에게 보고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 그것은 단순한 인간 소원의 성취나 행복이 아니라, 예수라는 인물이요 역사임을 강조합니다. 곧 우리가 대면하는 것은 우리가 믿는 바가 아니라 바로 사실들(facts), 곧 예수라는 인물께서 행하신 일, 그것임을 강조합니다.

여기에서 로이드 존스는 우리가 먼저 주목할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니라 그가 행한 일임을 강조합니다. 물론 양자가 반드시 같이 가야 하지만, 사도행전에서 보듯 교회는 먼저 예수의 행하심, 곧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에 집중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로이드 존스에 의하면 기독교는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여신 하나님의 행동이요 메시지입니다. 곧 기독교의 메시지는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기 이전에 예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말해주는 그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도행전을 통해 보아 알 수 있듯, 인간의 행동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성령이신 하나님을 통하여 행해지는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와 사도들의 설교에서 명확히 드러나듯 그들의 주요한 임무는 그분이 행한 일들에 대한 증인(행 1:8)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로이드 존스는 기독교가 그토록 짧은 시간에 로마제국 전체를 흔들어 놓은 것은 그들이 전한 것이 정치사상이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개선의 메시지이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가 죽인 바로 그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사실’과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는 바로 그 ‘복음’이었음을 강조합니다.

 

기독교는 유효한가

로이드 존스는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 기독교 복음을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도덕적 적용, 혹은 다른 사회운동이나 사람을 즐겁게 하는 종교 버라이어티 쇼와 같은 심리적 요소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그리고 그는 고대세계와 달리 과학과 의학, 교육의 진보와 또 다른 정치적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케케묵어 보이는 기독교와 복음이 여전히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대응합니다.

첫째, 인간 자신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곧 인간은 고대인과 달리 선진화된 지식과 고도로 발달된 과학문명을 자랑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인간환경의 외적변화에 불과하며, 하나님 앞에 죄인 된 인간의 정황은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곧 고대인이 시간당 4마일을 가고 현대인은 동일한 시간에 수십 배의 빠른 속도로 간다 할지라도 인간의 정황과 죄의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도 변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곧 심판과 구원의 하나님의 속성 또한 동일합니다. 로이드 존스는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는 인간 자신도 아니며 피상적 행복도 아니며, 궁극적으로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임을 강조합니다.

셋째, 복음은 인간의 상황과 문제를 가장 잘 처리할 수 있는 이 세상의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특히 복음주의 교회가 사회문제에 대해 실패했다는 비난은 역사의 사실에 무지하거나 의도적으로 그런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강조합니다. 곧 그는 지난 교회사를 통해 볼 때 하나님의 거룩한 부흥과 영적 각성이 있었던 시기가 음주, 도박, 부도덕, 이혼 등 죄로 인한 사회적 문제들이 그 어떤 사회 운동보다 가장 효과적으로 다루어졌던 시기임을 강조합니다.

로이드 존스는 교회의 우선적이며 고유한 임무는 사회와 인간의 병적 ‘증상’ 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통하여 병의 ‘근원’ 을 치료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곧 교회는 표면적인 ‘죄행’ 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통하여 죄의 근원을 치료합니다. 만약 그가 복음 자체가 가지는 생명력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가진다면 기독교가 외치는 복음과 영혼구원은 비사회적이라기보다 어찌 보면 더욱 사회적이며, 더욱 근원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반드시 삶의 전인적 변화를 가져오며 궁극적으로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오늘날 교회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지고 세력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사회적 영향력이 감소한 것은 세상에서의 교회의 파워나 정치적 세력이 약해서라기보다 복음이 가진 그 영광스러운 능력에 대한 피상적 이해와 교회의 순결성 결핍으로 인한 교회의 참된 권위의 상실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세상의 유일한 소망, 교회

