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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작성일  2007-10-11
 제목  <이달에 만난 선교사> 선교사 부모 돌보는 선교사, 개척선교회의 윤영곤 선교사
 주제어키워드    국가  
 자료출처  선교타임즈 135호(2007/11)  성경본문  
 조회수  6570  추천수  41
임일규 기자

“아, 글쎄 우리는 선교사한테 볼일 없다니까! 빨리 돌아가요!”
“어르신, 아드님께서 저에게 연락을 주셔서 찾아 온 겁니다. 할머니께서도 많이 편찮으시잖아요. 잠깐 병세만 확인하고 돌아갈게요.”
인터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거친 목소리. ‘선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문도 열어주지 않고 돌아가라는 역정에 ‘윤영곤 선교사’도 당황한 빛이 역력하다.
윤영곤 선교사는 선교사들의 노부모님들을 돕는 MP(Missionary Parents) 사역자다. 의사 출신으로서 자녀들을 해외 선교사로 보내놓고 홀로 사는 노인들의 건강을 돌보고 외로움에 지친 그들의 말벗이 되어주는 게 그의 임무다.
예상치 못한 문전박대에 그는 최근 자식들과 떨어져 사는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강도행위가 기승을 부려서 그런 거 같다며 한숨짓는다. 그러나 안성에서 대전까지 어렵게 시간을 내 방문한 길,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얼굴색을 고치고 저장해 놓은 번호로 전화를 걸어 최대한 예의를 갖춰 통화를 한다.
“어르신, 그렇게 저를 못 믿으시면 할 수 없고요, 대신 제가 어르신들 드리려고 주스 한 박스 사왔거든요. 그거 대문 앞에 두고 갈 테니까 가져다가 드세요. 아셨죠? 꼭 가져다 드세요.”
한참 동안 상대편에서 침묵이 흐르더니 “지금 나가리다”라는 대답이 나온다. 수년 전 아들내외가 해외선교사로 떠난 이후로 이 두 노부부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외롭게 지냈다. 할머니의 병세에 대해 묻자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병세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윤 선교사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은 한사코 반대한다. 할 수 없이 윤 선교사는 위급할 때 연락 달라며 전화번호만 남기고 돌아섰다.
“이런 경우가 간혹 있어요. 나이가 들면서 의심이 많아지고 조심성이 높아지잖아요. 강도나 도둑에 대한 경계 때문에 도움이 절실한 분들마저 이렇게 혜택을 받지 못하시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윤영곤 선교사 본인도 1945년생으로 환갑이 넘은 나이다. 올해 3월부터 이와 같은 사역을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16개 가정을 방문해 19명의 노부모들을 돌보고 있다. 그의 임무 중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노부모들의 말벗이 되어주는 일.
“특별히 하는 것도 없습니다. 방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들을 풀어놓으시는데 5분이 넘으면 모두 눈시울을 붉히시면서 우세요. 그만큼 쌓인 게 많다는 거 겠죠.”
자신의 자녀가 선교사라는 자부심하나로 살아가는 선교사 부모들. 그러나 그들도 정에 굶주린 사람이요 연약한 사람들이다. 해외로 훌쩍 떠나버린 자식들이 눈에 밟혀 정작 자신들의 삶은 돌보지 못한 노부모들을 이제는 한국 교회가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하는 윤영곤 선교사. 그간 7개월 그들의 친구를 자청해온 윤 선교사는 “이 세상에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며 지금부터라도 한국교회가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호소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부모님들 중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이 간혹 계시다는 것과 이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분들이라는 점입니다. 한번은 어느 권사님을 제가 방문해 진료를 해보니 건강상태가 많이 안 좋으셔서 규모가 있는 병원으로 모시고 갔었어요. 그랬더니 위암 4기에 팔 다리가 중풍으로 마비증상을 보이셨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 손을 꼭 잡아드렸는데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손가락 마디마디가 마치 나무토막같이 굵으셨습니다. 돌아가신 제 어머니 생각이 나 눈물이 흐르더군요.” 매달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 20만원만을 가지고 수년간 생활해야만 했던 그녀를 보며 윤 선교사는 ‘이 권사님의 아들이 선교사로 나가지 않았다면 이 분의 인생이 이렇게 힘들었을까’ 자문했다고 한다.

