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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선교정보기타  작성일  2001-08-15
 제목  눈물의 신앙간증과 단기선교
 주제어키워드    국가  중국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4225  추천수  16
중국(위구르족)단기선교를 떠나기 전..



*예수 님 을 만나기 전 나의 삶

저는 울산 아주 작은 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 엄마 아빠의 사랑을 잘 받아보지 못하고 자라났습니다. 아버지 는 이리저리 술만 드시며 다니 시 고, 어머니는 모진 고생 다하면서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족을 위해 몸이 아프셔도 아픈 내색하지 않고 늘 남의 집에서 일만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7살 때 아버지께서는 집을 나가셨고 어머니와 누나와 전 늘 형편대로 살자고 없어도 있는 사람 처 럼 살자고 다짐을 했습니다..하지만 그 희망은 사라져 버리고,,이젠 좌절 뿐 만남 지 않았습니다. 방세 낼 돈이 없어 집이 아닌 길거리로 나가서 살 형편이 되 었 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 위기 는 면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빚쟁이에 돈 값 으 란 소리와 이러 저리 에서 욕하는 소리에 견딜 수 없어서 집을 띄 쳐 나갈려 고 했지만 그래도 난 그런 생활에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구 한2년이 흘렸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오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 은 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옆의 손에는 한 아주머니 의 손이 담겨 져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있던 어머니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집을 싸 집을 나가셨습니다. 한편으론 너무 엄마가 미 웠 지만. 한편으론 엄마의 심정을 알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엄마가 불쌍하고 안타까워 보이던지 내 마음은 찢어 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한달 이 지나고 두 달 이 지나고 어머니는 오지 않으셨습니다 배가 고파서 길거리에서 울기도 하고 슬퍼서 울기도 했습니다.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내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런3달 후 어머니께서 돌아오셨습니다..많이 지쳐 있는 모습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어머니는 쉬지도 못하시고 아버지의 구타에 몹시 맞으셨습니다,,, 얼마나 맞았는지 움직이지 못할 정도 였 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우리형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나를 못살게 하더라도 너희들을 나아준 아버지이고 나의 남편이라고 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정말로 용서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마음도 생겨서 부엌에서 칼을 들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갔지만 전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은 그래도 나를 낳아준 아버지이니깐 엄마와 누나와 그 밤을 눈물로 보냈습니다 얼마나 가난하고 외로운 게 얼마나 아픔이 되는지 그래서 전 그런 집안의 핍박을 견디기 못해 가출을 하였고 제가 누리지 못한 모든것수많은담배와술,여자에찌들려행복하게살아갔습니다.그러나 행복은 잠시 뿐 하루하루가 걱정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건 또 어머니가 아버지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맞고 계시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저의 머리 속 을 지나 쳤기 때문입니다. 잊어 버리고싶고 잊을 려 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내가 겪은 고통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잠시뿐이라고 느끼며 살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나에게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겠지? 하는 생각을 갖고 살려고 했지만 내가 받은 고통은 너무나도 컸기에 잊을 수 없는 것이 되 버리고 말았습니다...그래서 너무 나도 이런 생활에 서 살고싶지 않아서 하루는 결심 했 습니다. 내가 죽으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강을 찾아갔습니다 죽고싶어서 강에 뛰어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제 머리로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너무나도 힘들어서 지쳐하는 어머니의 모습 너무 나도 맞아서 움직이지 못하시는 모습, 땀 흘리며 우리를 위해 애쓰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살아 가 고 계시는데 내가 이렇게 하면 어머니는 얼마나 날 위해 울고 계실까? 하나 밖 에 없는 아들인데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알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도 그렇게 살아 왔으니깐 요. 그래서 난 죽고 싶다는 생각을 딛고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 갔습니다. 하지만 또 하루하루가 넘 힘들고 짜증나고 살기가 싫었습니다. 그런 하루를 계속 보내고 있었는데..



*예 수 님을 만나게 된 동기

그런데 어느 날 초등학교동창친구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너 교회 한번 오라고 라고 말을 건네 받았지만 전 처음에는 가기 싫었는데 그래 한번 가는 것 도 좋은 일 이 라는 걸 알고 갔습니다 처음교회를 들어가니 너무 많은 학생들이 앉아서 행사를 지켜 보 고 있는데 전 아무 것 도 몰라 그냥 아무 자리 에 가서 앉았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런 것이 행복 이 구 사랑이구나.또하나느낀것은나는사랑받기위해태어난사람이구나!전살아오면서 처음행복이란 그것을 교회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외롭고 슬픈 마음이 사라지고 행복만이 나에게 다고 오는지 그때야 교회가 이런 곳이 구나 하는걸 느꼈습니다. 그런 후 하루하루를 교회를 갈 만큼 나의 모습은 변화되었고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은 더욱더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예 수 님 을 만나 후 의 삶

내가 알지 못했던 하나님을 생애 처음 태어나서 가보는 수련회. 그 수련회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나의 행복은 점점 날로 많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 도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또 불행은 시작 되 었 습니다. 부모님의 싸움은 또 시작되고 어머니는 또 몹시 맞으셔야만 했습니다. 하도 참다 보지 못해 집을 뛰쳐나와 옥상에서 무릎꿇고 기도했죠 "하나님 불쌍한 우리어머니 도와 주세여" 우리아버지의 마음을 붙잡아 주세여 라고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얼마쯤 시간이지나 눈물을 흘리면서 집에 들어왔는데 어머니는 집에 안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엄마를 찾 으로 돌아 다녀봤지만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찾다못해 집으로 들어왔는데 살며시 우는 소리 가 들리는

