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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매일선교소식  작성일  2002-06-14
 제목  인도: 카쉬미르 사태의 역사적 배경
 주제어키워드  인도: 카쉬미르 사태의 역사적 배경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2516  추천수  4
(이슬람선교회) 카슈미르의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인도령(領)과 파키스탄령(領)으로 나누
는 통제선(Line of Control) 양측에는 100만명의 인도·파키스탄 군인이 집결해 있고, 핵탄두를 실어나
를 미사일과 전폭기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를 고조시킨다. 오랫동안 평화롭게 살아온 카슈미르 땅의
비극은 어디에서 유래하며,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 카슈미르 분쟁의 뿌리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에 속했던 카슈미르 지역은 BC 3세기 마우리아 왕조를 거쳐, 서기 500년경에
는 파키스탄 북부 탁실라를 중심으로 불교 문화가 꽃피었던 곳이다. 11세기부터 이슬람 왕조가 흥망
을 거듭하다 16~18세기 무굴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19세기 영국이 인도를 점령하면서 카슈미르
도 영국의 간접 통치를 받았다. 당시 카슈미르에는 560여개 토후국(土侯國)들이 있었고, 이들 토후
왕국은 소수 힌두교계(22%)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의 대부분(77%)인 이슬람교도들을 탄압하며
영국의 식민 지배에 협력했다. 2차대전 종전 후 1947년 8월 영국이 인도 대륙에서 철수하면서, 종교
에 따라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했다. 이때 카슈미르는 주민의 절대 다수가 ‘파키스탄 편입’을
요구했으나, 토후왕인 마흐라자 하리 싱(Mahraja hari Singh)은 그해 10월 26일 ‘국민투표’를 전제로
‘인도로의 편입’을 결정했다. 이때부터 카슈미르의 비극은 시작됐다.

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1947년 10월 카슈미르의 이슬람 무장부족 집단이 파키스탄의 지원 아래 수도인 스리나가르
(Srinagar) 점령을 시도하자, 인도는 즉각 군대를 파견, 1차 인·파 전쟁이 시작됐다. 11월에 인도의 네
루(Nehru) 수상은 ‘주민투표’에 따라 카슈미르의 장래를 결정하겠다고 약속했고, 카슈미르 문제는 유
엔에 상정됐다. 이런 가운데서도 양국 간 제한전이 계속되다가 1948년 8월 정전합의가 이뤄지고,
1949년 1월부터 정전협정이 발효됐다. 이때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에 각각 63%와 37%씩 영토
가 분할되어 최초의 ‘통제선’이 만들어졌다. 당시 유엔 결의안은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가 인도와 파
키스탄 중 한 곳을 선택할 때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2·3차 인·파전쟁과 통제선(LOC)
1950년대 들어 인도와 파키스탄은 잠무 카슈미르의 법적 지위를 놓고 갈등을 벌였다. 1951년 인도의
네루 수상은 잠무 카슈미르의 ‘특별 지위’를 규정하는 헌법 370조항을 신설하고, 1957년 이 지역을 인
도 연방의 하나로 편입해버렸다. 이에 현지 주민과 파키스탄이 강력히 반발했다. 인도가 ‘주민투표 약
속’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1964년 12월 파키스탄이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을 공격하자 인도가 반격을
가하면서 2차 인·파 전쟁이 벌어졌다. 이 전쟁은 65년 9월 양국 간 통제선 전역으로 확대되었고, 중국
이 파키스탄을 지원하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인도 동북부 시킴(Sikim)과 티베트에서
인도와 중국이 교전했다. 2차 전쟁은 소련의 중재로 66년 1월 끝났다.
3차 전쟁은, 1971년 동·서 파키스탄의 내분으로 동(東)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분리 독립하는 과정
에서 인도가 개입해 시작됐으나 주요 전장(戰場)은 카슈미르였다. 1972년 심라(Simla)협정으로 전쟁
이 종료되면서, 지금의 통제선(LOC)이 확정됐다.

