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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0-06-21
 제목  단기선교를 다녀와서
 주제어키워드  단기선교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2848  추천수  24
FIM국제선교회에서 추진하는 비전트립을 통해 모슬렘 세계를 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17년전 H건설회사 직원으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2년 4개월을 근무하면서 이슬람을 경험했던 나로서는 이번 여행이 단순히 성지를 둘러보는 여행의 개념이었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는데 있었다.



선교지에서의 만남



카이로는 정감이 넘치는 도시였다. 선조들의 기독교 정신과 화려했던 기독교문화를 상실한 채로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 실제적으로 접근해 봄으로써 타문화를 경험하기 위한 선교정탐훈련을 하였다. 우리 조는 숙소로부터 버스로 약 40분 가량 떨어진 카이로의 빈민지역을 정탐하였다.

어디를 가든지 예외없이 남자들만이 한가롭게 물담배를 피우면서 망중한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마을 입구의 찻집에는 도미노게임을 하는 현지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관심을 보이자 선뜻 도미노게임을 같이 하자고 한다. 몇번하는 동안 주위를 에워싼 현지인의 무리는 더 많아졌다. 낯선 이방인의 신중함에 훈수라도 하려는 현지인도 있었다. 그러나 질 수 없다는 자존심에 사양하고 전에 갈고 닦았던 끼로서 저들을 몇판 이기고 나니 엄지손가락을 들어 주었다. ‘제한된 지역에서의 선교는 이런 만남과 어울림을 통해서 시작되겠구나’하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그곳을 떠나 동네 깊숙히 들어가보기로 했다.

더러운 집안, 빈약한 살림살이, 맨발의 아낙들... 동네를 정탐(?)한 후 빠져나오는데 낯선 이방인이 자기네 동네를 찾아주었다는 데에 대한 신기함으로 20여 명의 아이들이 따라나왔다.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하니 아이들은 온갖 폼으로 응해주었다. 바로 이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기도할 영혼들이다. 예수님께서 죄인된 인간의 모습으로 성육신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셨던 것처럼 선교사는 현지생활과 문화에 성육신하지 않으면 이들을 품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정탐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잃어버린 이집트 영혼을 위해



우리를 정감있게 대해준 카이로에서 4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던 여정을 따라 시내산으로 향했다. 수에즈운하를 거쳐 홍해 바다를 따라 가다보니 마라의 쓴물이 단물이 된 곳을 만나게 되었다.

캄캄해서야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전투하던 르비딤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했다는 곳을 찾아 산으로 올라갔다. 모세의 부르짖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우리도 능력의 하나님께 잃어버린 이집트 영혼들을 위해 기도했다. 시내산 입구의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였다. 호텔이라고 하지만 잠을 자기 위해서 빌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싸가지고 간 저녁식사를 하고 시내산에 오르기 위해 잠시 쉬기위한 장소였다. 새벽 2시에는 출발해야 해뜨는 모습을 시내산 정상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좀처럼 보기힘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 비는 정상에 가까울수록 굵기를 더해가고 바람 또한 세차게 불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각국의 순례객들 약 60여명 정도가 서너평 남짓한 산장에 모였다. 마치 인종전시장 같았다.

날이 밝으면서 비도 그쳤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온통 바위로 뒤덮인 시내산이 우리 머리위에 있었다. 잃어버린 영혼과 떠나버린 영혼을 찾고자 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교의 시각을 가진 자라면 모두 이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사명을 재인식하고 산을 내려갔을 것이라 생각하니 정상에 올라가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우리 일행은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신앙선조의 발자취 따라



이스라엘로 가기위해 taba국경으로 향하는 우리 일행은 긴장으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를 안내하는 선교사님은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분위기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통관시에 유의해야 할 점들을 심각하게 알려 주었다.

사해가 우리를 어떤 모습으로 맞아줄까? 사해는 얼마나 짤까? 캄캄해서야 도착한 사해는 여느 호수와 같았다. 한 형제가 옷 입은 채로 바다에 뛰어들었는데 몸이 둥둥뜨는 것이 아닌가! 그 형제는 소금기 밴 몸을 씻고 옷을 세탁하느라 고생했다. 받기만 하고 나누어주지 못하는 사해! 사해같은 나를 돌아보며 예루살렘의 C선교사님댁에 밤이 늦어서야 도착했다. 이스라엘에서의 숙박은 민박이었다. 한국선교사님들의 가정에서 첫밤을 지내고 C선교사님 가정에서 준비한 아침밥을 맛있게 먹고 주일 예배를 드린 일행은 ‘보케르 토브’(Good Morning)라는 어설픈 아침인사를 운전기사와 나누면서 버스에 올랐다. 여행가이드인 히브리대 유학생이 가버나움, 여리고, 베드로수위권교회, 예수님이 세례받으시던 요단강, 갈릴리 호수, 오병이어 기념교회, 팔복교회, 가나안혼인잔치교회 등을 순례할 것이라고 오늘의 일정을 설명한다. 지금까지 성경을 통해 듣던 곳을 실제로 방문한다고 생각하니 가는 곳마다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를 반갑게 만나주실 것같은 환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스라엘에서의 둘째날 우리는 겟세마네동산, 감람산을 거쳐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였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 골고다 언덕, 다윗왕의 무덤, 마가의 다락방 등 주님과 신앙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하였다.



막강한 세력, 이슬람



예수님을 못박으라고 소리쳤던 목이 곧은 유대인들이 참 진리를 모른 채 지금도 여전히 통곡의 벽 앞에서 토라를 읽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이어서 방문한 곳이 베들레헴에 있는 가장 오래된 교회인 예수님이 탄생한 교회이다. 그 교회의 출입문은 좁고 낮아 일명 겸손의 문이라고 한다. 제롬의 방도 방문했다. 38년 동안 협소한 공간에서 신구약을 번역하는데 일생을 헌신했던 제롬의 열정적인 신앙에 새로운 도전을 받았다.

