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모신(謨臣)이다. 자는 공명(孔明)인데 명성이 높아져 와룡(臥龍)·복룡(伏龍)으로도 불렸다. 낭사군 양도현에서 지방관이었던 제갈규(諸葛珪)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남양군 등현(융중)에서 성장했으며 15세가 되기 전에 양친을 여의어 그의 형 제갈근(諸葛瑾)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형주 융중(샹판)에 살다가 207년에서 208년 사이에 유비 진영에 들어온다.
오의 손권과 연합해 남하하는 조조의 대군을 적벽의 싸움에서 대파하고, 형주 · 익주를 점령했다. 그후도 수많은 공을 세웠고, 221년 한의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재상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지혜를 다해 충성했던 유비를 초월했을 뿐 아니라 그토록 위풍당당하던 조조마저도 초월했다. 그는 유비와 유선 부자를 보좌해 찬란한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절조와 뜻, 그리고 아름다운 언행과 덕에서도 당대 최고의 도덕적 표준에 도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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