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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작성일  2005-04-08
 제목  <특집>기고3-안식년의 새로운 변신 '본국사역'
 주제어키워드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2447  추천수  19
안식년의 새로운 변신 ‘본국사역’









해안선시대의 안식년



윌리암 케리가 인도 땅에 도착한지 213년이 흘렀다. 우리는 그와 그의 시대를 산 선교사들을 해안선 선교사들이라 부른다. 1792년부터 약 70년의 기간의 선교는 배를 타고 선교지 해안에 도착한 선교사들이 환경적인 이유로 해안선지대에 도착한 선교사들이 해안선 지대에서 주로 선교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희생과 헌신의 시대로 부르는 이유도, 당시 선교사의 희생적 죽음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지금의 아프리카 서부 해안 중 아이보리코스트 주변 지역은 ‘선교사의 무덤’이라고 불리 울 정도로 알 수 없는 열병으로 죽어가는 선교사가 부지기수였다. 선교지에 도착하자 걸린 말라리아 등의 열병 등으로 쓰러져 갔다. 따라서 안식년을 맞아 본국에 돌아올 수 있었던 선교사들도 10∼20%에 불과하였다. 그들이 본국에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안식 그 자체였다. 그리고 재준비였다.



내지시대의 안식년



해안선시대 이후 1865년부터 우리는 내지선교시대를 맞는다. 허드슨 테일러의 중국 내지 개척선교를 필두로 수단내지,아프리카 내지 등 수많은 내지 선교시대를 열었다. 이 때의 안식 개념은 다소 달랐다. 해안선에 기지(Base)를 이미 구축한 선교사들은 선교사 자녀 학교의 해안 지대에 건설함과 리트릿(Retreat)시설을 갖추면서 내지로 속속 개척하며 전진하였다. 내지 또한 만만한 선교 환경이 아니어서 희생은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해안선에서 선교 경험을 쌓은 선교부들은 해안선을 적절한 안식과 재정비지역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즉 벙걸로 및 리트릿하우스를 건설하여 내지에서 병마 및 상처로 치료와 쉼이 필요한 선교사들을 후방 안전지대인 해안선 지대로 이송하여 적절한 안식의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래도 매 4∼6년 후 본국에서 맞는 안식은 이들에게 또 하나의 기쁨이요 즐거움이었다. 특히 본국 선교동원에 있어 이들의 생생한 선교지 증언은 많은 젊은이들을 선교지로 나아가게 하였다. 미국에서는 SVM(학생자발운동)이 일어나 내지 선교시대 기간에 약 2만여 명이 선교지로 떠나갔다.

종족선교시대



해안선과 내지에 흩어진 선교사들 중 남은 과업의 새로운 부분을 발견한 선교사들이 그 다음 시대를 이끌게 되었는데 그들이 바로 타운젠드와 맥가브란이었다. 이들은 선교대상을 해안선과 내지라는 땅의 개념에서 종족 개념으로 바꾼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종족을 찾아 선교하는 것은 새로운 개척, 즉 리서치의 중요성과 전략적 접근을 추구하게 되었다. 감추어진 종족(Hidden People)을 찾아 이들은 시골, 산지, 정글 등지로 리서치하며 선교 대상을 재구성하게 되었다. 희생과 헌신으로 선교하던 전통은 이때부터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이미 해안선과 일부 전략적 내지에 Retreat시설을 갖춘 선교부는 안식과 재준비 과정에 상당한 노우 하우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본국안식년도 안식보다는 본국의 동원 사역 및 차기 사역을 위한 준비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와서는 OMF, WBT 등의 한국선교회 사회에서 안식년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본국사역(Home Assignment)이란 대체 단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한국 선교는 1980년 이후 본격화되었으며 한국 선교사의 약 99%가 1980년대 이후 선교지를 떠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그리고 이들을 파송한 본국 본부 실무자들이 사용한 단어는 본국 사역이라기보다 안식년에 철저히 가까운, 그 자체인 안식년이었다. 이것이 지난 25년 한국 선교의 안식년 문화를 주도하였다. 한국 OMF, GBT 등의 선교회는 업무 규정에 본국 사역을 규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안식년의 대세는 여전하다. 이것은 아이러니칼하게도 한국 선교사들의 92.8%가 선교지의 대도시에 거주한 다른 사실에서도 묘한 여운을 남긴다. 오늘날 선교지에 배를 타고 가는 선교사는 거의 없다. 비행기가 그 수단인데, 그들이 맨 처음 도착하는 곳은 국제 공항이 있는 대도시들이다.

지금부터 200여년 전의 서구 선교사들이 배를 타고 도착한 해안선을 생각하면, 오늘날 한국 선교사에겐 국제 공항이 있는 대도시들이 新 해안선인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 선교사들은 신해안선 시대를 사는 것이 대부분의 대도시 거주 아닐까? 이들은 200년 전 아니, 50년 전의 선교사들보다 더 안전한 곳에 거하면서도, 즉 희생이 적은 환경 속에서도 과거의 안식년 개념을 선택한다면 무엇인가 어색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물론 선교지에 따라 열악한 선교사들에게 안식년은 필요하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한국 선교사들의 오늘날 안식년 개념은 도덕적해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우리에게 본부 사역이라는 단어 사용은 선배들의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본국 사역이라 하더라도 본국에서 약 2개월간의 안식 기간이 주어진다. 나머지는 동원 사역, 차기 사역을 위한 구체적 준비를 하는 패러다임을 한국 교회는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선교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조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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