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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4-01
 제목  1920년대 신흥학교 개황 (전주신흥고등학교 90년사 16)
 주제어  
 자료출처  전주신흥고등학교  성경본문  
 내용

목차

 

갑오개혁이후의 신교육   

선교사들의 내한과 기독교학교의 설립  

미국남장로교 선교사들의 내전과 선교 활동의시작

최초의 신흥인 김창국   

시대적 배경

신흥학교의 개교

희현당

일제의 무단정치

초창기의 신흥학교

삼일운동의 배경

전주의 삼일운동

삼일운동과 신흥

일제의 문호정책

기독교의 재흥과 시련

학생수의 증가와 증축

1920년대 신흥학교 개황

인톤교장과 1930년대 초

조선총독부 지정 신흥학교

항일의 몸짓

광주학생운동과 신흥

신사참배 거부와 폐교

종교교육과 신앙생활

 

> 참고자료 :  삼일운동 

 

 

4) 1920년대 신흥학교 개황(槪況)

삼일운동으로 2년간 졸업생을 내지 못했던 신흥학교 고등과는 1921년에 4명의 졸업생을 냄으로써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한편 보통과는 1922년에 지금까지 4년제였던 학제를 6년제로 개편하였다.

1922년 6월에 日本의 동경제대에서 공부한 박정근(朴定根)씨가 신흥학교의 교감으로 부임하였다. 그가 신흥학교에 처음 왔을 때 입고 온 복장이 너무 좋아서(당시 동경제대의 교복인듯)학생들이 우리도 그런 교복을 입자고 주장하여 신흥학교 학생들도 교복을 착용했다고 한다.

이영준 씨(11회)의 말에 의하면 당시 교복은 무명을 검정색으로 물들여 입었고, 붉은 넥타이에

허리띠를 찼으며, 다리에 각반을 둘렀고 모자에는 모표를 달았다고 한다. 또한 김형민씨(10회)는 당신의 신흥학교의 교복은 아주 멋진 교복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동원씨(지정1회)의 말에 의하면 그가 재학 당시에는 신흥학교의 교복은 전주고보와 같았다고 하니 이 교복은 지정학교가 되기 이전까지 입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박정근 교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는 매우 활동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말을 잘해 무성영화의 변사로도 유명하였으며, 외교적인 수완이 좋고, 학생들에게 인기도 좋았다. 추계 운동회를 할 때는 보통과와 고등과 학생들 다 모아놓고 줄을 맞추어 전주시내를 한바퀴 돌았다. 이때 시민들은 모두 나와서 구경을 하기도 하고 뒤를 따라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후 운동장에 학생들을 다시 세워 놓고 일장연설을 한 후에 운동회를 시작했다.


1923년에 총독부는 지정학교(指定學校) 제도라는 것을 만들어 사립학교 중에서 학교시설, 교사진, 교과과정이 학무국에서 요구하는 규정에 적합하게만 되면 그 학교 졸업생에게는 공립학교 졸업생과 거의 같은 권리를 부여한다는 새로운 규칙을 채택하였다. 이에 광주에서 열린 선교회의 연례회에서는 재정형편상 10개 학교 중 남학교 하나와 여학교 하나만을 집중적으로 지원하여 지정학교를 만들기로 결정하니 여학교는 광주의 수피아 여학교, 남학교는 전주의 신흥학교가 선정되었다. 이에 따라 신흥학교는 지정학교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는데 앞서서 언급한 본관의 건축은 지정학교의 자격을 얻기 위한 준비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926년의 선교사회에서는 선교회에서 경영하는 남녀학교를 이사제(理事制)로 운영하기로 결의하였는 바 이때 이사로 선정된 사람은 미국인으로는 마로덕(馬路德), 인톤 부부, 공정덕(工貞德)의 4인이요, 한국인으로는 이창규, 정근, 홍종필, 곽진근 등 4인으로 모두 8인이었다.

1927년 공업과(工業科)를 설립하고 이눌서 선교사의 아들 이보린이 공업과의 주임을 맡았으며, 이 해 4월에는 공업과 학생 25명을 모집하여 목공(木工)을 가르쳤다.

