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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선교정보기타  작성일  2008-12-20
 제목  필리핀 성시화 운동 시작되다
 주제어키워드    국가  
 자료출처  필리핀 정형구 목사  성경본문  
 조회수  4851  추천수  26

 지난 12월17일(수) 마닐라 성시화운동 개설을 위한 목적으로 선교사와 교민을 위한 성회가 있었다. 강사로는 김준곤목사(CCC총재, 성시화운동 고문및 설립자)로서 85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젊은이들에게는 소명을 심어주고, 장년들에게는 사명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40여년 한국의 수많은 대학생들과 젊은이들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과 전도의 사명감을 심어주신 김목사님은 살아계시는 자체가 한국교회의 자랑이요, 세계선교의 한 축임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CCC는 지난 1990년 3000명의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1달 단기선교사로 필리핀에 파송하여 복음의 씨를 뿌린적이 있고, 현재는 현지인 캠퍼스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2부 기도시간에는 박원영목사(서울나들목교회담임, 한희년사무총장)의 인도로 뜨거운 기도운동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회개와 각성과 새로운 헌신을 다짐하게 되었다. 이날 약 545명이 참석한 가운데 은혜와 헌신과 각오는 7-80년대의 한국교회를 연상하게 하였고, 강요되지 않은 자발적인 헌금(끝나고 나가며 자유롭게 헌금함)은 드릴 것 없어(?) 결혼반지를 하나님께 드린 손길을 통하여 이 땅 마닐라에 성시화의 불길을 지피는 불씨가 되기를 희망한다.

 금번 마닐라 성시화운동의 준비모임은 앞으로 마닐라의 한인들 뿐아니라 필리핀전지역 현지인들에게 성시화운동을 계획하고 PCEC(필리핀복음주의교회협의회)와 MOU를 체결하여 본격적인 성시화운동을 전개하기로 합의하였다.

 지난 세월의 필리핀선교가(한국사필리핀선교30년) 개인주의, 개 교회주의였다면, 이제 다가오는 선교는 한국교단과 필리핀교단이, 한국의 협의회가 필리핀의 협의회를 통하여 공동 선교를 감당해야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이미 감리교는 모든 감리교선교사는 현지 감리교교단에서 선교사의 비자를 추천받고 있고, 교회당 매입및 건축은 현지감리교 교단 이름으로 진행해오고 있다. 장로교단 선교 또한 현지장로교를 세워 현지인들에게 모두 이양하는 과정중에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PCEC(필리핀복음주의교회협의회)와 한국 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총무단과 MOU를 체결한 바 있고, 계속해서 한기총과 PCEC와 정식 MOU를 체결하여 한국의 모든 교회와 단체들이 필리핀복음주의 총연합회(PCEC)와 함께 협력하여 효과적인 선교열매들을 맺어가기를 기대해 본다. 금번 한국성시화본부와 PCEC와의 MOU 체결은 이 같은 취지에 부합하여 필리핀선교의 열매를 맺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기를  원하는 바이다.


-성시화 운동과 홀리클럽이란?-

 聖市運動의 성서적 배경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렘19:2, 벧전 1:16), "오직 너희는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빌1:29)는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성시화운동(Holy City Movement)은 복음의 능력으로 부정부패가 없는 깨끗하고 거룩한 도시, 즉 성시(聖市)를 만들기 위한 총체적 복음 운동이다.

 성시화운동의 움이 튼 시기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1885년 이후 1904년과 1907년 원산과 평양에서 강력한 성령운동이 일어났고 일제통치와 6.25 전란의 와중에서 한국의 기독교는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왔으며 전후복구와 민주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1970년에는 C.C.C. 총재 김준곤 목사에 의해 민족복음화운동이 전국에 선포되었고 1971년 대전집회와 1974 엑스프로 집회로 교회의 대 부흥이 왔었다. 이 두 집회는 오늘날 성시화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성시화운동의 싹이 튼 시기는 효과적인 민복복음화의 전략으로 학원복음화, 전군신자와 국가조찬기도회를 시작한 김준곤 총재는 또 하나의 전략으로 국내에 한 도시만이라도 완전복음화 하여야 한다는 성시화운동을 채택하여 1972년 8월 스위스 제네바와 비슷한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최초의 성시화운동 전국대집회를 개최하였는데 이것이 한국성시화운동의 싹이 되었다.

 16세기에 종교개혁자 칼빈이 스위스 제네바를 성시모델로 만들었던 것이고 18세기 영국의 존 웨슬리의 성경운동, 19세기 미국의 디엘 무디 목사의 복음의 열정을 통한 성시운동은 그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한국에서는 1972년 김준곤 목사의 ‘호반의 도시’ 춘천을 성시화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한 것을 한국 성시화운동의 기점으로 삼고 있다.

 한국이 선교사파송 2위 국가로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세계경제대국 11위권에 올려놓으시고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우리나라가 홀리성시화 성령운동을 불붙게 하심은 세계 일류 지성국가가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본격적인 한국의 성시화운동은 1972년 김준곤 목사에 의해 그리고, 1995년에 전용태장로(변호사, 중앙선거관리위원, 법무법인 로고스 대표변호사, 홀리클럽 창립자, 대구, 인천, 청주, 춘천지검 검사장 역임)와 양인평장로(현, 법무법인 로고스 대표변호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춘천검사장, 법원장으로 부임하여 성시화의 불을 받고 그 불꽃을 전국적으로 확산한 결과 이제는 이 운동이 국내에 40여개 도시에서, 그리고 해외에도 10여개 도시에서 시작되어 바야흐로 지구촌 곳곳으로 번지는 세계적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성시화운동본부 산하 홀리클럽은 성시화를 목적으로 삼고 3교(三敎)및 7성(七聖)운동을 위한 초교파 크리스천 평신도 리더들의 직능단체라 말 할 수 있다. 이 운동은 처음엔 기독법조인들을 주축으로 시작하였으나 1990년대를 지나면서 학계, 예술계, 재계, 정계, 언론계 등을 비롯한 신앙적 사명의식을 가진 사회 각층의 크리스천 리더들이 대거 참여하는 한국교회 최대의 평신도 전문인 모임체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홀리클럽에서는 평신도가 복음화 운동과 선교에 주체가 되어 각 자의 직업과 삶의 현장을 통해 세상을 성서를 통해 깨우자는 평신도 선교운동이다. 그럼으로 이 홀리클럽에서는 평신도들이 선교운동의 동역자의식을 갖고 초교파, 초지역성, 초계층, 초혈통(인종) 및 탈정치성의 순수한 신앙본질에 기초한 복음화 클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 필리핀 정형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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