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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kcmseoul  작성일  2008-04-11
 자료구분  주제어  주제어  모압에서 돌아온 엘리멜렉의 과부와 며느리
 내용

성경:룻기1:6-10         효심(孝心)이 지극한 두 며느리
 

 '고부(姑婦)간의 갈등'은 결코 남의 일로만 치부하기엔 거리감이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 가정의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지나친 고부 갈등은 정상적인 가정생활에 커다란 위협을 주기도 하고 때론 심각한 정신적인 질환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마음에 병을 앓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기 시어머님 이야기만 나오면 분함과 원통함에 눈물을 주르륵 흘립니다. 또 어떤 이는 자기 며느리에 대한 억한 심정으로 치를 떨기도 합니다. 아무튼 고부간의 갈등이 없는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서로 힘쓰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선 자신의 입장에서만 상대방을 바라다보려는 이기주의적 태도에서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주는 따뜻한 마음씨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여기 시어머니 입장에서 자신의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섬긴 두 며느리를 소개합니다.

Ⅰ. 궁지에 몰린 시어머니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의 입장에서 본 시어머니 나오미는 너무도 불행한 여인입니다.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는데다 두 아들마저 잃어버렸으니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선 꼴입니다. 그렇다고 재산이나 많은 시어머니도 아닙니다. 믿고 의지할 사람들도 없고 돈도 없으니 별 볼일 없는 시어머니입니다. 게다가 외국인입니다. 이러한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목매달고 있을 이유나 아쉬움이 하나도 없습니다.

Ⅱ. 효심이 지극한 며느리들
  그런데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정성을 다하여 섬깁니다.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8절 중반절). 시아버지가 없는 과부 시어머니라고 구박하지 않았습니다. 의지할 자식도 없는 시어머니라고 멸시하지 않았습니다. 가진 재산도 없는 가난뱅이 시어머니라고 무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정성을 다하여 섬겼습니다. 외로운 시어머니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리려고 힘쓴 그들입니다. 의지할 데 없는 시어머니의 마음이 행여 상하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으로 정성을 기울여 봉양을 합니다. 외국인 시어머니가 낯선 이국 땅에서 마음 고생하지는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조심합니다. 없는 살림이지만 연로한 시어머님의 건강이 상하지 않도록 음식 봉양도 신경을 씁니다. 어떻게 며느리들이 나오미를 선대하였는가는 자세히 언급은 되어 있지 않지만 우리가 이렇게 미루어 상상하는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나오미 입장에서는 너무도 고마운 며느리들입니다. 흠잡을 데가 없는 착한 며느리들입니다. 고마운 마음에 감동이 된 나오미는 어떻게 해 줄 것은 없으니까 그저 주 하나님께서 효심이 지극한 며느리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도할 따름입니다(8-9절).

Ⅲ.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음
  주 하나님의 은총으로 고향 땅에 기근이 끝나고 풍요의 복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나오미는 더 이상 모압 땅에 대한 미련을 가지지 않고 서둘러 짐을 꾸려 가지고 고국 이스라엘을 향하여 떠납니다(6절). 물론 효성이 지극한 두 며느리들도 동행합니다(7절).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두 며느리를 데리고 돌아가는 것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는 걸립니다. 그래서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간곡히 권면합니다.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8절 상반절). 하지만 오르바와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10절). 명예도 부귀도 다 싫고 오로지 시어머니만을 생각하겠다는 표현입니다. 참 대단한 며느리들입니다. 자신의 안일과 미래는 관심이 없습니다. 현재 시어머니만을 위하는 길을 생각합니다. 불쌍하고 가련한 시어머니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들을 희생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철저히 시어머니 입장에서 살아가려는 두 며느리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하면 다른 사람보다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챙깁니다. 우선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심리입니다. 그러나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은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보다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생각합니다.

