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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kcmseoul  작성일  2008-04-11
 자료구분  주제어  주제어  에돔의 멸망
 내용

성경:오바댜1:1                   하나님의 대적

 

  오바댜서는 '여호와의 종'이란 뜻을 지닌 오바댜 선지자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대개 유다의 멸망 직후로(BC 586) 봅니다. 형제인 이웃 나라 유다가 어려움에 당한 것을 보고도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고통의 채찍을 무자비하게 휘둘렀던 에돔 족속에 대하여 주 하나님은 크게 분노하시고 심판의 칼을 드시는 내용이 본문에 담겨져 있습니다.

 

Ⅰ. 하나님의 대적이 된 에돔

  "우리가 일어나서 그로 더불어 싸우자"(1절 하반절).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싸우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누구와 싸울 것인가? 바로 에돔입니다. 어쩌다가 에돔이 하나님의 대적이 되었는가? 그 내용은 계속 이어지는 본문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 부분은 차후 심도 있게 다루도록 하지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주 하나님을 감히 싸움의 상대자로 삼을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은 곧 죽음이요 멸망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살 수 없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을 힘입어 기동합니다. 한시도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나서는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고 맙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에돔은 하나님의 대적하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주 하나님께서 에돔을 쳐부수어야 할 대적의 범주에 집어넣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죄 없는 인생을 혹은 민족을 마구잡이 식으로 멸하시지 않으십니다. 멸망을 자초하는 근거를 먼저 주님께 내놓기에 하나님이 심판의 칼을 드시는 것입니다. 에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먼저 주 하나님 보시기에 멸망을 받아야 하는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에돔의 죄악이 오바댜 선지자의 입술을 통해 낱낱이 폭로됩니다. 공의의 주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할 수밖에 없는 에돔의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에돔과 맞서 싸우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은 곧 죄악에 대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Ⅱ. 에돔의 비극

  가장 비참한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자입니다. 은혜가 없는 곳에는 오직 주님의 무서운 심판만이 존재합니다. 에돔의 비극은 하나님이 그들의 대적이 되셨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강한 민족이라 하여도 하나님의 공격에 저항하거나 목숨을 건질 확률은 제로입니다. 전혀 희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도울 자도 없고 또한 도망갈 구멍도 없습니다. 고스란히 주님의 칼에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려움 가운데 멸망의 구덩이로 빠져갑니다. 그렇다고 에돔이 당한 비극을 보며 그 누구도 동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조금도 치우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자를 실수로 멸망시키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시 오바댜가 이 엄청난 비극의 소식을 당사자인 에돔 족속들에게 전하여 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틀림없이 듣는 모든 이들이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크게 떨었을 것입니다.

 

  행여 우리가 주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지 않을까 조심해야 합니다. 주 하나님의 심판의 손에서 건질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칼은 우리를 원수의 손으로부터 도우시는 구원의 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원수의 압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우리의 절규에 가까운 간구소리를 들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원수와 싸우시는 우리 주님이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끕니다. 인생의 참담한 비극은 주의 말씀을 버리고 죄를 가까이 할 때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대적자로 살지 않고 동역자로 사는 자들입니다.   


성경:오바댜1:2           미약(微弱)과 멸시(蔑視)

 

  인간사의 모든 주권은 주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사람이 제아무리 뛰고 날아도 하나님이 돕지 않으시면 별 볼일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자질과 능력을 과신하여 살아갑니다. 착각 속에서 헛되이 헤매는 꼴입니다. 권세도 헛되고 금은보화도 부질없음을 당시는 깨닫지 못하다가 소위 잘 나가던 시절이 다 지나간 다음에야 허공을 향하여 힘없이 팔을 저으며 무력감과 비참함에 몸을 떱니다.

 

