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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09
 제목  심능양(1896. 7.16~1949. 5.25) 장로
 주제어  [대한민국] [장로] [순교자] [한국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심능양 장로는 1896년 10월 6일 경상북도 월성군 안강면 육통리 938번지에서 아버지 심덕규씨와 어머니 손영화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9년 5월 25일 삼일기도회를 마치고 교회문을나서다가 공산 폭도에게 수난을 당하여 큰 칼로 흉부를 찔려 숨을 거두었다.

 

창마을교회 설립.

안강제일교회 개척.

영창학교 설립.

육통교회 설립.

국민회의 책임자.

대동청년단장.


심능양의 부친 심덕규는 유달리 민족의식이 강해 안강 땅에 사립학교인 기독교영창학교를 설립하고 한글과 성경과목을 함께 가르쳐 일제의 한국얼말살정책에 항거하고 신앙과 함께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심장로는 부친과 함께 창마을 교회를 설립한 외에 1933년 안강제일교회를 개척 설립하였고 이어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육통리에도 교회터를 내놓아 교회를 짓기도 했다.


심장로는 육통교회를 짖고 농사 일도 바쁜 가운데서도 매일 동리로 나가 전도를 했고 교역자를 모실 수 없는 입장이 되자 친히 교역자가 되어 주일예배와 수요예배, 새벽기도회를 인도했다.
일제가 신사참배의 덫을 놓고 교회를 폐쇄시킬 때는 심장로는 몸을 더럽힐 수 없다고 산중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해방이 되자 못질된 교회로 뛰어가 판자쪽을 떼어내고 들어가 강대상 앞에 엎드려 소리높여 울었다.
해방 후 이승만정권은 그에게 안강면 국민회의 책임자로 임명했으나 관심이 없었고 전도대를 조직하여 북을 치며 황새마을. 못밑마을. 능골마을. 큰 육통마을 등을 돌아가며 전도활동을 했다.


해방된지 3년이 되는 1948년 5월 육통교회 심능양장로의 둘째 아들 심의진 지사는 안강면 대동청년단 단장일을 보고 있을때였다. 갑작스럽게 좌익프락치들이 한밤중에 심장로의 집에 처들어와 심의진을 내놓으라고 심장로의 내실방을 샅샅이 뒤졌으나 업자 온 식구들을 밖으로 끌고나와 심집사 밑에서 선전부장일을 보고 있는 심장로의 조카 심만길에게 심의진이 어디갔느냐? 밝히면 살려주겠다고 했으나 죽어도 모른다고 하자 죽창으로 난자질을 해댔다. 으윽, 심만길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선혈을 뿜어냈다.


1948년 조카가 살해되자 더 열심히 전도하던 심장로는 조카가 살해되고 1년만에 1949년 5월 26일 수요예배 인도 후 귀가길에 연행되든중 칼과 죽창으로 살해됨. 그날 밤 예배시에 폐회찬송 543장 '저높은 곳을 향하여'는 그의 마지막 찬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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