  고부간의 갈등,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시어머니 입장에서 시어머니를 바라보고 섬기는 자세를 며느리들이 취하면 됩니다. 어려워도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봉양하려고 하는 오르바와 룻을 보고 계시는 우리 주님의 심정은 당사자 나오미보다 더욱 흐뭇해 하셨을 것입니다.    


성경:룻기1:8-14               배려 깊은 시어머니

  고부간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하여는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주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시어머니인 나오미 입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로 합시다.

Ⅰ. 며느리의 입장에서
  시어머니 나오미는 며느리들의 입장에서 현재를 보려고 하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8절 상반절). 이국 땅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두 며느리들과 함께 고국 고향 땅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시어머니 나오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한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청상 과부인 두 며느리에 대한 마음의 부담이었습니다. 지금 고향으로 돌아간들 잘 되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며느리들을 바라보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며느리들을 데리고 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여겨집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좋은 것이 아니라 며느리들에게 유익하다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암담한 현실과 또한 불확실한 미래로 굳이 과부 며느리들을 데리고 가는 것은 순전히 시어머니의 욕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직은 젊은 청춘인 과부 며느리들의 순탄한 장래를 위하여 그들을 자유롭게 놓아 줄 필요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저 시어머니 봉양에 정성을 들이는 착한 며느리들, 자신들을 돌아보지 않고 시어머니를 먼저 생각해주는 그 갸륵한 마음씨, 힘겨운 삶의 짐을 지고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시어머니를 따라 나서는 그들,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대단한 선언입니다. 희망 없는 늙은 과부 시어머니에게 매어있지 말고 이제부터는 너희 원하는 대로 멋진 삶을 살라는 선언입니다. 그렇다고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이 먼저 이렇게 해 달라고 요구한 것도 아닙니다. 시어머니 나오미 입에서 먼저 꺼낸 말입니다. 만약 나오미가 자신의 입장에서만 현실을 바라보려고 했다면 이러한 말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먼저 며느리들의 입장에서 깊이깊이 생각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어떻게 해야 내 며느리들에게 유익이 될 것인가를 신중히 고려하였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며느리들이야 어찌되든 상관할 바가 아니고 자기 하나만 편하고 잘되면 되는 것 아니냐 하였다면 시어머니 나오미 입술에서 이 말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이 선언이 며느리들의 의중을 떠보기 위하여 한번 해 본 빈말이 아니고 진심이었음을 우리는 11절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시어머니의 며느리들의 자유 선언 발표에 당사자인 오르바와 룻은 받아들이지 않고 시어머니와 함께 가겠다고 울면서 고집을 피우자 이에 질세라 나오미는 여러 가지 이유를(11-13절) 들어 한사코 떠나가라고 입술에 힘을 주고 말하는 대목입니다. 며느리의 입장에서 며느리들의 장래를 배려해준 시어머니 나오미입니다.

Ⅱ. 며느리를 축복하는 시어머니
  시어머니 나오미는 진정 며느리들이 잘 되기를 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8-9절). 재혼해서 정말 잘 살기를 원했습니다. 이게 시어머니로서 입술에 담기 쉬운 말입니까? 친정어머니는 몰라도 시어머니가 자기 며느리의 재혼을 부추기고 허락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말 속 깊은 시어머니입니다. 아니 의지할 남편도 죽도 아들들 마저 죽은 늙은 과부 나오미가 현재 누구의 덕으로 그나마 목숨 연명하고 있는데 그 효성 극진한 며느리들 보고 어서 가서 좋은 사람 만나서 잘 먹고 잘 살라고 축복해 주다니! 게다가 과부 며느리들하고 결혼할 남자의 집까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축복하고 있으니! 눈에 가시처럼 여기지 않고 주 하나님 앞에서 복 받아 누릴 귀한 며느리들로 여긴 나오미입니다.  

