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자료등록
 
주제 주제어 출처 내용 등록일   ~
 현재위치 : HOME > 선교정보보기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1-05-01
 제목  <특집> 인터뷰: 기독교구원의 절대유일성과 선교현장의 도전
 주제어키워드  기독교구원의 절대유일성과 선교현장의 도전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4246  추천수  4
특집/ 21세기 다종교사회와 기독교선교/ 인터뷰/ 월간 선교타임즈 2001년 5월호



기독교구원의 절대유일성과 선교현장의 도전



"넘쳐나는 생명력으로 타종교인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영성의 깊이와 성숙함이 절실히 요청돼”

- 장성배 교수(감신대 선교학과) -

인터뷰/ 조수동 기자



▲ 작금에 야기되는 종교 간의 첨예한 갈등양상은 기독교의 배타적 교리가 중요한 원인을 제공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느 정도는 옳다고 봅니다. 지금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교리는 하나님의 넓은 구원 의도를 드러내기에는 너무 좁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독교가 존재하기 전에 독생자를 주실 정도로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세상은 물론 의로운 세상이 아니었죠. 아마도 지금이나 그 당시나 인간들은 서로 싸우고, 헐뜯고, 타락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몸소 그들 곁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불의와 타락에 대해서 관용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의 단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고고하게 자신의 순결을 지키는 것보다는 예수님의 방법처럼 그 안으로 뛰어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이죠. 예수님은 유대인이라고 해서 만나고, 이방인이라고 해서 배척하지 않으셨습니다. 전 우주를 덮고 있는 하나님 앞에서는 기존의 종교가 문제가 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 종교 간 갈등 중 이슬람교(회교)와 기독교가 특히 심각한 종교적 충돌을 빚고 있는데 종교적 관용성, 포용성을 갖는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보십니까?



우선은 용어를 정의하고 이야기를 풀어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종교적 관용성이 너도 좋고 나도 좋다는 의미라면, 그러한 방법으로는 문제해결을 도출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남의 문제에는 간섭하지 말자는 태도를 가지고도 해결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 종교의 체험을 다른 종교의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도 문제일 것입니다. 이것은 쉽게 종교분쟁과 전쟁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종교 간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각 종교가 그 종교 본연의 사랑, 자비, 관용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모든 세계종교의 궁극적 이상은 세계의 구원과 화해의 나라일 것입니다. 성경에도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그 복음을 증언하는 유일한 길은 끊임없는 사랑의 희생에 있다는 말입니다. 상대편은 나를 악으로 대할지라도, 나는 끝까지 선으로 갚는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선한 싸움을 싸운다는 표현의 참된 의미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선한 싸움을 싸운다고 정말 칼과 창을 들고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남미의 잉카문명을 멸절시켰고, 미국의 인디언들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냈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수없는 사람들을 대포로 죽이면서 개종을 강요했습니다. 종교적 관용이란 종교 본연의 참 사랑의 충만한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만이 상대를 적이 아닌 형제로, 친구로 보게 만들 것입니다. 그럴 때, 기독교 복음의 참된 증언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 기독교 선교가 다종교 문화에서 이루어질 때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인터넷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모들은 그 속에 있는 포르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녀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을 막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은 그 이상의 많은 이점이 있고, 우리가 앞으로의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목사님들은 이단이나 다른 종교들이 교인들을 현혹시키는 것이 두려워 그들과 대화도 하지 말라고 강요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인터넷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안으로 뛰어들어가야 하듯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만나야 합니다.

기독교가 불교인들과 형제요 자매로 만나는 것, 그들과 함께 이 사회의 문제들에 대처해 나가는 노력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만약 그들이 이러한 교제를 통해서 기독교인들의 삶 속에 넘쳐나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면,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기독교의 진리를 믿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배타적인 태도는 어떻게 보면 기독교 신앙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봅니다. 불교인들을 만나서 자신 있게 나눌 것이 있다면 왜 배타적인 태도를 갖겠습니까? 넘쳐나는 생명력으로 불교인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영성의 깊이와 성숙함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 선교현지에서 토착종교를 선교적 관점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지?



이 짧은 지면에서 설명하기 힘든 문제이군요. 수 없는 전제와 사례의 검토가 필요한 사항입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고 간단하게 입장을 정리하자면, 먼저는 토착문화를 향했던 기독교 선교의 입장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 선교 유형을 나눠볼 때, 자민족중심적인 접근방법(ethnocentric model)과 선교지 문화 속에서 적용점을 찾으려고 시도했던 입장(accommodational model)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입장은 힘으로 타문화를 제압하고 기독교를 강요했던 역사 속에서 나타났고, 후자는 선교지의 문화와 사람들을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접근했던 입장에서 나타났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서, 특히 바울의 선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두 번째 입장입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들 문화 속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접촉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레오바고에서 이름 없는 신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던 것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 희랍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로고스라고 설명했던 것도 그 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타문화의 사람들에게 선교하러 들어갈 때에, 그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접촉점을 찾아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접촉점은 그 문화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좀더 의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선교하는 사람들은 그 문화의 접촉점이 복음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 종교다원주의에 맞서는 기독교 구원의 유일성에 대해 성서의 참된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제도적인 교회의 일원이 되어야 구원받는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제도 또한 이 세상 속에서 절대자를 모시기 위한 상대적인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성서를 보면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고 자기 민족만이 선택받았고, 구원의 백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후대로 오면서 변화를 겪게 되었죠.

요나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뜻은 유대 공동체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제 2 이사야와 많은 후대의 선지자들은 모든 민족이 구원받는 그 때를 예언하고 있고요.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조차 이방인 고넬료의 집안에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성령은 유대인들에게만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를 이야기할 때도 제도적인 교회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백성” 또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보편적인 교회를 상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것이지요.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 세계교회협의회의 선교와 전도 위원회의 고백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구원의 길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제한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우리의 고백이 남을 정죄하는 도구로 쓰여지지 않기 위해서는, 구원의 결정권을 가지고 계신 분이 하나님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선교정보리스트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