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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8-09-11
 제목  금강산기독교수양관(金剛山基督敎修養館)
 주제어  [북한] [금강산수양관]
 자료출처  TNF 진리와 자유 참고  성경본문  
 내용

금강산기독교수양관(金剛山基督敎修養館)은 1924년 제13회 장로회 총회에서 수양관 건립를 가결하고 위원장에 한석진 목사, 위원에 함태영 목사, 홍종필 목사를 임명하였다. 금강산은 국유림으로, 조선총독부에 교섭하여 10년 시한부로 대부받아 1930년에 8천평 대지에 상하층 232평 규모의 수양관으로 완공되었지만, 봉헌예배는 그 다음 해인 1931년 9월 11일 제20회 장로교 총회를 열면서 함께 드렸다.


한석진 목사금강산기독교수양관의 완공에는 한석진 목사님의 희생적인 헌신과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한석진 목사님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은 7인 목사 가운데 한 분으로, 신의주제일교회를 시무하시던 중 금강산기독교수양관의 진척이 늦어지자 교회를 사임하고 이곳에 내려와 건물을 완성하였다. 금강산기독교수양관은 그 당시로는 예외로 외국인의 헌금 없이 순수하게 한국교회의 자력으로 건립되었다. 장로교에서 건립했지만 이름도 ‘장로교수양관’으로 하지 않고 “기독교수양관”이라 하였고, 초교파적으로 활용된 곳이었다.


전국 교역자수양회를 비롯하여 여러 집회(대회)들이 열렸고, 이런 대회가 열리면 기독교 판이 되곤 하였다. 그러다가 1941년에 헐리고 말았다. 국유임야를 10년 기한으로 대부받아 건축하였는데 일제는 기한 연장을 거부하고 또한 불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통해 “조선총독부에 기증하든지 철거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총회는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그 때는 벌써 총회가 신사참배에 굴복한 상태라 대항할 힘도 없었고, 그런 인물도 없었다. 결국 한국교회는 일제에 굴복하기보다는 스스로 철거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또한 금강산기독교수양관은 주기철 목사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35년 5월 1일부터 5일까지 장로교 수양회가 있었는데, 조선교회가 당면한 신사참배라는 과제를 놓고 총회 산하의 목사, 선교사 등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주기철 목사님은 마태복음 3:1~13의 말씀을 가지고 ‘예언자의 권위’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당하였는데 사진은 1936년 3월 2일 개최된 제1회 장로교목사 수양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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