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일본 관서지방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수평운동의 영향을 받아 1923년 4월 25일 진주의 이학찬·강상호·신현수·천석구·장지필 등을 간부로 한 조선형평사가 창립되었다.
1923년 5월 진주에서 백장을 주축으로 한 천민계급이 조직한 단체이다. 진주에 사는 백장(백정:白丁) 이학찬(李學贊)의 아들이 학부형과 학교측의 반대로 입학이 좌절되자, 이에 백장들이 격분·항의하였으며, 때마침 일본 관서지방(關西地方)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수평사(水平社) 운동에 자극을 받아 각 지방의 대표 100여 명과 회원 500여 명이 진주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형평, 즉 평등을 외쳤다. 창립 목적을 계급의 타파, 공평한 사회의 건설, 모욕적 칭호의 폐지, 교육의 균등과 지위의 향상, 사회참여 의의의 앙양, 동지의 화목·협력·상조 등에 두고 백정이라는 기록을 호적에서 삭제할 것을 조선총독부에 요구하는 등의 활동을 하여 전국에 지사(支社) 11개소, 분사(分社) 67개소, 회원 40만 명의 대규모 운동조직으로 성장했다.
1930년대 들어 사회운동단체와의 협동전선론을 표방한 신파와 전통적 수준의 운동을 주장한 구파의 갈등이 심해져 형평청년전위동맹사건 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1930년말부터 사회단체들의 조선형평사 해소 주장과 이듬해 봄 신간회의 해체에 영향을 받아 해소론이 대두되었으나 임시대회에서 구파가 조직을 장악하면서 해소론은 부결되었다. 그러나 활동의 침체와 일제의 압력으로 결국 1937년 5월 1일 조선형평사가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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