로이드 존스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미있는 일이 아니라 진리이며, 오늘 교회는 사도행전의‘그 교회’로 돌아가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강단에서 선포되어야 하는 주요 메시지는‘긍정의 힘’(Your best life on)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는 성령의 능력이며, 사람의 감정과 증상을 일시적으로 치료하고 위로하는 심리학이 아니라 근원을 치료하는 ‘그 복음’이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모델로 삼아야 하는 리더십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세상 CEO의 리더십이 아니라 영혼을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의 ‘그 리더십’ 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오늘 이 불확실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복음만이 타락해져가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희망이며, 이 위대한 복음을 가진 그 교회야말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세상의 유일한 소망임을 확신하는 것”임을 역설합니다. 마지막으로 로이드 존스는 기독교회의 고유하고 영광스러운 사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찼던 조지 휫필드를 인용하며, “그가 설교할 때에 거의 변함없이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고 역설하면서 오늘의 설교자들에게 가슴으로 조언합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정죄 아래 있으며, 꾸짖음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나는 내 자신이 꾸짖음을 받아야 한다고 솔직히 고백합니다. 왜 오늘날의 설교자들은 과거의 위대한 설교자들이 그렇게도 자주 그러했던 것처럼 감동받지 않습니까? 진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까? 우리는 그 진리에 의해 사로잡히고 그것에 의해 겸허하게 되며 감격함으로 마침내 놀라움과 사랑과 찬양에 푹 잠기게 됩니까?”


 아, 내 안에 그 복음이 없다

 

 

몇 해 전 공군군종목사로 어느 한 교회를 섬기다 전역으로 사임하던 마지막 주일, 부족한 저희 부부를 위하여 흘려주시던 성도들의 눈물로 인해 부끄럽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를 포함한 지난 교회사의 위대한 설교자들의 설교와 삶을 연구하며 오늘에서야 느끼는 뼈저린 후회 한 가지는, 그들에게 성실하게 말씀을 강해하려 노력했지만, 그 귀한 복음을 ‘성경적으로’ 교인들에게 충분히 설교했던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갖는 그 심각성과 중대성을 고려할 때, 이것이야말로 설교자의 우선적 메시지가 되어야 하지만 예배에 참여하는 교인들은 당연히 그리스도인일 것이라는 편견으로 양육에 집중한 나머지 그것이 부차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 이러한 결과들은 목회자로서 복음에 대한 저 자신의 피상적 이해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연구하며 얻은 가장 큰 유익 중 한 가지는 신학교와 목회현장 속에서 막연히 다‘떼었다’고 믿었던 위대한 복음의 영광과 그것에 대한 저 자신의 무지, 그것이었습니다.

 

희귀한 복음설교

로이드 존스는 그의 많은 설교집 중『로마서 강해』만 100만 부가 팔릴 정도로 세계적인 강해설교가이지만, 그의 설교 메시지의 주요한 특징 한 가지는 그의 설교들 대부분이 철저하게 ‘복음’ 그자체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의 사역 중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한 가지는 그가 일생 동안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복음설교’를 행했다는 사실과, 종종 자신의 휴가기간 중 많은 시간을 자신의 고향인 웨일스의 산악지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그토록 복음설교에 집중했던 이유 중 한 가지는 그 자신이 교회사의 위대한 부흥 중 하나인 웨일스의 부흥 이후 남웨일스 그리스도인 두 번째 세대 중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고향에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있은 후 발생한 덜 유익한 사실 중 한 가지는 목사들이 자기 회중 모두 다 구원을 얻었다고 가정하는 경향을 갖게 됨으로 복음설교를 멀리하는 경향이 일어난 것임을 지적합니다. “뒤에 나는 내가 참으로 죄를 지적하는 복음설교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음을 발견하였습니다. 나는 정해진 여러 가지 질문들에 바른 대답을 했기 때문에 교회에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경험적인 의미에서 질문을 받거나 검증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오기 때문에 그들이 그리스도인일 수밖에 없다거나 혹은 그리스도인의 자녀는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가정하는 경향은 아무리 혹독하게 비난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부친이 아마 한 번도 진정한 의미에서 복음을 듣지 못하고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통탄하였습니다.

성경과 지난 교회사를 관통하는 복음에 대한 그의 탁월한 통찰과 조언 속에 새로운 과도기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교회와 중생을 필두로 사중복음을 기치로 내세우는 저희 성결교단이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반쪽복음의 위험