1927년대의 졸업생 숫자를 살펴보면 1921년 4명, 1922년 8명, 1927년 5명, 1929년 5명으로 총 숫자가 47명밖에 되지 않았다. 더구나 1928년에는 한 명의 졸업생도 배출하지 못하였다. 같은 시기에 보통학교가 학제가 바뀜에 따라 3년간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했음에도 그 졸업생총수가 113명이나 되었던 것과도 많은 차가 있다. 1921년에 신흥학교의 보통과와 고등과를 합한 학생수가 200명 이었던 데 비하여 10년 동안 졸업생 수는 200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대부분의 학생들의 생활이 어려워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데 그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등과의 경우는 생활의 어려움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지정학교라는 제도가 생기면서 지정학교가 된 학교의 졸업생은 고등보통학교 졸업생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으나 지정학교가 되지 못한 학교의 졸업생은 고등보통학교 졸업생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었다. 따라서 당시 아직 지정학교가 되지 못한 신흥학교의 졸업생들은 취업과 진학에 있어서 많은 제약을 받았다. 그래서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중도에 다른 고등보통학교나 지정학교에 편입학을 하였기 때문에 신흥학교 고등과 졸업생들의 수는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공업과(工業科)>

신흥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많았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학비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자리를 마련하였다. 그 중에 하나가 빨래비누와 양초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현 강당자리에 위치했던 이 공장에서는 빨래비누와 양초를 만들었는데 여기에서 일하는 학생들을 수공생(手工生)이라 하였고, 수공생들은 방과 후에 공장에 가서 일을 하고 거기서 받은 돈으로 기숙사비나 학비에 보태 썼다. 비누와 양초가 판로가 없어 생산이 중단된 후에 이 자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공업과였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신흥학교는 1927년에 공업과를 신설하고 이 해 4월 공업과 학생 25명을 모집하여 목공을 가르쳤다. 또한 같은 자리에 철공소도 함께 있었다 하니 공업과는 목공과 철공을아울러 가르쳤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인문학교의 성격을 띤 신흥학교가 교내에서 별도로 실업교육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업과에 입학한 학생과는 별도로 재학생이 이곳에 가서 방과 후에 일하는 경우는 역시 수공생이라 불렀고, 그들이 여기서 번 돈으로 학비를 마련하였다.

1927년 2월 11일 정읍 상리 예배당에서 개최된 제 20회 전북노외에서는 "빈약한 교육의 자질(資質)들이 수공과 학자보조를 얻어 학업성취상 큰 공헌이 되게 하기 위하여" 신흥학교에 총 1만원의 건축기금으로 공과실(工科室)을 짓기로 결정하고 이 건축비 마련을 위한 13명의 기성위원을 선정하였으며, 전남노회와 순천노회에서도 여기에 협조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공과실 건축기금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아 임시로 가공장을 짓고 학생들을 수용하였으며, 1927년 서문밖교회에서 열린 제 21회 전북노회에서는 공과실에서 수업한 학생들이 만든 제품을 노회원 일동에게 선물하기도 하였다.

공과실 건축자금에 대한 문제는 노회 때마다 매번 거론되었다. 1930년 5월 27일 제 24회 노회에서도 "무산 형제들의 자제 실업(實業) 장려하기 위하여 설치한 신흥학교 공업과실 기성회에서 활동이 부족하오니 동호에 권고하여 기성토록 하여 주시기 바라오며"라고 보고함으로써 공과실 건축에 힘써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1931년 6월 2일 제 25회 노회까지 거의 4년 반이 되는 기간 동안 모아진 돈은 겨우 475원 70전으로 공과실 건축의 꿈은 사라지고, 1931년에 들어서서 세계적인 경제 공황으로 선교학교의 경비가 축소되게 되자 신흥학교도 부득이 공업과를 폐지하고 말았다.

공업과가 불고 4년만에 문을 닫고 말았지만 빈한한 가정의 자녀들에게 실업교육을 시키며, 또한 어려운 학생들에게 부업을 주어 학비를 충당케 하려 했던 그 정신은 높이 평가할 만하였다. 그것은 공업과가 설치되기 이전부터 있었던 신흥학교만의 특징이며, 공업과가 폐지된 후에도 계속되었던 장학의 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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