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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8-05-16
 제목  김재수(金在洙, ? ~1941)
 주제어  김기원
 자료출처  송천교회 100년사  성경본문  
 내용

김재수는 안의와(James Edward Adams, 1867~1929 安義窩) 선교사의 조사이다. 그는 상주군 낙동면 화산동 출신으로 1891년 지병인 종창을 치료하기 위해 부산 선교기지의 하디[Robert A.Hardie, 1865~1949 하리영(河鯉泳)] 의사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병을 치료하고 하디의 전도로 세례를 받은 후 다시 고향에 돌아와 문중에서 많은 핍박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1894년 배위량 선교사를 따라 부산으로 다시 내려갔다. 이듬해 5월 그곳에서 안의와를 만나게 되었고, 김재수는 배위량의 소개로 안의와의 어학 선생이 되었다.

 

그후 1897년 11월 안의와가 대구에 부임할 때 동행했고, 대구에서의 선교활동 과정에서 전도 서적을 팔고 순회 전도를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안의와의 조사(助事, Helper) 가 되었다. 그리하여 대구 제일교회의 창립 때 함께 참여했던 최초이자 유일한 조선 사람이었다. 선교사들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경북에서 가장 먼저 복음을 접한 장로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김재수는 후에 김기원(金基源)으로 개명하였다. 김재수에 관한 내용은 이재원, 1996<대구 장로 교회사 연구>사람.(pp.72~74)를 참조.

송천교회의 초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김기원(金基源, ?~1941. 1.23)이다. 그는 김재수(金在洙)로 불리다가 언제부터인가 김기원으로 개명했다. 그는 우리 교회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로 부해리 선교사의 경북 서편 지방 선교 활동에 함께 참여하여 1901년 송천교회 창립 이후 1902년부터 1909년까지 조사(助事)로서 교회를 섬겼다. 그후 대구 제일교회에서 장로로 장립을 했으며, 1913년 장로로서 평양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1914년 1월 경남 창원 웅천교회 목사로 안수를 받아 경북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 이듬해인 1915년 경북 노회로 이명하여 경산 사돌[沙月] 교회, 1920년대에는 대구 중앙교회, 구미 상모교회에서 시무했고, 1931년부터 최재화 목사와 함께 대구제일교회 동사목사(同事牧師)로 교회를 섬겼다. 그후 노령과 질병으로 은퇴하여 궁핍한 말년을 보내다가 1941년 1월 23일 소천하였다.
  김기원 목사에 관한 자료들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그를 회상하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데 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김기원 목사는 성경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해서 주일학교를 많이 도우신 분’(초기 선교활동을 함께 했던 부해리 선교사)
‘김기원 목사는 성경 말씀을 많이 아시고 또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해 주심으로 작은 예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구미 상모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김성현 장로)
‘김기원 목사님은 주야로 성경을 읽으시고 묵상하시며 눈물겨운 가난과 병고 속에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시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생을 보내셨다’(김기원 목사의 은퇴 후 남산동에서 함께 살았던 전 대구신학교장 정규선)


  그의 무덤은 대구의 성서 시립공원묘지에 있었다고 하지만, 도시 계획으로 헐려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또한 묘지에 비석을 세웠다는 기록은 있으나 지금은 찾을 길이 없다. 후손들의 존재 유무조차도 알 수 없음은 오늘의 역사를 잇고 있는 우리들을 참으로 부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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