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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9-07
 제목  뉴미디어와 미래의 설교
 주제어  [설교]
 자료출처  계지영 목사(포항북부교회)  성경본문  
 내용

현대사회에서 TV는 모든 가정에 영주하고 있는 이방인(stranger)이다.  이 이방인은 그 자신의 의사일정(agenda)과 가치관과, 규칙과 시간표를 가지고 있으며 각 가정의 가치관이나 삶의 양식에 자신을 결코 마추지 않는다.  오히려 TV의 가치관과 일정표에 가정들이 맞추어 가도록 요구하고 있다.① 

현대사회에서 TV의 힘은 막강하다.  구 공산정권이 붕괴된후 폴란드의 대통령이 된 왈레사에 의하면 동구권에서의 자유를 위한 혁명의 50퍼센트는 TV 의 영향이라고 지적하며 TV의 힘은 구공산 폴란드의 군대보다 더 막강했다고 말하고 있다.   TV는 현대인들의 시간을 가장많이 가져가고 있다. 


최근 UN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TV, Cable TV및 VCR을 시청하는데 사람들은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소비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성인들은 TV와 VCR을 시청하는데 하루평균4시간 40분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단조롭고 지루한 삶, 또 외로운 삶에서 흥미거리를 위하여 아니면 스트레스로 가득찬 삶에서 즐거움을 위하여 TV를 보게된다.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어떠한 지적인 또는 도덕적인 도전받기를 원치 않고 단지 즐겁게(entertain)되기를 원한다.  TV와 함께 자라났고 TV를 통해 즐거움을 받아온 전후세대(Baby Boomers)의 삶과 생각은 TV의 영향을 받지 아니할수 없게 되었다.   미국에서 TV종교방송이 시작되었을때 많은 사람들은 개교회의 주일예배 출석이 감소될것으로 예측했었으나, 이러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은 교회를 잘 다니는 사람들이 TV의 종교방송도 열심히 시청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TV의 종교방송은 교인들이 자기교회를 출석하는 데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예배와 설교에 대한 생각과 기대감에는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교회의 일반회중들은 그들이 속한 교회의 예배와 설교가 TV에 종교방송의 예배와 설교스타일처럼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기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② 

전후세대들은 TV를 시청할때처럼 자기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설교를 들을때에도 즐겁게 (entertain)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들은 지루함과 단조로움을 견디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후세대(1946-1964년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와 그들의 자녀인 베이비 바스터(Baby Buster)세대의 필요성을 민감하게 감지한 복음주의적인 교회는 그들의 예배와 설교를 TV방송의 예배와 설교형태로 바꿈으로 대형교회들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전후세대들의 필요성을 채워주지 못한 주류교단(Mainline denomination)교회들은 교인수가 감소하게 되었고 젊은 층이 없는 고령화된 교회와 교단이 된것이다.③

 

  전후세대들과 그들의 자녀세대를 효과적으로 접근하여 복음화하는데 성공한 복음주의적인 대형교회들의 예배는 이처럼 entertainment style의 예배로 변화되어가고 있다.  예배중에 대중적인 음악을 사용하고, 연기자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박수를 치고, 드라마가 있으며 예배가 빠른속도로 진행되고, 예배중에 시각적인 면과 청각적인 면이 동시에 강조되며, 예배당이 극장형태로 바꾸어 지고, 전통적인 악기보다는 키보드등 새로운 형태의 악기들이 사용되고 있으며, 예배가 버라이어티쇼 형태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TV 스타일의 예배의 중요한 단어는 “긴장을 풀고,” “격식을 차리지 않고,”  “재미있고,” “연관성이 있고,”이다.④

 

  TV 스타일의 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다른 말로는 “market-driven”(시장성지향의)또는 “seeker-sensitive”한 교회(구도자에게 민감한) 또는 user-friendly(이용자에게 친절한)한 교회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현실과 연관성이 있는 예배를 지향하다보니 세상의 사조와 유행에 너무 쉽게 동화되는 경향이 있어 이러한 교회예배는 세속적인 가치관을 축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Ben Armstrong은 비난하고 있으며 존 맥아더목사는 이러한 교회를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교회”라고 공격하고 있다.⑤  

 