  그렇다고 오늘 집에 돌아가 나도 나오미 같은 속 깊은 시어머니 되겠다고 과부 며느리들 보고 재혼하라고 말하지는 마십시오. 시험듭니다. 자칫 고요하던 집안에 태풍이 몰아칠 수 있습니다. 전 그런 뜻으로 본문을 풀고 있지는 않습니다. 핵심은 며느리의 입장에서 며느리들을 생각해 주고 위하여 마음껏 축복을 빌어주는 믿음의 좋은 시어머니가 되자는 것입니다. 고부 갈등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먼저 며느리의 입장에서 며느리를 바라보는 눈을 가지시고 행동으로 옮기는 시어머니가 되려고 힘쓰면 됩니다. 그러한 시어머니를 우리 주님은 크게 도우시사 능히 감당할 수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성경:룻기1:14                친정으로 돌아가는 오르바(1)

  오르바와 룻은 동서지간입니다. 두 사람 모두 모압 여자로 각각 나오미의 두 아들하고 결혼함으로 동서지간이 되었습니다. 오르바나 룻 누구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마음씨가 곱고 웃어른에 대한 예의가 깊었던 정숙한 여인네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힘겨운 시집 생활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심해서 그런 것 아닙니다. 일찍 남편들이 죽었음으로 그들 스스로 일어나서 가정을 부양해야 하는 데서 받는 어려움입니다. 늙은 과부요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봉양하고 또한 가정의 재정을 감당해야만 하는 의무와 책임이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르바와 룻은 이를 마다하지 않고 성실히 잘 감당하였습니다. 원망도 하지 않고 묵묵히 어려운 집안을 세우려고 힘쓰고 연로한 시어머니를 섬기는데 열심을 내었습니다. 어쩌면 힘에 부칠 정도로 어려울 경우에는 오르바와 룻은 서로를 격려하며 위로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서로 두 손 꼭 잡고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끝까지 달려가자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꺼이 자신들의 고향과 민족을 등지고 시어머니를 따라 낯선 이스라엘 땅으로 가겠다고 나섰던 것입니다. 또한 도중에 시어머니가 친정으로 돌아가라는 말에 펄쩍 뛰며 반대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어머니 나오미가 더욱 간절한 심정으로 돌아가라고 호소하자 상황이 달라집니다.

Ⅰ. 떠나는 오르바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14절 상반절). 처음부터 오르바가 시어머니 나오미를 두고 떠날 마음은 없었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고생문이 활짝 열려 있는 늙은 과부 시어머니를 따라 가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희생시켜야 하는 것에 부담이나 거부감을 가지지 않은 듯 합니다. 고생스러워도 끝까지 시어머니와 함께 걸으며 동고동락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조목조목 들어 떠나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자(11-13절) 오르바의 마음에 변화가 일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이상과 명분만 가지고 넘기에는 너무도 현실의 벽이 높아 보입니다. 게다가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간곡히 그리고 완강하게 호소하는 시어머니의 자세를 보니 시어머니의 말씀대로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집니다. 그 순간 청상과부로 평생을 보내는 것에 대한 부담이 생깁니다. 지금 시어머니가 이토록 돌아가라고 호소할 때에 결단하고 떠나는 것이 괜찮다고 여겨집니다. 어쩌면 지금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지도 모른다 라는 위기감도 불현듯 생겼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러한 오르바를 보고 무조건 자기 하나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하는 얌체나 이기주의자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결국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굳 바이 키스를 하고 친정으로 돌아간 오르바였지만 그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며느리입니다. 우리가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은 그녀의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이생의 안목이라는 점입니다. 즉 오르바는 이 세상의 관점에서 자신의 장래를 결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의 설명대로 현실의 상황은 너무나도 암울합니다. 또한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가 어려워도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보인다면 그런 대로 현재의 고난을 감수할 수 있으련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발전이 없는 현재 상황에 머물며 허우적거리기보다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하여 또 다른 방법과 길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판단의 기준은 자기 자신의 행복입니다. 시어머니를 따라 가는 것보다 아직 젊고 싱싱할 때에 친정으로 돌아가 괜찮은 남자 만나 재혼하는 편이 훨씬 자기 자신에게 낫다고 여깁니다. 게다가 시어머니가 먼저 나서서 그렇게 하라고 애원하고 있으니 마음의 부담도 한결 가벼워집니다. 그래도 시어머니에 대한 정이 깊어 발걸음은 쉬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동서 룻을 부둥켜안고 어쩔 수 없는 기막힌 현실을 놓고 서러워 통곡한 뒤 겨우 몸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오르바는 떠납니다. 새롭게 펼쳐질 자신의 제 2인생을 꿈꾸며 친정으로 돌아갑니다.