이슬람 무장투쟁과 그들의 요구
1980년대 들어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인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외치는 ‘잠무 카슈미르 해방전선
(JKLF)’이 결성되면서, 인도 정부군과의 무력충돌이 본격화됐다. 잠무 카슈미르는 이슬람교도의 비
율이 64%에 달한다. 이들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지원을 받으며 인도군에 대한 테러전을 벌였
고, 인도군은 민간인 탄압과 무자비한 보복을 가해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 12월 인도 국회의사
당 폭탄테러와 지난 5월 인도병영 테러도 이 과정에서 발생, 양국 간 군사충돌 위기로 발전했다.
이슬람 무장세력은 ‘주민들의 자유로운 투표를 통해 잠무 카슈미르의 미래를 결정할 것’을 인도에 요
구한다. 이에 대해 인도는 이들의 ‘분리 독립’ 대신 ‘자치’ 정도는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파키스
탄은 이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지지하지만 분리 독립 대신 파키스탄으로의 편입을 원한다. 55년
에 걸친 카슈미르 분쟁은 종교갈등에서 출발, 지금은 인도·파키스탄의 영토분쟁, 인도·중국 간의 지
역 패권 갈등, 테러와의 전쟁 등과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최근 인·파 분쟁을 계기로, 국제사회는 21세
기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비극의 땅 카슈미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등 강대국들이 방관의
자세를 버리고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카슈미르 지역/ 눈-숲의 비경 ‘동양의 스위스’
카슈미르는 흔히 ‘동양의 스위스’라고 불리고 있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히말라야 산맥의 끝자락과
카라코람 산맥의 만년설이 병풍처럼 우뚝 서있고, 그곳의 눈 녹은 물이 사철 계곡으로 흘러내려 푸른
숲과 초원을 만들었다. 1970~80년대에 활약했던 영국의 보컬그룹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은 ‘카
슈미르’란 노래에서 ‘태양이 내 얼굴에 부딪히고 별들이 내 꿈을 채운다. 당신을 그곳으로 데려가게
해달라”며 그곳의 원시적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총면적 15만1360㎢의 카슈미르는 대부분 산악과 구
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9만5356㎢는 인도령 ‘잠무(Jammu·지명) 카슈미르’에, 5만6003㎢는 파
키스탄령 ‘아자드(Azad·자유) 카슈미르’에 속한다. 카슈미르의 북쪽은 해발 8000m가 넘는 고드윈 오
스틴(일명 K-2봉) 산과 낭가 파르바트(Nanga Parbat) 산이 솟아있는 고산지역이다. 인더스강이 흘
러가는 이 산악지역에는 아름다운 숲들이 비경( 景)을 이루고 있다.
산맥 아래쪽 구릉지대는 초원과 사막이 어우러져 있고, 이곳에서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 농업과 목축
업이 발달돼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와 밀·쌀·사프란(향미료) 등이며, 사과·배·호
두·살구 등 과일도 풍부하다. 특히 북부 아자드 카슈미르 지역은 살구나무가 지천으로 깔려 있어도 아
무도 따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초원 지역에서는 양과 염소 등을 기르고, 양젖을 가공한 요구르트
와 양털 등이 생산된다. 이곳에서 수공업으로 짠 양탄자와 숄(어깨에 걸치는 겉옷) 등은 세계로 팔려
나간다.
인도령과 파키스탄령에 약 3대 1의 비율로 나뉘어 있는 인구는 합쳐서 약 1300만명에 달하며, 전체 주
민 가운데 약 77%가 이슬람교도들이고, 나머지는 힌두교와 불교·시크교 등이다. 특히 인도가 지배하
는 잠무 카슈미르 지역은 다수 인구(64%)가 이슬람교도이고, 이들이 인도의 억압정치에 반발해 무장
독립투쟁에 나서면서, 카슈미르의 보복 살상전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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