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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8-09-01
 제목  강우규(姜宇奎, 1859. 4.20~1920.11.29)
 주제어  [독립운동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로 호는 일우(日愚), 본관은 진주이다.

평남 덕천(德川)에서 태어나 소년시절 부친을 따라 함경남도 홍원군 용원면(龍源面) 영덕리(靈德里)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한학에 전념하다 국운이 기울어짐을 보고 고국을 떠나, 1910년 경술국치를 맞게 되자 북간도 두도구(頭道溝)로 건너갔으며, 다시 길림·시베리아·연해주 등지를 편답(遍踏)하고, 길림성 요하현(遼河縣)에 동광학교(東光學校)를 설립하여 교육에 종사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가입해 있던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노인단 지린 성 지부장이 되어 조선 총독 등을 암살하기로 결심하였다. 그해 러시아인으로부터 수류탄을 구입하고 허형과 함께 원산시를 거쳐서 서울로 잠입했다.

1919년 9월 2일 현재의 서울역인 남대문역에서 신임 사이토 일본 총독에 폭탄투척하였다. 폭탄은 터졌지만 사이토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고 대신 일본인 경찰을 비롯한 수십명이 다쳤다. 강우규는 현장에서는 몸을 피했으나 도피 중 독립운동 탄압으로 유명한 형사인 김태석에게 붙잡혀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하였다.

 

66세였던 강우규 의사가 몸을 피해 숨어다니다가 일본의 앞잡이 김태석에게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나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 늙은이가 구구하게 생명을 연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동양 3국의 원대한 장래를 힘주어 말함이다. 재판장이여, 나는 이미 죽기로 맹세한 사람이니, 아무쪼록 당신네들은 널리 동양 전체를 위하여 평화를 그릇치지 말기를 기원할 뿐이다."
강우규는 1920년 11월 29일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당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 바깥고리 : 강의규의사 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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