  이후 오르바의 삶에 대하여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녀가 재혼하여 잘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녀가 이전의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보여 주었던 희생적인 효도와 섬김에 대하여 잊지 않으시고 풍성함으로 갚아 주셨는지도 모릅니다. 나오미의 축복기도를(8-9절) 들어주시어 오르바의 남은 생애를 편안한 삶으로 이끌어 주셨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르바 그녀에게는 진정한 영적 축복은 따르지 않았을 듯 싶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먹고 잘 살면 무엇합니까? 아침 안개와 같이 쉬이 사라질 세상 영화에 취한 들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성경:룻기1:15-18                  룻의 신앙(1)

  시어머니의 강권에 마지못해 떠나가는 동서 오르바의 뒷모습을 보면서 룻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나도 갈까?, 친정으로'. 그런데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달라붙습니다. 여전히 시어머니와 같이 행동하면 뭔가 나오지 않겠느냐 하는 일말의 기대가 남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사실 나오미에게 얻을 수 있는 경제적 대가나 이득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빈털터리 늙은 과부에게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보태주면 보태 주었지 받아 낼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룻은 떠나지 않습니다. 열악한 현실을 보는 안목이 가려져 있어 현실 파악 능력을 상실한 그녀도 아닙니다. 지금 상황이 최악이고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 시어머니를 따라가면 무지막지한 고생을 한다는 것쯤이야 잘 알고 있습니다. 젊은 청춘을 제대로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평생 고생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시어머니가 떠나가라고 강권할 때에 친정으로 돌아가면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큼을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룻의 발걸음은 친정 앞으로 가에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가라고 떠다미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가슴으로 더욱 파고듭니다. 웬만한 사람들이 보아도 룻의 행동은 너무 어리석게 보입니다. 청상과부 룻이 왜 이렇게 처신을 하고 있습니까?

Ⅰ. 바른 가치관
  룻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여인입니다. 본문을 읽어 가노라면 이러한 룻의 모습을 능히 엿볼 수 있습니다. 룻의 현재 신분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며느리입니다. 며느리는 딸과 같은 자식입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할 책임과 의무가 그녀에게 있습니다. 의지할 데 없는 시어머니를 나 몰라라 할 처지가 못됩니다. 아무리 시어머니가 며느리 룻의 장래를 생각해 주느라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강권을 해도 그 말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됩니다. 어찌 홀로 되신 시어머니를 놔두고 나 혼자 잘 살아 보겠다고 할 수 있습니까? 윤리적으로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룻이 단지 윤리적 책임만을 생각하여 시어머니를 떠나서는 안 된다 라고 결심하였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룻의 가슴과 생각에는 '부모 공경'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깊이 박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하며 최선을 다해 봉양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룻은 상황에 따라 효도를 바꾸는 여인이 아닙니다. 끝까지 내 어머니는 내 어머니입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흔들리지 않고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시집왔으니 죽어도 이 시댁에서 죽으리라' '며느리로서 그리고 딸로서 내 할 일을 끝까지 다하리라' '나의 장래가 아무리 중요해도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에 비교될 수 있으리오' '지금은 내 입장보다 시어머니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룻의 사고방식입니다. 자신의 안일보다 시어머니를 더 귀하게 여깁니다. 생각이 발라야 행동도 바릅니다. 사람은 마음에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본문 16-17절을 읽으면 우리는 룻의 철두철미 시어머니 나오미 중심인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눈시울 적시는 감동이 구구절절 배어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며느리라는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지금 룻에게는 자기 자신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시어머니 나오미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돌아가라는 시어머니의 강권이 영 귀에 거슬리기까지 합니다.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16절 상반절).   