첫째, ‘복음’이 설교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는 우리의 강단에서 복음이 참으로 설교되는가에 관하여 실제적인 시금석 하나를 제시합니다. 곧 설교자가 복음을 설교할 때, 그 메시지에 반대하여 일어나는 청중의 도전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당신은 거듭나야 한다”라는 복음의 메시지는 우리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전제하며, 그것은 또한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임박한 진노 아래 있는 몹쓸 죄인임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는 철저하게 우리가 의지하고 자랑하는 우리의 선행과 도덕, 그리고 우리가 의지하는 우리의 의와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타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죄사함 받으라” 는 복음이 만약 정확하게 제시되었다면, 보편적으로 그것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아주 불쾌하게 만듭니다. 그런까닭에 복음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 언제나 거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영리하게’ 설교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세상의 영웅으로, 혹은 교사로, 개혁가로, 혹은 우리의 고통을 제거하는 분으로, 혹은 단순히 사랑하라는 가르침만으로 제시한다면 세상은 그를 거부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이 원하는 그들의 구세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교자가 만일 그를 참되게 전하면, 그리고 복음이 정면으로 선포되면,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존 웨슬리, 조지 휘필드를 비롯한 교회사의 예에서 보듯, 자연인의 거부와 조롱을 일으키게 됨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설교자는 기꺼이 복음을 위해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조언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롬 1:16).

 

회개 없는 복음

둘째, ‘죄와 회개’ 가 설교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오늘날 이 시대의 가장 위험한 가르침 중 한 가지는 “회개에 관하여 염려하지 말라” 는 것임을 지적합니다. 곧 회개는 나중 문제이며, 그저 예수를 믿을 결심을 하고 단순히 서명하거나 등록하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의 첫 단계라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현대교회의 약함의 근원적 이유이며,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기쁨을 인식하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임을 지적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죄인이며 하나님에 관하여 그릇된 관계를 가진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의 필요성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로이드 존스는 올바른 복음의 제시는 바울과 사도들과 교회사의 거인들의 방법처럼, 하나님의 진노와 죄인 된 인간의 본질로부터 시작하여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라는 복음의 핵심으로 발전해 나가야 함을 강조합니다(활천 4월호 참조).

 

성급한 결신의 압박

셋째, 성급한 결신 압박의 위험입니다. 로이드 존스는 오늘 교회의 당면한 위험 중 한 가지는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려는 열심에서 피상적으로 복음을 전달하고 사람들이 들은 어떤 것에 관하여 단순히 “예” 라고 대답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지적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많은 전도집회에서 발견되는데, 복음에 관하여 충분히 소개하거나 설명하지 않은 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단순히 권면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라고 묻고, 그들이 또한 “예” 라고 말하면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혹은 단순히 앞으로 나오기만 하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적합니다. 또한 종종 앞으로 나온 사람들은 정확히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 그리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에 관한 올바른 이해 없이 나오는 경우가 많음을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그에게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라고 물으면 그 사람은 종종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 저는 잘 모릅니다. 내가 들었던 것은 그저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내가 믿었다는 사실입니다.”로이드 존스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한, 무엇을 믿든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신의 태도야말로 위험천만한 내용임을 지적합니다.

 

복과 복음 사이

마지막으로, 우리의 복음전도는 올바른가 하는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는 “당신이 기독교를 믿으면 행복해질 것입니다” 혹은 “예수를 믿으면 병이 낫습니다” 라는 호소로 일관한다면 전도자는 자신의 신앙을 심리학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임을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전에는 염려도 많고 문제도 많았지만, 가르침을 받아들인 후에는 더 이상 아프지도 않고 염려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하는 크리스천 과학자들이나 많은 사교(邪敎)들도 동일하게 그런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복’ 음이 엄밀한 의미에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 ‘복’ 이 아니며,우리에게 주신 참된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화해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행한 위대하고 놀라운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이라도 아는 설교자라면, 비록 보편적인 축복의 메시지가 전도의 접촉점은 될 수 있어도 사람을 구원하는 도구는 결코 될 수 없으며, 그리고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과 그다지 상관이 없음을 단번에 알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교회에서 행해지는 간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명인의 성공 스토리는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카슨(D.A. Carson)이 올바르게 지적하듯, 유명한 연예인과 대중 가수들을 내세우는 복음전도는 궁극적으로 성공주의에 깊이 감염되어 있으며, 그 결과 그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최소화하고 돈과 영향력과 마케팅에 지나친 충성을 바치도록 유도하는 육신적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1,000년, 그 위대한 시작을 준비하며

교회와 설교자의 본질적인 목표가 단순히 교회를 다니는 교인을 얻는 것이 아니라 참된 회심자를 얻는 것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다시 1,000년의 기초를 다시 쌓는 교단 100주년의 이 즈음, 우리의 메시지와 복음전도는 얼마나 성경에 충실한지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얼마나 이탈했는지 겸손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그 복음’과 뭇 영혼이 너무 귀하며 교회의 참된 생명력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 참고고리 : [인명] 마틴 로이드 존스

>> 연결고리 : 설교, 목사, 영국, 청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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