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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8-04-11
 제목  설교에 대한 거부들(1)
 주제어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서론

 

지금까지 설교의 중요성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았다. 그럼에도 설교에 대한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이제 설교의 시대는 지나갔다라고 말을 한다. 설교는 죽은 방식이며 의사 전달의 낡은 형태라고 말을 한다. 설교의 영광을 이제는 누리지 못할 것이며 인기있었던 설교집들은 외면당하고 있다. 어떤 교회는 설교가 5분간의 변증으로 변하였고 설교가 대화혹은 즉흥극으로 대치되었다. 어떤이는 설교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마귀의 거짓말이다. 마귀가 전략적 승리를 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펼치는 것이다. 본과에서는 설교에 대한 거부들을 살펴봄으로 우리가 설교에 더욱 집중해야 함을 배우고자 한다.

 

본론

 

1.    반권위적인 분위기

 

현대는 기존의 권위에 대해서 반항하고 무너 뜨릴려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부당한 권위에 대한 정당한 반항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반항속에 설교도 하나의 권위로서 파괴되어져야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안토니 트롤로프(Anthony Trollope) 라는 사람은 설교에 대해서 이렇게 비난을 퍼붓는다. “ 아마 오늘날에 있어서 개화되고 자유로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 설교를 들어야 한다는 것보다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영역에 있어서는 오직 설교하는 목사만이 청중을 조용히 않혀 놓고 그들을 괴롭힐 권리를 가지고 있다. 오직 설교하는 목사만이 진부한 말들, 뻔한 소리와 엉뚱한 소리들을 마음껏 지껄이면서도 목사라는 특권 때문에 그의 모든 말들은 감정이 배제된 유창한 연설이나 설득력있는 논리인양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법학 교수나 물리한 교수가 강의실에 들어가서 미숙한 말들이나 무용하고 공허한 어구들을 쏟아 놓는다면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한 법적의 변호사가 조리있게 유창한 말을 하지 못한다면 그는 변호사로서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다. 판사의 말을 억지로 들어야 하는 사람은 오직 배심원과 죄수 혹은 간수들 뿐이다. 사람들은 기침을 함으로써 국회의원의 말을 중지시킬수 있으며 정족수의 부족으로도 그들의 말은 침묵 시킬수 있다. 그러나 설교하고 있는 목사를 피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우리를 따분하게 만드는 사람이며 일요일의 멋진 휴식을 방해하는 악몽이며 우리의 종요를 억누르며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재미없게 만드는 사람이다. 우리는 지루함을 느끼지 않으면서 예배에 참석하고 싶은 것이며 또한 교회를 떠날 때는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떠날 있게 되기를 원하는데 이것은 보편적으로 설교의 결과로 가능한 것이다.” 그는 설교자체가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권위의 행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이다.

 

2.   설교에 반대한 자들에 대한 기독교의 반응

 

우리는 이런 말들 앞에 설교를 포기하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다고 권위만을 내세워 그들의 거부들을 듣지 않거나 그들을 강압적으로 억누르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2.1   인간존재의 성격에 대한 기독교적인 이해를 기억해야 한다.

 

인간은 도덕적인 책임과 자류의 양면을 가졌다. 그래서 책임을 거부하는 방종을 받아들여서는 안되고 자유를 거부하는 예속을 받아들일 없다. 인간은 진리의 권위안에서만 자유로울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멍에아래 있을때에만 자유로울 있다. (11:29.30) 인간은 질서가 잡힌 사회안에서 자유를 누릴 있다. 이런 인간을 이해하면서 강압적이지 않는 권위를 사용하고 성경의 말씀 안에서만 권위를 사용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말씀을 준비하고 말씀이 전파되도록 하는 우리의 활동과 열심안에서만 권위를 사용해야 한다. 목사라는 지위로 권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말씀을 능력을 나타냄으로써 권위를 사용해야 한다.

 

2.2   계시의 교리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을 믿는 것은 그것이 인간이 고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기독교의 기초적인 교리이다. 결과적으로 기독교안에는 결코 파괴될 없는 권위가 내재되어 있다. 확신을 함께 나누어 가진 설교자들은 자신을 신성한 계시의 수탁자로 혹은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자로(고전4:1)”,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비밀의 청직이로 여길 것이다. 확신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은 하나님께로써 좋은 소식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전할 있게 것이다.

 

2.3   우리는 권위의 소재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권위는 하나님께로 나오는 것이지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소유하지 않은 권위를 주장하며 휘두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천성적으로 어떤 무서운 것이 감추어져 있다. 이런 일은 설교단에서는 온당치 못한 일이다. 설교자는 악질적인 선동자처럼 거만스럽게 행동하거나 자기의 능력을 뽐내지 말아야 한다(4:28,29). 우리의 권위는 본래부터 있는 권위가 아니다. 목사 혹은 설교자로서의 직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교인들이 우리를 목사로 신임하고 있는 교회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우리의 권위는 우리가 설교하는 하나님 말씀 자체이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청중들은 우리의 설교를 들을 것이다.  우리 자신도 성경의 권위아래 산다는 것을 보여줄 청중들은 설교를 기꺼이 들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나 사용하는 대신에 우리 사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것은 바로 설교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설교하기 때문이다.

 

2.4   우리는 복음의 관련성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복음이 현실 생활과 연관성이 있음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사 권위적인 설교라고 할지라도 설교가 인간 생활의 궁극적인 질문들을 의미심장하게 취급함으로써 설교가 새로운 열쇠의 구실을 한다면 그것들은 스스로 칭찬을 받게 것이다.  실례를 들면 결혼에 대해서 설교하면서 독신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망각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의 기븜에 대해서 설교하면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슬픔을 잊어서는 안된다. 환경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으면서 영광이 당에 충만하도다(6:3)라고 설교해서는 안된다.

 

결론

 

권위를 거부하는 풍조가 설교에 까지 들어와 설교 자체를거부하는 현실속에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를 해야 이유를 바로 아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당신은 설교의 권위를 바로 이해하면서 설교하고 있는가?

 

 

>> 목차고리 : 신학 >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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