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주 목사는 1896년 11월 19일 평안남도 순천군 지산면 지탄리에서 임세옥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숭실전문을 거쳐 장로회신하가교를 졸업하였다. 일본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해방 후 황해도 재령을 서부교회를 시무하면서 무신론 공산주의와 대결하여 1946년 2월 해주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1917년 숭실중학교 졸업 1923년 숭실전무학교 졸업 1923년 매산학교 교사 1932년 평양신학교 졸업(27회) 1932년 오산교회 담임. 1939년 재령읍 서부교회 목회
1917년 숭실중학교 졸업 1923년 숭실전문학교 졸업 매산학교 교사취임 1938년 신사참배 결의안이 총회 통과되면서 매산학교는 폐교되었다. 1929년까지 6년간 매산학교 봉직하고 평양신학교에 입학 1932년 27회로 졸업 후 평북노회에서 목사 안수받고 정주 오산교회에 부임 7년을 봉직했다.
1938년 2월 평북노회시 신사참배 결의를 반대하다 수감되어 3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1939년 재령읍 서부교회로 옮겨 목회생활에만 전념했다. 1944년 황해노회장을 역임한 그는 사상범으로 검속에 걸려 해주형무소에 수감돼 심한 옥고를 치르다가 해방과 함께 석방되었다. 1945년 해방 후 평양신학교가 개교되면서 교수직을 수행하며 후배양성에 힘을 기울이면서 공산당과 투쟁하면서 두차례나 투옥 당하기도 했다.
1947년부터 주일선거에 비협조자들과 기독교도연맹에 미가입자들과 앞으로도 계속 협조할 가망이 없는 자들을 체포해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는 등 일대 검거에 나섰는데 1947년 5월 어느 주일 아침 예배설교를 끝내고 나오는 임목사는 공산당 정치부위원에 의해 끌려간 후 소식이 없다.
주일날 그는 시편 2편을 교독문으로 하고 시편 58편을 본문으로 하고 설교의 요지는 재판관들이 타락하여 하나같이 굽은 판결을 하고 있는데 이런 불의한 자를 하나님이 방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심판의 채찍을 들고 그들의 불의를 견책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기필코 불의한 집권자들을 밀처럼 갈아없앨 것이다. 였다.
예배가 끝나고 돌아가는 교인들에게 인사하는 임목사를 두 사람의 젊은이가 다가와 팔을 끼고 내무서로 좀 갑시다 - 하며 내무서원들의 팔에 끌려 잡혀갔다. 그를 체포해갈 때 부인은 교회 안에 있었기 때문에 체포되어가는 그를 보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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