이스라엘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요르단 지역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H선교사와 C선교사 그리고 우리 몇몇은 서로의 기도제목과 이별의 아쉬움을 나누었다. 새벽에 도착한 텔아비브공항은 한마디로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었다. 입국때와 같이 출국때도 그들의 예상질문에 답하는 것을 연습했다. 선교여행임에도 불구하고 보안을 유지하고 우리의 방문목적과 신분을 최대한 숨겨야만 유지하는 훈련이 되었다. 우리 일행은 5시 30분발 터어키항공에 탑승했다. 이스라엘을 떠나면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리 일행들은 이스라엘에 정이 안간다고 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순전히 감정이 앞선 결론이었다면 이는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가진 자로서 마땅히 버려야 할 문화적 갈등이요, 극복해야 할 종교적 갈등이다. 예수님의 성육신이 인간관계에 모본을 보이신 것처럼 우리도 성육신되어질 때 감정적, 지적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집트, 이스라엘, 터어키로 이어지는 여행을 하면서 ‘이들 나라가 만약 이슬람화되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적어도 아프리카나 유럽에 모슬렘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영국같은 나라는 이슬람인구는 물론이고 교회가 모스크로 변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한다.



베품에서 시작되는 선교



이스탄불의 첫날 밤은 소아시아 일곱교회를 돌아본다는 기대로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스탄불에서 이즈밀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소아시아 일곱교회를 돌아보기 위해 어린아이처럼 들떠있는 우리를 태우고 고속버스는 출발했다. 이스탄불의 버스터미널을 빠져나와 한 시간정도 달려 우리는 지진으로 피해가 컸던 도시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한국인의 따뜻한 손길이 미쳐있었다.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워진 사랑의 집이다.

버스안에 타고있던 터어키인들은 저마다 한국민이 세워준 집이라고 고마워했다. 이런 베품이 더 많아져서 향후 복음이 전해지는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이즈밀에는 밤 9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터미날에서 케밥과 우유를 마시고 다시 에베소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45분 가량 지나 쌜쭉이라는 곳에 도착하였고 한국 P선교회 소속으로 사역하는 선교사 한 분이 마중나왔다. 그 분이 안내하는 대로 10분 가량 떨어진 수양관에서 피곤한 나그네의 여독을 풀었다. 주님이 주신 비전을 성취시키기 위해 주님이 주신 땅에서 드러내지 않고 생명의 사역을 하고 있는 세 분 선교사님을 뵈면서 그들의 숭고한 사역이 절로 은혜가 되었다.

이튿날 고대도시 에베소를 방문했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바다에 접한 항구도시였다고 한다. 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져있는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에베소교회를 방문하면서, 무너진 성전터위에 잔해들이 어지러히 널려져 있는 것을 보면서, 당시 흩어졌던 유대인의 영향으로 세워진 회당에서 사도바울이 강론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숙연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며 복음에 빚진 자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즈밀로 돌아온 우리는 시내에서 저들 말로 번역된 성경배포사역을 잠시나마 하였다. 지극히 위험한 사역이었지만 한사람이라도 성경배포를 통해 예수를 만나게 될 것을 기대하며 성령님의 능력안에서 배포하였다. 성경을 받아들이고 당황하면서도 고맙다고 인사하는 순수한 터어키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우리는 이즈밀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슬람선교에 대한 도전



신사의 나라, 태양이 지지않는 나라로서 어디든 들어가 복음을 전한 영국은 일찍이 선교를 통해 축복받은 나라이다.

히드로공항에서 버스로 약 3시간을 달려 웨일즈의 조그마한 동네인 하노버에 우리는 도착했다. 하노버는 한국기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교회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40여년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토마스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가 있는 곳이다. 유능한 젊은이가 27세의 나이에 “예수의 피”를 외치며 대동강변에서 목이 잘리는 참수형으로 우리민족이 복음을 듣게 되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한 사람의 사역은 이처럼 수많은 생명을 살린다.

웨일즈는 1904년 영적부흥이 일어났던 곳이다. 그러나 100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 이 지역 교회들의 대부분이 노인들로 채워져 있는데 이들마저 사라져 간다면 그때는 어떻게 변할까? 교회가 모스크로 바뀐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다. 현재 100만명의 모슬렘들이 영국내에 있으며 1만명의 모슬렘 선교사 후보생이 양성되고 있다고 한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이대로 간다면 머지않아 영국교회에 공동화현상(空洞化現象)이 일어나며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에서 받는 나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FIM영국본부에는 과거 비전트립을 통해 선교사로 헌신할 훈련생들이 훈련받고 있었다. 우리는 저들의 섬김을 받으면서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고 강의를 통해 이슬람선교에 대해 다시 도전을 받았다.



만들어지는 선교사



이번 비전트립을 통해 분명한 것은 모슬렘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된 것이다. ‘선교는 옵션이 아니라 교회의 존립목적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선교에 대해 무관심과 무지했던 내가 교회에 돌아가면 교인들과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선교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만약 여러가지 이유로 비전트립을 사양했다면 다음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는 선교를 책상에 앉아 감상적으로만 말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은 특정한 한 사람이나 한 종족을 택하여 역사하신다.

내 자신이 먼저 동원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선교하라고 이미 명령하셨다. 그래서 거대하고 견고한 진인 이슬람의 15억 세력을 파하고 녹색깃발을 꺾어버릴 헌신자를 찾고 계신다. 선교는 분명한 결단을 요구한다. 여러분이 결단하는 순간 이미 여러분은 선교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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