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사전등록   히,헬 폰트받기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1-22
 제목  에드워드 H. 밀러(Miller, Edward Hughes. 한국명 : 密義斗, 1873-1966) 선교사
 주제어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자료출처  양화진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에드워드 H. 밀러(Miller, Edward Hughes. 한국명 : 密義斗)는 1873년 7월 18일 미국 펜실베니아 루스벌에서 출생했다. 로스앤젤러스에서 옥시덴탈 대학을 졸업(1898)하고 1901년 9월 10일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했다. 한국에서 미 북장로회 여성 선교사 헨리(Miller, Mattie Henry)와 결혼(1902)했다.

경신학교 교장으로 인재 양성을 위한 학생교육에 진력(1905-1913)하였으며, 연희전문(연세대)에서 화학 교수와 이사로 활동(1918-1942)했다. 한편 1927년 12월부터 1939년 12월까지, 12년간에 걸쳐 서교동장로교회 제3대 교역자(당회장)로 많은 업적을 이룩했다.

교회를 운영함에 있어 전도부인 급여를 자비로 지원했으며, 응암교회를 설립하는 등 전도사업을 활성화했다. 교인들을 지도할 영수(領袖)와 서리집사에 이르기까지 직접 선거를 통하여 임기제로 교인들 스스로 선임하게 했다.

교회를 치리함에 있어서는 대단히 엄한 면모도 있었다. 예를 들면 심씨라는 분은 '불신자(不信者)와 약혼'한 것이 문제가 되어 교회 헌법에 위반하였다고 책벌(責罰,1933)받기도 했다. 박씨라는 분은 다른 교회에 출석한 것이 문제가 되어 제명(1938)된 일도 있었다. 

세례 문답에 있어서도 어느 교인은 성찬의 뜻을 잘 구별하지 못하여 세례를 받지 못하기도 했으며, 또 어떤 이는 한글을 이해하지 못해서 탈락된 일도 있었다. 또 어떤 이는 4차례를 거듭해서 세례 문답에 응했으나 아는 것이 부족하다는 사유로 성례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학습 문답의 경우에도 3차례씩이나 계속해서 '도로 학습' 또는 '기다림' 등으로 판정하여 교인들이 보다 열심히 신앙 훈련을 쌓으면서 한글을 깨우치고 더 공부하도록 했다.

1928년 2월 19일에는 학국교회 역사상 3쌍동이(정순택-유순도 자녀)의 유아에게 세례를 베푸는 진귀한 성례식을 집례하기도 했다. 그는 행주교회와 도내리교회 당회장으로도 겸직한 기록(老會錄)이 있다.

또한 제1회(1911년) 노회부터 1930년에 이르기까지 조선예수교장로회 산하의 경충노회와 경기노회에서 서울을 포함한 경기남부, 청주 동편, 경기 중앙시찰 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공천위원, 목사장립 예식위원, 정사위원 등으로 폭 넓은 노회 활동을 했다. 이 밖에 기독교서회 이사(1934), YMCA 이사 등으로 문서선교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이같은 그의 폭 넓은 선교활동은 일본 당국자들에게 곱지 않게 보여 간첩 염의로 투옥(1941.12.27-1942.5.26)되었다. 석방된 후에는 강제 추방되어 1943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저서로는 '천로지남(1914)'과 '예수께서 구원하심(1938)' 등이 있다.

그는 귀국한 뒤에도 우리나라의 해방을 위해서 미국에서 한국인을 위한 한국어 방송을 담당했다. 그리고 1966년 6월 6일 미국에서 별세했다.


◇ 정신여학교 교장 헨리 밀러 (1873-1966)선교사 

M.헨리 밀러(Miller, Mattie Henry) 선교사는 1873년 미국 아이오아에서 출생했다. 1897년 훼어필드 파존스 대학을 졸업하고, 1900년까지 무디 성서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01년 5월 미국 북 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어, 1902년 밀러(밀의두) 목사와 결혼했다. 정신여학교 제5대(1905-1909)와 제8대(1910-1912) 교장으로 인재 양성에 전념했다.

1905년에 찬송가 수 십 곡을 번역하고, 정신학교 교가(校歌)도 작사 작곡했다. (주: 그후 정신교가는 아담스에 의해 곡이 바뀌고, 박목월에 의해 작사됨).

특히 M. 헨리 선교사는 남편의 선교사역을 도우면서 '초학지지' '산수 교과서' 등을 편찬하는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여 한국의 교육선교 분야에 공헌했다. 1943년 남편과 함께 귀국했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 연결고리 :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A-Z




  인기검색어
kcm  322936
설교  166376
교회  120333
아시아  95735
선교  91984
세계  81874
예수  79507
선교회  69945
사랑  66247
바울  65840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