그러나  TV스타일 예배로  entertainment를 강조하는 교회들은 전후세대와 그들의 자녀들을 효과적으로 전도하고 교회안으로 흡수하여 대형교회가 되고 있으며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방향으로 그들의 뒤를 따라오고 있다.⑥  TV스타일의 예배를 드리는 교회의 설교는 쉽게 이해되고, 흥미롭고, 이야기중심의 설교 즉 entertainment요소가 있는 설교로 전환되고 있다.  전후세대들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수십개의 TV채널방송이 주어져 있기에 의자에 편안히 앉아 리모트 콘트롤로 손쉽게 흥미로운 채널로 돌릴수 있기에 전후세대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무엇을 오랫동안 들을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TV와 함께 자라난 세대이기 때문에 설교가 흥미롭고 그들의 삶의 연관성이 있으며 entertainment요소가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곧 그들의 마음의 채널을 다른것으로 옮겨버린다. 전통적인 설교는 대학교수의 강의나 변호사의 연설처럼 논리적인 논술형태(discursive)였다.  대지 A로부터 출발하여 대지 B로 그리고 대지 C에 이르는 매우 합리적인 설교였다.  그러나 TV스타일의 설교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며 논리적이 아니고 oral스타일인 스토리형태의 설교이다.  미국에서는 학문적인 문화의 동북쪽지방보다 오랄문화에 젖어있는 남부지역 출신중에 뛰어난 설교자 많이 있는 것은 그들이 오랄문화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오랄스타일의 설교는 단일한 주제를 본문에서 발취하여 성서와 삶의 스토리로 그 주제를 보강하고 있는 형태의 설교이다.⑦  
이처럼 entertainment중심의 예배와 설교를 통해 즐거움을 받으려고 하는 회중에게 그들의 felt need 뿐만아니라 그들의 영적인 real need를 충족시키는 설교는 어떠한 형태의 설교라야 될것인가?  


1.성서적인 설교라야 한다.    

 

전후세대와 신세대를 향한 설교는 성서적이어야 한다.  회중들은 felt need 만을 만족받으려고 하지만 설교자는 그들의 영혼에 real need까지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멧시지는 본문에 의거한 성서적인 설교가 되어야 한다.  깊은 성서말씀에서 나오는 생수만이 즐거움을 받으려하는 회중의 진정한 need와 목마름을 영원히 만족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2.Story, Imagery, Metapho(은유)가 풍부한 설교라야 한다.  

 

최근 심리학에서 인간의 왼쪽두뇌는 분석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논리를 추구하는 기능을 행하며 수학자나 물리학자들, 변호사와 엔지니어들은 대개 왼쪽두뇌가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오른쪽 두뇌는 상상력, 통찰력, 묵상하는 기능을 행하는 데 예술가, 문학가, 미술가, 시인, 및 배우들에게 오른쪽 두뇌가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인간은 오른쪽 두뇌와 왼쪽 두뇌를 다 활용하고 발달시키며 그 기능의 조화가 잘 이루어질때 전인적인(wholistic person)인간이 된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미래의 세대를 향한 설교에는 추상적인 신학개념, 대지와 명제가 있어야 하지만 스토리와 이미저리 또 은유가 있어야 한다.⑧

그동안 스토리는 설교의 대지를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하여 아니면 설교를 흥미롭게 하기위하여 사용하는 것으로만 생각을 하였다.  스토리는 설교의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엑서사리로 생각을 하여 왔다.  이러한 생각을 바꿔야만 한다.  스토리를 설교의 명제 및 대지와 대등한 위치에 올려놓아야만 된다고 최근 설교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프레드 크레독교수는 예화나 스토리는 설교의 대지를 설명하거나 보조하는 것이 아니고 스토리 자체가 설교의 대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스토리는 설교에서 없어서는 아니될 요소인 것이다.  설교의 목적이 회중들의 삶을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제자로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회중은 설교의 추상적인 아이디어나 주제나, 명제가 아무리 진리이고 올바르고 최선의 것이라고 마음으로는 인정할지라고 그들의 삶은 변화되지 않는다.  회중은 복음의 스토리와 복음이 성육화된 삶의 이야기 세계속에 들어가 복음의 스토리를 나의 스토리로 소유할때 그들의 삶이 변화되는 것이다.  즉 설교를 듣는 회중들은 이론적인 지식이나 설명으로 삶이 변화되지 않고 스토리가 그들의 심층을 터치했을때 새로운 세계를 보게되며 시야가 열리므로 삶이 변화되고 행동하는 동기가 유발되는 것이다.⑨  


3.전후세대와 그들의 자녀인 신세대를 향한 설교는 교육적인 설교라야 한다.  

