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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01/30 아우리파버 출생. 안드레아스 아우리파버의 동생으로 독일의 종교개혁자이자 교회행정가. 1568.10.19 사망.
1519/11/09 구알터 출생. 취리히 교회의 세번째 상임사제.성베드로교회 목사.
1521/05/19 칼빈 노욘성당에서 한 보조성직에 임직, 교회록(敎會綠)을 받게 됨.
1522/11/09 켐니츠 출생. 종교개혁시대의 독일의 신학자이자 논변가. 그의 생애는 그가 그처럼 오랫동안 봉사하였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수 없다.
1524/06/23 쉬퇴셀 출생. 독일 신학자.그의 신학관과 교회관의 발전에 있어서 어느 정도까지 동기가 순수했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1534/05/04 칼빈, 노욘에서 체포 구금, 노욘교회에서 받는 연봉(年俸)을 거절하기 위하여 귀향했으나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얼마 후 석방됨
1537/02/18 칼빈, "제네바교회를 위한 신앙의 훈련과 고백" (Instruction de Fayl Dont on use en l'eglise de Gen ve-Chatechismus Genevensis Prior)을 공표

-이 발표를 본 로잔느의 목사 카룰루스(Carolus)는 칼빈파렐아리우스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고소함.

1537/05/23

교황 파울루스 3세에 의해 만투아에서 교회회의가 소집되었다. 이 때 루터가 작센의 선거 후 요앙네스 프리드리히의 요청을 받아 쉬말칼덴조항(Schmalkaldic Articles) 교리적 문서를 작성했다.

1538/10/31 바로나우스 출생. 종교개혁 이후에 로마가톨릭 교회의 교회사가의 아버지. 1607,6,30 로마에서 사망.
1538/03/11 ~12일 프랑스 시의회에서 목사회에 상의하는 일이 없이 일방적으로 성찬식용 떡을 로마교회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을 사용할 것을 결정하고 목사들에게 강요함.
1538/07/23 칼빈에게 종교개혁에 참여할 것을 권면한 파렐, 뉴샤텔(Neuch tel)의 교회의 초빙을 받아 부임. 죽을 때 까지 목회함.
1538/08/01 칼빈, 스트라스부르그 피난민 교회의 목사로 부임.
1539/09/01 ~3월 18일 로마 천주교회의 감독 사돌레(J. Sadolet)가 제네바시민에 편지하여 그들이 로마교회로 돌아 올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해 제네바에 있는 목사중 한 사람도 답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제네바 시의회는 칼빈에게 사돌레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써주기를 부탁, 칼빈이 이에 응하여 편지를 써줌. 이것은 제네바시의 공기가 개혁운동에 매우 유리하게 변해개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함.
1540/07/30 반즈 출생. 영국 국교회 교도. 1526년 그는 대담한 용기를 가지고 프로테스탄트적인 견해를 주창하기 시작하였다.
1541/03/10 ~5월 22일 칼빈, 여러 곳에서 열린 종교회의에 참석, 루터파와 개혁파와 합동으로 노력함.
1541/09/13 칼빈, 제네바시에 들어 감. 기마대의 출영을 받음.
취임한 즉시로 "교회헌법제정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200인 의회에 건의하는 동시에 예배의식문의 초안에 착수함.
1541/11/20 칼빈에 의해 교회헌법규칙(Les Ordonnances eccl siatiques de l'Englise de Gen ve) 이 공포 됨. 이 규칙을 시행하는 것을 감독하기 위한 감시위원회(Consistorium)을 구성, 매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모임.
1542/01/02 칼빈에 의해 1541.11.20 공포된 교회헌법규칙이 시행됨.
1543/10/20 굴라 출생. 프랑스 개혁교회 신학자이자 시인이며 역사와 신학에 대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1543/08/15 프랑스 파리에서 이그나티우스 드 로욜라(Ignatius de Loyola)에 의해 예수 선교회(Society of Jesus)가  세워점. 이는 종교개혁으로부터 카톨릭을 보호하고 선교 사업에 힘쓰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것.
1543/03/24 칼빈, 비레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칼빈이 초안해서 가결시킨 교회규칙에 대해서 그것이 너무 엄격하다는 비난이 일어 났다는 것과 시의회와 감사 위원회에서 대논쟁이 벌어 졌으나 칼빈의 노력으로 겨우 무마되었다는 것을 알림.
1544/05/29 라토무스 출생. 로마가톨릭 신학자. 성베드로대학교의 신학 및 교회법 정규교수로 임명됨.
1548/02/12 본누스 사망. 독일종교개혁자. 1539년에 한 성인전기선집을 편찬하여 발행하였다. 그의 유해는 많은 사람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성모마리아교회 안치.
1549/08/15 인도에서 선교 활동의 기반을 구축하고 일본으로 떠난 하비에르는 고아에서 입교한 한 일본인의 안내를 받아 가고시마에 입국했다. 일본에서는 이때부터 그리스도교 신자는 물론 교회에 관한 모든 것을 포르투갈의 발음을 따라 「기리시단」이라고 불렀다.
1552/01/14 젠틸리 출생. 많은 사람들에 의해 국제법의 창설자로 간주됨. 서부유럽에 최초로 로마가톨릭의 신학과 교회법으로부터 세속의 법률 분리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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