2000년 9월 2일, 윤영곤 선교사는 러시아 연해주로 파송 받아 떠났다.(GMP파송) 55세의 늦깎이 선교사. 30년간을 의사로 살아오면서 마음 한 구석에 담아 놓던 선교의 꿈이 현실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안정된 인생을 살던 그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을 향해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22년간 섬기던 남서울은혜교회의 홍정길 목사의 오랜 기도와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홍 목사님께서 아주 오래 전부터 중국선교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경제개방정책을 실시하면서 중국선교가 정말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께서 새벽예배설교시간에 ‘이제 문이 열렸으니 들어가야 합니다’라고 선포하시는데 마치 꼭 그 말씀이 저를 향해 하시는 말씀 같아 그 때부터 마음에 선교에 대한 부담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윤영곤 선교사가 러시아로 파송받기 까지는 1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가족들의 만류와 자기 자신이 선교사로 쓰임받기 합당한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성경뿐만 아니라 조지 뮬러와 윌리엄 케리와 관련된 신앙서적들을 열심히 읽었던 윤선교사는 어느 날 “같은 예수님을 믿는데 이분들의 삶과 나의 삶은 왜 이렇게 다른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고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선교사의 삶을 살기로 결단을 내렸다. 55세 늦깎이 선교사의 헌신에 그의 친지들은 물론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주었고 안락한 노후를 꿈꾸던 동년배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윤영곤 선교사는 러시아의 영적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고 이야기한다. 러시아 정교회가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복음주의 교회들은 물론 천주교까지 박해하고 있으며 기독교사이비 이단들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윤 선교사는 아직도 과거 사회주의 체제의 흔적들이 여기 저기 남아있어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다. “일단 거주이전이 자유롭지 못하니까요. 제가 만약 집을 비우고 허락 없이 친구 집에서 며칠간 체류하면 조사받아야해요.”
연해주의 한 시골에 작은 병원을 개원, 아이들과 장애인을 돌보며 복음을 전하던 윤영곤 선교사는 4년 전인 2003년 파킨슨병에 걸려 작년 9월 귀국해야만했다. 파킨슨병은 치매 등과 함께 대표적인 노인성 질병이며 신체 전체 혹은 일부가 마비증상을 보인다.
“어렵게 시작한 선교사의 삶을 질병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강행군을 했었죠. 그런데 팔과 다리가 계속 떨리고 특히 운전할 때 브레이크를 밟아도 차가 계속 전진하고 양치질조차 온전히 하기 힘들었습니다.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 홍정길 목사님께서 저에게 선교사들의 부모를 돕는 사역을 해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자신의 몸도 성치 않지만 그렇기에 심신이 지친 사람들의 친구가 될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하는 윤영곤 선교사. 그가 속한 개척선교회(GMP)에는 126명의 선교사 부모들이 있다.
“이 분들이 현재 제 사역 대상입니다. 지금은 저 혼자서 이 분들을 돌보고 있지만 앞으로 전문 의료인력, 그리고 상담인력들과 연계해 조직적으로 활동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좋은 모델을 만들어 한국교회 안에 이를 알리면 다른 기관들도 효율적으로 소속 선교사들의 부모님들을 돌볼 수 있게 되리라 봅니다.”
사역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도 윤 선교사의 손은 파킨슨 병 때문에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해외 선교사들이 한국교회를 ‘대표’로 최전선에서 뛰고 있다면 한국교회는 선교사부모들을 ‘대신’해서 돌봐야 한다는 윤영곤 선교사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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