 

과거에는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많이 준 순서는 (1)가정의 부모  (2)교회  (3)학교   (4)미디아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는 사람들의 도덕관을 형성하는 데 가정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1)미디아  (2)가정  (3)학교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회라고 한다.  따라서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의 moral vision과 가치관은 세속적인 메스미디아 특히 TV에 의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가치관은 내가 어떠한 스토리를 나의 스토리로 받아들임으로서 형성이 된다.⑩ 

 

따라서 설교자는 회중들로 하여금 복음의 스토리를 그들의 스토리로 소유할수 있도록 가르쳐 주어야 하며 설교자는 교육적인 설교를 통해 회중들에게 모랄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설교에서 교육적인 측면이 약화된것은 19세기 전반기 부터 20세기 중반기까지 교회학교가 크게 부흥함으로 설교에서 교육적인 면이 약화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후기 기독교시대의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상대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이들에게 교육적인 설교가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대형교회들 가운데에는 설교가 35-75분까지 소요되고 있다. 이처럼 긴 시간 회중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지하면서 교육적인 설교를 하기위해 설교자는 더욱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터가 되어야 할것이다.11 

교육적인 설교란 원리만을 제시하는 이론적인 설교를 의미하지 않고 말씀을 실제 삶에서 적용할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설교이다.  회중은 말씀이 그들의 삶에서 실제적으로 어떻게 생활화 될수 있는 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설교자는 복음의 진리를 증명하려고 하기 보다는 회중으로 하여금 복음을 삶의 적용하며 체험할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야 한다.  회중은 “예수님을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듣는 것으로 만족치 않고 이 주님의 사랑이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기를 원한다.12


4.신세대를 향한 미래의 설교는 대화체(conversation)가 바람직하다.

 

회중을 책망하고 꾸짖고 대결하는 형태의 설교는 신세대의 마음을 닫아버리게 된다.  전통적인 설교스타일은 큰 목소리로 외치며 지나치게 재스츄어가 많은 웅변조의 설교였는데 전후세대에게 어필하는 설교는 버라이어티쇼의 host가 게스트와 자연스럽게 대담하듯 설교가 마치 회중의 옆에 앉아서 자연스럽게 말하는 대화체의 설교이다. 

전후세대는 웅변조의 설교는 진실되지 못한 설교로 생각하기에 대화체의 설교가 더욱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5.희망을 심어주는 긍정적인 설교라야 한다.

 

현대인들은 과거 어느시대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으며 그들의 자긍심에도 많은 상처를 받고 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고 실망속에 살아가고 있기에 소망이 깃든 복음의 멧세지를 목말라 한다.  이들에게 설교자는 죄의식을 불어넣기 보다는 복음안에서 자유롭고 충만한 삶의 비전을 보여줄수 있어야 한다.  “간음하지 말라”고 간음의 죄를 정죄하기 보다는 결혼생활에서 부부가 신실하게, 성결하게 살아갈때 오는 그 기쁨과 만족, 행복을 말해주는 긍정적인 설교가 바람직하다.  전후세대들에게 죄인이라고 책망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맛보며 그의 계명대로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과 그리스도의 은혜안에 살아가는 삶의 감격을 말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더그 머렌목사는 “회중들에게 무엇을 왜 행하지 않는지 책망하지 말라.  오히려  회중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면 즉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그들은 행동하게 되고 삶이 변화된다.” 고 말하고 있다.13   


6.설교자의 체험에서 나오는 설교라야 한다.