거였습니다. 더 놀란 건 어머니가 다락에서 손발이 묶인 채로 다락한구석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슬프던지 정말로 우리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초라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나서 나의 방으로 어머니를 데리고 왔습니다. 내겐 또 절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저의기도의 응답하셨습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라고 그런 후 또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전 너무나 힘든 고통을 이 길 수 있는 힘도 없는데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라고 원망과 불평했습니다 네가 힘이 들고 너무 힘들어 네가 쓰러 질 때 나는 너와 언제나 함께 한 다 구 그리고 혹시 세상사람들은 너를 잊을지 라 두 나는 너의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겨 너를 지킬 것이라 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이 저에겐 어찌나 큰 힘이 되 는 지 지금은 하나님을 통하여 다시 우리의 가정은 변화가 되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불쌍해 보이시던 어머니는 행복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옛날보다는 더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후로 집을 나가 버렸던 누나는 가정을 가지고 이루어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무 나도 불쌍한 누나 때문에 맘이 아프지만 하지 만 하나님께서는 누나와도 함께 할거라고 믿습니다.







*하나 님 의 부르심

선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고1때 잠을 자다가 환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제가 통기타를 들고 아프리카사람들 사람들 앞에 찬양 인도하는 모습을 환 상 을

통해 보게되었습니다. 세계를 품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고 무작정 주님을 위해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 후, 선교사로 준비하는 동안 여러 선교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선교의 비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평생 선교사로서 제 자신을 주님께 드리기로 많은 사람들 앞에 시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교회에 나가 무릎을 끓고 눈물을 흘리며주님이주신나의비젼을준비하고있습니다.제가하고 싶은 사역은 복음사역입니다 소망 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의 영혼들에게 주님의 비전을 주는 자 되고 싶습니다. 저는 제 삶의 이유가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 그 분을 전하는 일에 저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살아가는 삶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니고서는 이 자리까지 올수 없었습니다.

또한 그 가운데 감당할 시험을 주셨으며, 또한 피할 길을 내시고 이기게 해 주신 하나님 그리고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저의믿음을 성장시키신 하나님을 위해 저는 하나님의 사랑 앞에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할 수 없지만 우리주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확신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삶 속에 늘 가득하기를 바라며 저의간증을 나눠 드립니다..



이번7월30~8월14일 까지 선교지 중국(위구르족)으로 떠나게 됩니다. 늘 삶 가운데에서 의

실실하셨던 하나님은 중국(위구르족)에서도 변함없이 신실하고 동일하게 역사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기도는 주님의 큰 역사를 만들 것입니다.



현호의 기도제목은...



중국단기선교에 대한 두려움보다 주님께서 중국(위구르족)을 통해 행하실 일들을 더 기대케 하시니 너무 감사

1. 늘 하나님만 의지하며 언제나 그 분과 동행하는 믿음과 기도의 사람이 되도록



3. 주님의 사랑과 온유함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도록, 특히 중국 위구르족에 모든 영혼들을 위한 사랑을 더하시도록



4. 중국단기선교를 위한 기도의 동 역자 100명을 붙혀 주시도록..



5.새롭게 만나게 되는 중국 위구르족 영혼들에게 복음을 잘 증거 할 수 있도록...



6. 중국단기 선교사역에 필요한 기도목표액(100%) 이 재정 후원자들을 통해 잘 채워져서 적절한 시기에 들어 갈 수 있도록

***(재정은 모두포함해서 140만원이 든다고합니다.)

*****(농협:882-02-026651 예금주: 송 현 호)

** 연락처:H.P019-288-8193

** E-mail:hyunho2580@hanmail.net





*제가 떠나게 되는 중앙 아시아의 위구르족의 모든 것



a.정체성

민족명: 위구르

주요언어: 위구르어

방 언: 타란치(신장 북쪽 지역과 구소련지역)

옐켄트-카쉬가르(신장 남부 지역)

문 자: 아랍어(신장 지역)

시릴어(구 소련)

라틴어(터어키)

주요 종교: 하나피계 수니 무슬림

위 치: 신장 위구르 자치구, 광주, 호남성, 몽고, 카작키스탄, 우즈벡키스탄,아프카니스탄 북부

터어키(이스탄불), 사우디 아라비아, 호주, 독일

지리적 특색: 타림분지,준가리에 분지, 천산 산맥, 알타이 산맥, 쿤룬 산맥, 알툰 산맥, 파미르 산맥

펄가나 계곡(우즈벡), 세미레치 지역(카작), 중앙 아시아 공화국의 주요 도시들



b. 인 구

신장 위구르 자치구 : 7,214,431

카작키스탄: 185,300

우즈벡키스탄: 175,000

키르기즈스탄:

구 소련: 약500,000

터어키: 10,000

아프가니스탄: 3,000

몽 고: 1,000

1982년 인구조사와 1990년의 통계를 비교하면 신장 지역의 위구르 인구는 21% 증가 하였다. 어떤 위구르 사람들은 중국측의 통계가 상당히 과소평가 되었다며 중국 대륙의 위구르 인구가 1000만에서 2500만명 정도이고 구 소련 지역에 100만명 정도가 있다고 주장한다.



c. 위 치

대다수의 위구르족은 중국의 북서부에 위치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산다. 공식적으로는 중국 정부에 의해 1955년 10월 1일에 성립되었는데 이전에 외부에 알려지기로는 중국 투르케스탄 혹은 중국 중앙아시아, 동 투르케스탄, 신장으로 불리웠다. 총 면적은 중국 대륙의 6분의 1에 해당한다. 북쪽으로는 구 소련과 몽고, 북서쪽으로는 카작키스탄, 서쪽으로는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남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디아와 접하고 있다. 또한 중국내에서는 남쪽의 서장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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