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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0-08-25
 제목  <기획시리즈> 믿음의 길 백년, 안양
 주제어키워드  김학진목사님글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4395  추천수  12
부림 마을과 행상소리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고 해서 부림 마을로 불리워 졌다는 곳, 이 마을이 있는 관악산 기슭에도 행상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있기 마련인 이 행상소리….



저승 길이 멀다하니/ 대문 밖이 저승이로다/

북망 산천 멀다하니/ 이렇게도 멀고 먼가/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 잎 진다 서러마오



경기도 안양 지방에서 불리워진 노래이다.

육백 년 전에 세워진 이 부림 마을이 예전에는 35호 정도였다. 남평 문씨, 밀양 박씨, 순응 안씨 등 3성으로 이루어진 각성받이 마을인 평민 촌. 개신교 장로교회인 동은교회가 안양에서 가장 먼저 이 마을에 세워 졌다. <조선 예수교 장로회 사기>에는 “시흥군 부림리 교회가 성립하다. 문학선, 문성범, 음건실이 신주한 후 문학선 씨집에서 회집, 예배함으로 교회를 성립하니라(1910년)”고 적혀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90년 전에 세워졌다. 이 동은교회 설립에 대하여 안화준 장로는 문기선 영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문학선 씨의 가정에서부터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 가족들의 말을 들으면 처음에 예수를 믿게 된 동기가 시할아버지가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시할머니가 쌀을 머리에 이고 푸닥거리를 하러 가는 도중에 찬송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단다. 마침 선교사가 전도를 했다. 그래서 급히 집으로 선교사를 데리고 와서 찬송가를 부르고 우리 남편의 병을 낳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1895년 호계동 최초의 기독교



84년 전에 쓴 최초의 당회록에는 1911년 10월 피득 선교사가 이 교회에 와서 제1차로 문답함으로써 문학선, 김 부인, 음건실, 문성범을 학습교인으로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안양지방의 개신교 전래의 시기는 고종 32년인 1896년으로 이보다 15년이나 앞선다. 건양 원년 1896년에 발행된 영문판 감리교 연회록에 스크랜톤 선교사의 보고에 의하면 “우리는 시흥 고촌 동막용시 양천에서 선교하였다. 이런 지방은 나의 어머니나 나 자신이나 조상들 중에 한 사람이 연중 찾아갔다”고 했다. 또 다른 기록으로는 광무 4년, 1900년 <대한 그리스도인의 회보>에는 과천 편지라는 소제목으로 이런 기사가 보인다. “과천 덕교개 교우 허대진 씨는 강생 1895년에 세례를 받고 1896년에 입교한 후로 눈에 보이는 육신과 세상 영화를 버리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영혼과 하나님과 천국 복락을 위하여…”

허대진은 이 기사로 보아 같은 해인 고종 32년에 시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세례를 받았다. 덕고개를 안양시 호계동으로 분동하여 덕고개 금성마을 지역을 호계 1동이라고 했다. 호계동은 예전에 방죽말, 안말, 새터말 일대가 범이 많은 곳이라고 하여 호계라고 불리워 왔다. 안양시의 최초로 기독교가 전래된 연대는 고종 32년인 1896년이고 장소는 호계 1동이다.

안양시의 석수동 자연 마을인 삼막골에 1900년 이 마을에 사는 하영홍이 예수를 믿고 감리교 교인이 되었다. 다음해 그는 감리교회 지도자 반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수료한 후 이 마을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해 60호가 되는 마을에서 24명이 입교하였고, 하영홍은 이 마을을 복음화하려고 전도하였다.

1901년 8월 신학월보에서 그 자세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삼막동에 사는 하영홍이 작년부터 예수를 믿고 성경공부를 힘써 하더니 성신강좌를 받아 예수 말씀 중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하시는 계명대로 넉넉지 못한 전답을 팔았다. 받은 땅값 180원으로 교우 일곱 집이 열심히 역사하여 교당을 아름답게 세웠다. 8월 6일에 스웨워러 선교사와 존스 장로사와 각 형제자매 70명이 하나님께 봉헌예배를 드렸다. 무지내 교회 김동현 권사가 지도하고 스웨워러가 찬송한 후 존스가 예식을 읽고 본 교회 속장 하영홍 씨와 유리유사 리지홍, 하진영 씨가 회당 문서와 지계인 문건과 열쇠를 장로사에게 드렸다.

스웨워러는 요한복음 15:1-20을 읽고 ‘열길 물이 한데 모여 큰 강을 이룬 것 같이 우리 교회도 각 곳 형제들이 일심이 되어 교회를 이루는 것이니’라고 연설했다.

1954년 한경수 전도사가 지금의 관악역 동편 철도변 소년원 안양분원에서 성경을 가르쳤다. 일년쯤 지나서 박 주사네 집을 사서 내부를 개수하여 삼막교회를 다시 시작하였으니 그것이 지금의 기감 석수교회이다. 50년만에 삼막 교회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안양 교회와 안양 중앙 교회



1938년 2월 안양 장로 교회에 나가는 감리 교인들을 모아 안양동 810번지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 안양 감리 교회의 시발이다. 교세가 확장되자 안양역전에 20평 규모의 2층 건물을 예배처로 하고, 기감 안양 교회라고 했다. 한국전쟁으로 건물이 모두 불에 탔고 5년 후 이영종 목사가 취임하여 14년간 목회를 했다. 이곳에 1969년에 새로 중앙 교회가 창립되었다.

동은 교회 류원주 목사는 앞으로 선교계획에 대해서 “평촌 지구를 중심으로 공장지대가 있습니다. 신시가지여서 1㎞ 떨어진 지역으로 우리교회의 선교적 전망이 크다고 봅니다. 농사를 짓던 땅이 도시화 되면서부터 인구가 증가한 추세로 보아 탈 농촌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변화 속에 성숙한 신앙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는 이 교회의 표어처럼 류 목사는 우선 공장지대의 직장인 선교부터 실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허--어화/ 인제 가면 어느 때 올까/ 명년 삼월 돌아오면/ 또 다시 돌아올까/ 어허 어허



부림 마을의 행상소리는 아파트 숲으로 바뀌어 진 주변에도 아직 그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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