 

전통적인 설교에서는 설교자 자신의 체험을 말하는 것을 억제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에 설교학에서는 John Claypool목사처럼 "confessional preaching(고백적 설교)"이 장려되고 있다.  라일리 쉘러에 의하면 성장하는 교회와 성장하지 않는 교회 목사들의 설교 내용에는 질적이 차이가 별로 없으나 성장하는 교회 설교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이 실제로 체험하고 자신의 체험을 확신과 설득력을 가지고 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1950년대설교에서는 설교의 내용이 중요했는데 미래의 설교는 내용뿐만아니라 설교자의 인격과 성품, 그들의 진실된 복음의 체험이 중요하게 된다.  회중은 설교자가 전달하는 말씀을 설교자 자신이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알기 원한다.  설교자는 회중과 동떨어진 거룩한 사람이 아니고 그도 회중처럼 신앙의 여정을 걸아가면서 씨름하고 의심하고, 고뇌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그의 인간성을 보여줄때 회중은 크게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14 7.미래의 설교는 극적인(dramatic)효과가 있어야 한다.   Goerge Plagnez에 의하면 좋은 설교는 귀와 눈과 감정을 자극해야 하며 열정과 유머와 느낌이 담겨져 있는 멧세지가 되어 회중에게 극적인 경험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설교란  이야기를 통해 삶의 아픔, 고뇌, 실망을 말하며 복음의 이야기를 통해 희망과 위로와 기쁨을 말하는 것이다.15  극적인 효과를 가지고 설교가 전달되기 위하여 설교자가 강단에서 앞으로 나와 설교하는 것도 가끔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강단은 너무 높고 크다.  강단이 작아야만 설교가 효과적으로 전달이 된다.  21세기를 지향하는 교회의 강단은 작아져야 하며 설교자가 원고없이 강단주변을 오고가며 설교할때 더욱더 극적인 효과가 있게 된다.  또한 극적인 효과를 이루기 위하여 설교자는 원고로부터 자유해야만 한다.  우리는 다른사람과 대화할때 원고를 써서 읽으며 대화하지 않는다.  설교자는 대화체 설교를 원하는 신세대를 향하여 설교할때 원고로 부터 해방되어 회중과  eye-contact가지면서 설교할때 멧세지가 강하게 전달된다.  

 

전후세대와 그들의 자녀세대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설교의 문제는 소비자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entertainment를 원하는 회중들에게 어떻게 복음의 순수성을 타협하지 않고 멧세지를 참되게 전달하느냐이다.  즉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의 felt-need 만을 만족시키기 원하는 회중을 어떻게 복음으로 도전하여 그들의 삶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변화시키느냐의 문제이다.  또한 TV스타일의 설교자들 중에는 본문을 해석하기도 전에 “이 본문이 오늘날 회중에게 무엇을 의미하느냐?”의 적용의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본문의 해석이 적용을 지배하지 않고 적용과 relevance가 해석을 지배하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설교자는 본문을 적용하며 본문의 relevance를 찾기전에 본문의 귀를 기울이고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서적인 설교는 본문의 귀를 기울이고 들으므로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1. C.F.Melchert, "The Church and Media", Presbyterian Outlook, April 27, 1992:7       
2.  Qentin J. Schultze, Televangelism and American Culture (Grand Rapids: Baker, 1001),  204    
3. Leith Anderson, Dying for Change (Minneapolis: Bethany, 1990)
4. Schultze, 214
5. John MacArthur, Ashamed  of the Gospel (Wheaton: Crossway, 1993)
6. Michael G. Maudlin, "Selling out the Household of God?"  Christianity Today, July 18, 1994:20-25.
7. Quentin Schultze, "Television and Pulpit: An Interview with Quentin Schultze,"    Preaching, July-August 1993: 2-13.
8. Jim Somerville, "Preaching to the Right Brain," Preaching, Jan-Feb 1995:36-39    John Skyes, "Preaching to the Left Brain," Preaching, Jan-Feb 1995: 40-43.
9. Paul Scott Wilson, Imagination of the Heart (Nashville:Abingdon,1988), 14-48.
10. Stanley Hauerwas, The Peaceable Kimgdom (Notre Dame: Univ. of Notre Dame, 1983)
11. Lyle E. Schaller, 21 Bridges to the 21st Century (Nashville:Abingdon, 1994), 84-85.  
12.Timothy Wright ,A Community of Joy (Nashville:Abingdon, 1994), 92.
13.Doug Murran, The Baby Boomerang (Ventura: Regal Books, 1990), 214-233.
14.Lyle E. Schaller, The Seven Day a Week Church (Nashville: Abingdon, 1992), 98.
15. Wright, 10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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