Ⅰ. 미약하게 만드시는 주님

  "내가 너를 열국 중에 미약하게 하였으므로"(2절 상반절). 주 하나님은 죄악과 교만에 지든 에돔을 미약하게 만듭니다. 한참 잘 나가고 있던 에돔을 하루아침에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전락시킵니다. 사람을 강하게도 하시는 주님은 또한 원하시면 반대로 사람을 약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람의 강함과 약함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강하다고 떠벌리고 있을 때도 우리 주님이 그만큼 봐주고 있으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훅 불면 땅바닥에 꼬꾸라지는 게 인생입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는 자는 주님 앞에 견디지 못합니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여리고 성도 우리 주님의 콧김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에돔이 강한 족속으로 열국 중에 인정받고 추앙 받아 한껏 콧대가 높아져 있을 때 우리 주님은 그들을 아주 약한 존재로 떨어뜨렸습니다. 바로 그들의 가증한 죄악과 강퍅한 교만 때문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자라도 주님이 잡아 끌어내리면 어쩔 수 없습니다. 강한 근육질의 팔을 쳐들고 자랑할지라도 주 하나님이 한 번 가볍게 손봐주시면 작은 돌멩이 하나 들지 못하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Ⅱ. 멸시를 받는 에돔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느니라"(2절 하반절). 하나님이 에돔을 미약하게 만들었을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집니까? 크게 멸시를 받았습니다.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무시와 학대를 받는 꼴로 전락하게 됩니다. 잘 나가던 자가 하루아침에 쪽박 찬 꼴입니다. 떵떵거리던 기세가 모두 사라져 버리고 심지어 전에는 종이었던 자에게도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 하나 인정하여 주지 않습니다.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합니다. 하나님이 에돔을 멸망시킬 대상으로 삼자 끔찍한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집니다. 평소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두려워했던 이웃 나라들이 에돔을 우습게 짓밟습니다. 그렇다고 그 어는 나라 어느 민족도 에돔을 동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네가 그런 꼴이 되었는고 하며 비웃음을 살뿐입니다. 주 하나님이 미약하게 만들면 멸시와 조롱거리로 전락합니다. 아무리 기를 쓰며 자기 자신을 세우려고 한들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세워 주시기 전에는 계속 멸시를 당하는 비참한 지경에서 단 한발자국이라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두려우신 주 하나님의 손에서 에돔은 이웃 민족들의 조롱거리로 고통을 받습니다. 이것은 에돔이 이웃 민족들에 의하여 침략과 착취를 당하게 됨을 보여줍니다. 에돔이 전에는 이웃 나라들이 상대하기도 버거운 강대국이었지만 지금은 고양이 앞에 생쥐 꼴입니다. 하나님이 에돔을 미약하게 만드니 그 같은 결과가 벌어진 것입니다.  

 

  주 하나님은 사람을 미약하게도 만들어 멸시를 받게 하실 수도 있고 반면에 연약한 자를 강하게 세워 존귀함을 입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손을 들어 교만한 자를 쳐서 미약하게 만들 땐 그 동안 누리던 모든 부귀영화는 사라지고 대신 멸시로 얼굴에 차고 넘칩니다. 우리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으로 우리네 삶 속에서 역사하셔야 하지 결코 우리를 미약하게 만드시는 분으로 나타나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 앞에 죄를 짓고 교만에 빠지면 주님은 손을 들어 우리를 치실 땐 하루아침에 약해지고 멸시를 받는 자리에 뒹굴게 됩니다.     


성경:오바댜1:3-4           교만을 깨트리시는 하나님

  아무리 나은 여건에 있어도 거기에 잠시라도 취하여 겸손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공격하시는 표적 제 1호입니다.

Ⅰ. 에돔의 교만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3절 중반절). 에돔 족속은 주로 산악지대에 살기에 지형적으로 외부의 침입에 대하여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참 잘 나가던 시절이고 지형적인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기에 스스로 자신감에 매료되어 있는 에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히 어떤 세력이 에돔을 대적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주 하나님은 에돔의 이러한 태도에 대하여 교만이라고 정죄하고 계십니다. "너희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3절 하반절). 스스로 교만에 빠져있다고 폭로하셨습니다. 지형적인 조건에다 부강한 국력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교만에 사로잡히기는 너무 쉬었습니다. 겸손은 멀어 보여도 교만은 매우 가깝습니다. 영적으로 긴장된 상태에서 잠시라도 방심할라치면 교만이 영락없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하물며 스스로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고 자신의 힘과 배경을 과시하려는 태도에서는 교만의 탑은 급속도로 높아집니다. 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에돔 족속은 자신들의 힘을 믿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하여졌습니다. 더욱 한심한 일은 교만의 독에 마비되어 스스로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장담하고 있는 교만이 한낱 모래성에 불과함을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들을 파멸로 이끄는 무서운 덧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습니다.  

