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사전등록   히,헬 폰트받기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9-04-30
 제목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 1777. 4.30~1855. 2.24)
 주제어  [독일]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아르키메데스, 뉴턴과 더불어 3대 수학자로 꼽히는 독일의 수학자·물리학자·천문학자이다.

가우스는 어렸을 때부터 보기드문 신동이었다. 그는 세살 때 아버지의 부기장부에 있는 계산착오를 지적했다고 한다. 가우스는 1777년 독일의 브룬스빅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집세고 교육적 식견이 없는 육체 노동자였다. 어머니는 비록 교육을 받진 못했지만, 그가 공부하는데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평생 동안 자식의 업적을 자부심으로 간직하며 살았다.
가우스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10세 때, 선생님은 학생들을 조용히 하게 하려고 1부터 100까지 더하도록 시켰고 가우스는 거의 즉시 답을 제출하였다. 마침내 모든 학생이 답을 제출하였을 때 선생님은 가우스 혼자만이 아무런 계산도 없이 5050을 정확하게 답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가우스는 등차수열의 합1+2+3+… +98+99+100을 단지 100+1=101, 99+2=101, 98+3=101 등등 으로 계산하면 50개의 쌍이 나오므로 답은 50×101, 즉 5050이라고 암산하였던 것이다. 말년에 가우스 는 자기는 말보다 계산을 먼저 배웠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가우스는 19세의 나 이로 자와 컴퍼스를 가지고 정 17각형을 작도할 수 있음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바 로 일생을 수학에 바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순수수학은 물론, 응용수학에도 눈부신 업적을 남겼고, 물리학·전자기학·천체역학·중력론·측지학 등에도 큰 공헌을 했다. 브라운슈바이크의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불과 10살 때 등차급수의 합을 구하는 공식을 알아내어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한다. 신동으로 알려져 브라운슈바이크 공의 도움을 받아 괴팅겐대학교에서 공부했다.

 

1801년부터 괴팅겐대학교 교수로 평생을 보내며, 정수론 이외에도 최소제곱법을 비롯한 곡면론·허수론·방정식론 등을 깊이 연구해 수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또한 타원함수와 복소수 발견의 기틀을 마련했다. 자기유도의 단위인 '가우스'는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가우스의 가장 위대한 단행본은 현대 정수론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중요한 책인 <수론 연구, Disquisitiones arirhmeticae>이다.
가우스는 천문학, 측지학, 전기학에서도 두드러진 공헌을 하였다. 1801년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여 빈약한 자료를 가지고 당시 막 발견된 케레스(Ceres) 소행성의 궤도를 계산하였다. 807년 그는, 죽을 때까지 그 직에 있었던 괴팅겐 대학의 수학교수와 천문대장이 되었다.1821년 하노버의 삼각측량을 하였고, 자오선을 측정 하고, 회광기(또는 일조계)를 발명하였다. 1831년 전기학과 자기학의 기초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동료 베버(Wilhelm Weber, 1804-1891)와 공동연구를 시작하여 1833년에는 전자석식 전신기를 고안하였다.
가우스는 1812년에 초기하급수에 관한 논문에서 최초로 급수의 수렴성을 체계적으로 고찰하였다. 곡면론에 관한 가우스의 걸작<일반 곡면론, Disquistiones generales circa superficies curvas>은 1827년에 발간되었고, 이로 인해 공간에서의 곡면에 관한 기하학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수학은 과학의 여왕이고 정수론은 수학의 여왕이다."라는 유명한 얘기는 가우스가 한 말이다. 가우스는 흔히 다음과 같이 회자된다. "그는 너무 큰 거인이어서 우주를 한눈에 들여다 보았다."과학적 저술에 있어서 가우스는 완전주의자였다.대성당도 건축장의 마지막 조각이 치워질 때까지는 대성당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분석의 모든 흔적을 제거하면서 논문을 완전하게 하고, 간결하게 하며, 다듬고, 설득력 있게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

 

 가우스는 1855년 2월 23일 괴팅겐 천문대에 있는 그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그 직후 하노버의 왕은 가우스에 경의를 표하는 기념 메달을 만들도록 하였다. 이 70mm 메달은 오래지 않아(1877년) 하노버의 유명한 조각가이며 메달 제작자인 브레머(Friedrich Brehmer)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거기에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하노버의 왕 조지 5세가
수학의 왕에게

이후부터 가우스는 '수학의 왕'으로 일컬어진다.

 

 

>> 목차고리 : 세계 > 유럽 > 독일

>> 연결고리 :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A-Z




  인기검색어
kcm  321931
설교  166024
교회  120009
아시아  95528
선교  91757
세계  81592
예수  79267
선교회  69708
사랑  65937
바울  65639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