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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0-09-21
 제목  <선교광장> 넉넉히 채우시는 예수님께 나아오라
 주제어키워드  선교광장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3652  추천수  9
요한복음 4장에는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만남이 나오는데 장명(章名)을 붙인다면 ‘생수 문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정오에 홀로 물을 길러 왔습니다. 죄가 많은 여자이고, 사람들에게서 잊혀지고 완전히 소외되어 버린 여자였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물을 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대화를 진행시키려 할 때 사마리아 여인은 자꾸 피해 갔습니다. 그러나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세속적인 관심에서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말씀하시자 점차 그가 메시아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놀랍게 변화되어, 그녀에게 필수적이었던 물 긷는 일과 양동이를 내버려두고 마을로 내려가 그가 만난 메시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도움과 축복과 사랑을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현대의 교육 철학과 현대의 가치관과 진리의 척도는 실증주의입니다. 그것은 전부 유물주의입니다. 정신 세계나 영적 세계를 평가절하하고 거세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성경 인물들의 세계는 99퍼센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세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필요와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첫째, 인간에게는 영생에 대한 갈망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충족시켜 주십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라고 하셨습니다. 생수는 생명의 상징입니다. 물이 없는 곳은 죽음의 사막입니다. 생수는 만족의 상징입니다. 목마른 사람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갈시켜 줍니다. 또한 생수는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의미합니다(요 7:39). 사람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대해 목말라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을 때 성령을 받아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둘째, 인간에게는 사랑의 그리움이 있습니다.

지상에 있는 어떠한 종류의 사랑도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에 비하면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그림자를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족이 없습니다. 종점이 없습니다.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마릅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만 사랑의 참 만족을 얻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사랑의 도입니다. 성령은 사랑의 영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통해 진, 선, 미적 삶의 욕구가 충족됩니다.

인간은 진, 선, 미를 추구하며 지, 정, 의 세 가지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존재, 예술적인 존재, 진리를 구하는 존재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는 말씀은 너희가 구하고 있는 아름답고 참되고 옳고 선한 삶의 이상(理想)이 완전히 충족된다는 말씀입니다.

인간 자체로는 자존(自存)에서 자족(自足)할 수 없는 피존적, 피생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양과 같습니다. 아버지 집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녀입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면 탕자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 품에서만 자란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토양 삼아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수이고, 우리의 피이며, 우리의 호흡이고, 우리의 태양이며, 우리의 대지요, 우리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이 말은 아무리 반복하고 강조해도 다함이 없습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범죄한 후 부끄러워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어 있던 아담을 찾아서 부르시는 사랑의 하나님,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시몬아, 시몬아!” 부르시고, 박해자 사울을 “사울아, 사울아!” 부르시듯이, 지금도 모든 사람의 문전에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마음을 노크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기다리시고, 찾아가시고, 추적하십니다.

하나님과 성경 속 인물들과의 사랑의 관계, 신앙적인 관계는 시작에 불과할 뿐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주님과의 사랑의 이야기의 겨우 저변을 그려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이를 통하여 주님과 나와의 관계의 실존적 그림자와 삶의 모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곧 나의 체험이고, 나의 역사인 것입니다.

넷째, 사죄와 속죄의 욕구가 충족됩니다.

인간의 가장 깊은 욕구 가운데 하나가 죄사함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죄의식은 문학과 인간 종교와 심리학의 주제일 뿐 아니라 인간 전체의 주제입니다. 자의식이 있는 곳에, 양심의식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식이 있는 곳에 죄의식이 있습니다. 원죄의식,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를 선언할 어떠한 처방도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신 것을 믿을 때에만 죄에서의 자유와 해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값을 치루셨기 때문에 하늘과 땅 사이에 나를 정죄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다섯째, 안전 보장에 대한 욕구가 충족됩니다.

인간은 너무도 많은 운명에 대한 변수가 있습니다. 위험지수가 높습니다. 재난과 사고와 질병, 죽음, 고통과 중상 모략 등의 변수가 많습니다. 모든 사람은 불안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만세반석이고 영원한 피난처이며 절대 안전 보장을 약속하신 주님께 나를 다 맡김으로 평안이 있습니다. 안전 보장에 대한 욕구가 그리스도안에서 충족됩니다.

여섯째, 전인(全人)의, 전천후(全天候)의 필요가 충족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전혀 풀리지 않는 문제라도 우리가 믿고 구하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만족한 해결을 받지 못함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당(場)은 현실 속에 있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모든 마당이 그리스도의 현장이고 신앙 생활이 마당이며 보이지 않는 주님과 나 사이의 현장입니다. 거기에서 그리스도가 주역이 되고 나는 조역이 됩니다. 나의 모든 사건이 그리스도의 사건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생활 현장에는 다섯 명의 가짜 남편이 있었습니다. 고달픈 정오의 물동이가 인생 현장의 현실 감각이었고 현장의식이었습니다. 마셔도 마셔도 목마르고 무한히 고달픈 외로운 현장이었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마음도, 사람도 달라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무슨 문제가 있든지 그 사건을 그리스도의 사건으로 바꾸어 놓으면 생수가 터져 나옵니다. 그것이 성령의 현장이 되고 삶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7,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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