Ⅱ. 교만을 깨트리시는 하나님
  교만은 하나님의 진노를 끌어들입니다. 교만한 자의 뻣뻣한 목은 주 하나님께서 반드시 꺾어버리십니다.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4절). 에돔은 감히 그 어떤 세력이 자신들을 뭉갤 수 있으리오 하며 자신만만하였습니다. 그런데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여지없이 끌어내려 땅바닥에 내동댕이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세상 모든 민족의 흥망성쇠는 오직 주 하나님에게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민족을 혹은 어떤 나라를 강하게도 하시고 반면에 멸하기도 하십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에돔이 입을 놀려 누가 자신들에게 덤비리오 하며 떠들고 있으니 기가 차고 어이가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철옹성 같은 곳에 진을 치고 있어도 하나님이 흔들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립니다. 주님은 에돔의 교만에 대하여 불같이 진노하사 비참한 지경으로 떨어뜨리시겠다고 발표하십니다. 교만하고도 주님 앞에서 무사하리라고 생각했다간 큰 낭패를 봅니다. 패가망신은 물론 한 나라가 절단 나는 일은 시간 문제입니다. 에돔의 교만에 대하여 우리 주님은 비웃음과 짓밟음으로 갚으십니다.  

  선 줄로 알 때 넘어질까 조심하는 태도가 망하지 않고 사는 길입니다. 교만하고도 무사하고 잘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요 심각한 중병입니다. 교만의 탑이 높을수록 우리 주 하나님의 진노는 커집니다. 하늘 높이 교만의 탑을 쌓은 에돔은 가장 낮은 자리로 떨어지는 무서운 심판을 받습니다. 독수리처럼 높이 올라 달아난 다고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늘 별 사이로 올라가 머무른다 하여도 하나님의 주권은 거기에도 똑같이 미칩니다.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교만한 자리는 곧 곤두박질쳐 떨어지는 비극의 시작입니다.   


성경:오바댜1:5-6                심판의 강도

  읽은 본문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에돔 족속이 어느 정도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에돔을 어느 정도 낮은 자리로 내몰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Ⅰ. 도적을 만나고 강도를 만나도
  "혹시 도적이 네게 이르렀으며 강도가 밤중에 네게 이르렀을지라도 그 마음에 만족하게 취하면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5절 상반절). 도둑도 자기 욕심을 다 채우면 물러나고 강도도 자기가 원하는 만큼 뺏고 나면 돌아갑니다. 그런데 에돔은 도둑을 당하고 강도를 만난 경우보다 더 심각한 상태를 경험합니다. 즉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거 너무 심한 것 아니냐 하는 말이 세인들의 입에 오르고 내립니다. 아무리 고약한 도둑이 들어도 이 정도는 아닐진대 아무리 흉악한 강도를 만나도 이 정도는 아닐진대 할 정도로 에돔이 당한 꼴은 비참하고 최악의 상태입니다. 이 같은 끔찍한 일을 당한 에돔도 할 말을 잃습니다. 이렇게까지 거덜날 줄이야 꿈에라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Ⅱ. 두려우신 주 하나님
  교만한 자를 주 하나님은 인정 사정 볼 것도 없이 쓸어버립니다. "네가 어찌 그리 망하였는고"(5절 하반절). 하루아침에 쫄딱 망하게 만듭니다. 교만한 자가 의지하던 모든 것들을 다 빼앗아 없애버립니다. 그래도 한 두 가지는 남겨두시지 않겠느냐 하실 지 모르나 어림도 없습니다. 택한 백성에 대한 징계가 아닌 이상 교만에 대한 심판은 숨통을 끊어 놓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에돔이 당한 꼴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리가 부러져 목발을 짚고 다닐 형편이라면 그나마 남은 목발마저 빼앗아 불태워버립니다. 에돔의 가증스러운 교만이 시커먼 재로 될 때까지 진노의 불로 살라버리신 주 하나님이십니다. 부유하고 떵떵거리던 에돔이 제대로 손도 쓰지 못한 채 급작스럽게 망하여 하루아침에 가장 비참한 인생으로 전락하였을 때 그들이 얼마나 두렵고 얼마나 놀라워했을까요? 하나님이 휘두르시는 심판의 칼에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공포에 빠져들었을 것입니다. 실오라기 하나라도 남김없이 쓸어 가시는 주님의 진노 앞에 극도의 절망과 공포에 압도당하였을 것입니다. 교만하다가 주님께 에돔이 당한 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하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주 하나님 앞에서 목을 뻣뻣이 세워 이득 보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나마 누리고 있던 것까지 다 빼앗기는 꼴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지킨다고 내 소유가 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품에서 거두어 가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입니다. 아마 우리 입에서 이거 너무 심한 것 아니냐 하는 원망이 나올 것입니다. 에돔이 한참 잘 나가던 시절에 취하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을 내세우다가 졸지에 쫄딱 망하고 났을 때 얼마나 비참함에 몸을 떨었을까요? 견디기 힘든 수치와 고통에 영혼이 바짝 오그라들었을 것입니다. 자칫 교만하다가 주님의 징계의 채찍의 강도에 기가 막힐 정도로 놀라워하여 두려움에 떨기 전에 늘 깨어 겸손의 무릎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오바댜1:7-9                 멸망하는 에돔

