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반도는 19세기초까지 만해도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1829년 그리스의 독립을 시작으로 많은 발칸 반도 국가들이 자치령으로 하거나 독립을 하였다.
그러나 1908년에 국수적인 성향을 지닌 청년 투르크 당이 일어나 발칸 반도국가들을 긴장하게 하였다. 왜냐하면 청년 투르크 당은 당시 헌법 보면 '모든 민족의 인한 평등'에서 '터키인의 인한 평등'으로 슬로건을 걸었기 때문에이다. 게다가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인해서 많은 영토를 잃었기 때문에 다시 영토회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발칸 반도 국가들은 당연히 긴장할수 밖에 없었다. 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합병했기 때문에 더욱 위기감을 가질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발칸 반도 국가(그리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불가리아)들은 1912년 발칸 동맹을 결성하기로 했다. 동맹 결성의 주요 목적은 오스만 제국내에 있었던 슬라브 민족의 결속과 앞제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이러와중에, 1911년에 이탈리아-투르크 전쟁이 터져 투르크가 지게 되자 발칸 반도의 동맹 국가들은 투르크가 힘이 약해진 것을 보고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범 슬라브 주의를 내세우며 확장정책을 펼치던 러시아 제국의 지원을 받고, 1912년 10월 오스만제국에게 전쟁을 선전포고하여 발칸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리고 전쟁이 시작되자 마자 투르크군은 그리스와 세르비아군에게 연달아 패배하고 말았다. 더욱이 불가리아와 투르크 군이 브르가스 등지에서 벌인 대접전에서 패배함으로써 오스만 제국은 군대를 콘스탄티노플로 철 수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국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은 않았다. 승세를 탄 불가리아군은 아드리아노플과 콘스탄티노플 점령을 시도하였지만, 제국군의 완강한 방어와 군수물자 동원의 어려움이 겹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이 전쟁에서 드러난 구체제의 유약함에 실망한 청년 투르크당은, 급기야 술탄을 폐위시키고 새로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신 정부는 발칸 연합군과 전쟁을 재기하였지만, 전쟁 중에 일어난 혁명은 오히려 내부혼란사태를 초래하여 전투상황을 더욱 악화 시켰다.
결국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저지선이었던 아드리아노플이1913년 3월에는 세르비아 -불가리아 연합군에 의해 점령당하게 되었고, 이어 위기를 느낀 오스만 제국은 제3국은 영국의 런던에서 종전 협상을 벌이게 된다.
그 결과 오스만은 크레타섬을 비롯해, 유럽지역 영토의 절반가량을 포기해야 되는 런던조약에 서명할 수 밖에 없었다. 이로써 오스만 제국은 유럽지역에 대한 영토적 상실뿐 아니라 제국으로 가졌던 영향력마저 크게 위축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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