성경:룻기1:15-18                  룻의 신앙(2)
 

  바른 가치관은 신앙에서 형성됩니다.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모시려고 했던 룻은 그녀의 가슴에 신앙이라는 거대한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룻의 신앙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합시다.

Ⅰ. 옛 생활과의 단절
  우선 눈에 띄는 룻의 신앙은 이전 생활로의 회귀를 강력하게 거부하는 태도입니다. 친정으로 돌아가라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강권은 분명히 과거로 돌아가라는 표현입니다. 지난날 가졌던 생활 습성을 다시금 되살려 살라는 말입니다. 룻의 과거의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그렇다고 그녀가 여자로서의 몸가짐에 오점이 남는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압 족속의 딸로서 모압의 풍습을 좇아 행하던 생활의 범주에서는 벗어나지 않았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친정으로 돌아가라는 시어머니의 말속에는 과거 생활로의 복귀가 담겨져 있습니다. 룻이 이스라엘 남자와 결혼하여 시어머니 나오미의 집으로 들어온 뒤는 점차 잊혀진 옛 생활입니다. 그녀가 배운 것은 시댁의 풍습입니다. 어쩌면 자유로웠고 재미있었던 모압의 풍습이 단조롭고 따분한 이스라엘 풍습에 비하여 좀더 매력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더욱이 청상 과부인 룻에게는 친정으로 돌아가 모압 여인으로 제 2의 멋진 인생을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그런데 룻은 이것을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16-17절). 이제 룻에게는 모압은 없습니다. 비록 그녀의 몸에 모압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더 이상 모압의 풍습을 좇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만이 있을 뿐입니다. 철저하게 옛 생활과의 단절을 고한 룻입니다. 젊은 과부 룻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옛 생활이지만 그녀는 관심이 없습니다. 현재가 고통스럽고 또한 미래도 쉽사리 끝나지 않을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하여도 과거로 돌아갈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룻은 이스라엘로 시집 온 뒤로는 이스라엘 사람으로 살고 싶어합니다. 새롭게 배우고 익힌 이스라엘의 풍습을 좇아 계속 살고 싶어합니다. 지금 생활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 룻입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특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청상 과부 룻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들은 의아해 할 것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룻의 입장에서는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백 번 천 번 나아 보이기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 피우는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룻이라는 여자는 앞 뒤 꽉 막힌 맹꽁이란 말인가. 룻이 친정 복귀를 거부하고 강력하게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이스라엘로 가려고 했던 이유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단도직입으로 말하여 그녀는 죄악에 파묻힌 옛 생활과의 영원한 단절을 원했던 것입니다. 이미 그녀는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친정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다시금 죄악으로 얼룩진 옛 생활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함을 그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애써 얻은 신앙을 버리고 다시금 우상 섬기는 옛 생활로 돌아가다니!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룻의 확고한 신앙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신앙이 더욱 중요함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필사적으로 과거로의 돌아감을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신앙의 관점에서 상황을 파악한 룻입니다.

  친정으로 돌아가라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강권은 룻의 입장에서는 시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을 포기하고 다시금 옛날 우상 섬기는 시절로 돌아가라는 시험입니다. 신앙적 타락이라는 본질은 숨기고 멋진 남자를 만나 재혼하여 아들 딸 낳고 남은 인생을 즐길 수 있다는 미끼로 유혹하는 시험입니다. 그러나 룻은 끝까지 신앙의 길을 지킵니다. 이는 옛 생활과의 철저한 단절을 통해 나타납니다. 신앙은 죄악된 옛 생활 옛 습성을 끊어버리고 예수 안에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고린도후서5:17). 다시금 옛 생활로 돌아갈 기회가 와도 결코 거기에 미련을 두지 않고 묵묵히 앞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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