  할 말을 잃어버릴 정도로 완전히 망하게 될 에돔 족속에 대하여 그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에돔이 쫄딱 망하게 되는 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토록 잘 나가던 천하 무적 에돔 족속이 어쩌다가 거덜나고 멸절될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는가?  

Ⅰ. 배신하는 사람들
  주 하나님께서 교만한 에돔을 치실 때 사람을 들어 심판하셨습니다. 에돔과 아주 원만한 관계에 있는 이웃 민족들을 들어 사정없이 에돔을 치셨습니다. 에돔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믿는 도끼에 완전히 발등 찍힌 꼴이니까요. "너와 약조한 자들이 다 너를 쫓아 변경에 이르게 하며"(7절 상반절).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고 평화조약을 맺은 이웃 나라들이 일방적으로 조약을 깨뜨리고 무섭게 칼을 휘두르며 에돔을 공격합니다. 아예 끝장을 낼 심사로 에돔 족속을 에돔 지경 가장자리까지 쫓아냅니다. 에돔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분통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너와 화목하던 자들이 너를 속이고 이기며"(7절 중반절). 협력 관계에 있던 나라와 민족들이 교묘하게 에돔을 속이며 에돔을 정복합니다. 친구 같은 이웃 나라에 무참히 짓밟힌 당한 에돔입니다. 평소 사이가 좋았던 관계로 그렇게까지 나올 줄은 꿈에라도 생각지 못했던 에돔입니다. 의좋게 지내던 이웃 나라들이 휘두르는 칼날에 처참하게 쓰러지면서 에돔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배신감에 치를 부르르 떨었을 것입니다. "네 식물을 먹는 자들이 네 아래 함정을 베푸니"(7절 하반절). 더 나아가 에돔의 도움을 받았던 나라와 민족들이 갑자기 돌변하여 에돔을 망하게 할 책략을 쓰기에 바빠집니다. 호랑이 새끼 잘 키워줬더니 나중에 주인이 잡아먹힌 꼴입니다. 이러니 제 아무리 강한 에돔이라도 견딜 수 있습니까?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미처 손도 쓰지 못한 채 당할 수 있었을까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조짐이 수상하면 눈치챌 수 있지 않습니까? 이에 대하여 주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에 지각이 없음이로다"(7절 하반절). 그렇다면 본래 에돔은 무식한 자들인가요?

Ⅱ. 지각을 빼앗긴 에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 에서의 산에서 지각 있는 자를 멸하지 아니하겠느냐"(8절). 판단하고 방어할 능력을 상실한 에돔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돔의 지혜를 다 거두어 가셨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철저하게 유린당하도록 내버려두신 것입니다. 평소 똑똑하던 에돔의 지혜자들이 이상하게도 지혜와 지각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웃 민족들의 수상한 행동을 전혀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냥 앉아서 당하고 눈뜨고 당한 꼴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에돔을 치실 때 처음부터 아예 저항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고 시작하셨습니다. 지형적으로 견고한 요새 같은 곳에 거하며 또한 국력이 하늘을 찌를 듯 부강해진 우리를 그 누가 건드리고 대적하겠느냐 큰소리치던 에돔이 제대로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 가운데 지혜자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각이 없으면 개념이 사라진 짐승입니다. 무식한 돼지 잡고 소 잡는 일 아주 쉽습니다. 주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에돔의 결말이 너무도 비참합니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만큼 치욕적이고 고통스러운 일을 없습니다. 에돔을 망해도 곱게 망한 것이 아니라 너무도 비참하게 망하였습니다. 평소 두터운 친분이 있었던 자들이 건네 준 배신의 쓴잔을 마시며 에돔은 멸망하였고 또한 제대로 머리를 쓰지도 못하고 제대로 칼 한번 휘두르지 못한 채 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교만하면 우리 주님은 지혜와 지각을 빼앗아 가실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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