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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1-06-01
 제목  <기획> 인터뷰1-사랑을 실천하는 의사, 존 린튼
 주제어키워드  사랑을 실천하는 의사, 존 린튼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3494  추천수  10
기획/ 인터뷰1



사랑을 실천하는 의사, 존 린튼



취재/ 최신정 기자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분주함이 밀려왔다. 왜이리 환자가 많은 걸까? 긴 복도를 지나 도착한 외국인 진료소실, 여기도 분주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오는 파란 눈동자의 린튼 소장의 밝은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벌써 우리가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나요?” 그의 첫마디가 일상의 바쁨을 나타내며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내가 만난 존 린튼 소장



한국명으로 ‘인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린튼 소장은, 자신의 삶 41년 중에 33년을 한국에서 살았다고 전한다. 미국에서 지낸 것은 마치 배낭여행을 떠나듯 유치원 1년, 고등학교 1년, 대학교 1년, 가장 오래 머문 기간은 초등학교 4년, 의사수련과정 4년뿐이다.

어떻게 해서 의사의 길을 걷게 되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소장은 “사람을 좋아하고, 과학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고요. 그런 사람이 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의사밖에 더 있습니까?”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그렇게 밝은 웃음으로 환자를 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린튼 소장과 그에게 듣는 할아버지 이야기



“할아버지 윌리암 린튼은 신사참배를 거부한 이유로 강제 출국 당했습니다. 1945년 해방이 되어서야 한국에 다시 들어올 수 있었죠. 그가 한국에 들어와 제일 먼저 한 일은 학교를 복원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 줄 아십니까? 일제시대의 화려한 신사터에 화장실을 세운 것입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현재 냄새나는 화장실이 예전에 신성함과 화려함을 자랑하던 신사터였다는 것을…” 린튼소장은 이 말끝을 줄이며 큰소리로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린다.

윌리암 린튼 부부는 1950년 6·25전쟁 당시에도 한국에 머물렀다고 전한다. 6·25가 일어나자 그들은 부산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피난민 구호활동을 벌였다. 남들은 해외로 도피하는 마당에 한국에 남아서 끝까지 한국 사람을 돌본 서양인그들 역시 살아있는 증인이었다.

“할머니 샤롯 린튼은 기전여고의 교장으로 지내면서 항상 한복을 입고 학생들 앞에 섰습니다. 그것은 무폭력 저항이자 한국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할머니의 당부였죠.” 린튼 소장은 자신의 할머니 샤롯이 한국에서 태어났으며, 참으로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에 많은 애착을 가진 분이라고 말한다.

“순천의 검정 고무신”이라 불렸던 휴 린튼은 고흥에서 간척사업을 벌이던 중 1984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그 당시 린튼 소장은 연대 본과 2학년의 의대생이었다. 의대공부를 마치고, 의사고시에 합격한 린튼 소장은 뉴욕 카톨릭의학병원에서 가정의학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다시 한국에 귀국했다. 그는 이것을 마치 한국인들이 군대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하는 것에 비유했다. 전남 순천, 지리산에서 자란 존은 뉴욕보다는 한국이 더 편안하다고 말한다.

한국에 도착한 린튼 소장은 적절한 응급처치만 있었어도 살았을 아버지를 생각하며 응급, 구급 교육을 실시한다. 그리고, 신촌 세브란스병원 외국인 진료소 소장을 맡으면서 한국 실정에 맞는 구급차량을 직접 설계, 제작하여 전남 순천에 소방서 2대를 기증했다. 그는 구급차에 응급구조체제를 마련하는 등 한국의 119정착과 응급구조체제 마련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로이스 여사와 린튼 소장은 모두 아픔을 승화시켜 한국에 발전을 일으키고자 노력했으며 아픔 돌아보며 푸념하기보다는 아픔에서 시작하여 새롭게 길을 개척한 사람들이다. 그의 6형제 중 3형제가 결핵을 앓았던 시절을 기억하며 한국인들에게, 또 지금은 북한의 결핵돕기에 참여하고 있다.



남장로교의 선교가

전라도 지방에서

성공한 배경

“남북 전쟁에 실패하고 사명감에 불탄 북장로교는, 남장로교 선교사들을 동학의 휴우증이 채 가시지 않은 호남지역으로 내려보냈습니다. 여기저기 어지러운 가운데 농경생활 위주였던 호남지방의 분위기는 미국 남부의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동학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의 소외감과 남북전쟁으로 인한 소외감도 일치되었고 정치성도 없고,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은 일, 남장로교의 가치관 등도 호남지방과 잘 맞물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남장로교가 호남지역 선교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1920년대에는 이질로 인해 선교가 포기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남장로교의 선교가 20년도 채 못 되어 철수위기를 맞은 것이지요.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에 일본 정부에게, 지리산에 휴양관을 짓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전염병을 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리산에는 52채의 집과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질이 가장 심했던 시기인 6~8월, 3개월동안은 일하지 않고 지리산에 머물렀다고 전한다. 그래서인지 린튼 소장은 기자에게 액자에 곱게 끼운 추억의 지리산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휴양지를 지리산에 지은 것이 그 당시 선교사들을 살 수 있게 만든 비결이라고 전한다.



부탁이 있어요!



린튼 소장은 개화 후기, 호남지역에서 한국의 선교를 위해 애썼던 선교사님들의 유적지 중 교회가 많이 있음을 말하면서, 그것들이 생태계 보호구역으로 되어 있어 개발이 불가능함을 안타까워했다.

“지리산에 불교 사찰이 수천이나 됩니다. 그런데, 교회만큼은 복원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의 터로 돌담만 남아 있을 뿐이지요.”라고 말하는 린튼 소장은 역사에 남을 만한 개화기의 좋은 선교현장 사진들을 지리산에 전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초교파로 추진하여 등산객들이 와서 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교회를 복원시키는 일과 함께 이 일들에 대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봉교회(대방동) 담임 이순배 목사와 15년 전부터 애쓰고 있는데 아직 뜻이 전해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우리는 심부름꾼입니다



소장은, 선교사라는 것은 가고싶지 않은 곳에 가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자신과 그의 형 스티브는 그저 서양의 좋은 뜻을 한국에 전하는 자일뿐이라고 말한다.

“저는 한국에서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한국이 좋아서 한국에 사는 서양인일 뿐이죠. 진정한 선교는 저희 할아버지 대에서 끝이 났습니다. 저와 유진벨 재단의 이사장, 형 스티브는 남한에 있는 한국 사람과 미국 교포의 선한 뜻을 전하는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그래서 유진벨을 당나귀 재단이라 하지 않습니까?”



북한의 기독교 시각



“아직도 북한이 기독교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많이 따갑습니다.”

이것에 대해 린튼 소장은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북한은 선교사들을 ‘공산주의 이론의 아편’이라고 말합니다. 선교사들이 전쟁시에 통역을 맡았던 것 때문이죠. 또 하나, 아직 북한은 선교사에 대해 나라를 판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과거 일제시대 때 교회가 신사참배에 참여한 까닭이죠. 또 한가지 이유는 6·25 이후 선교사들이 미국 제국주의의 앞잡이라는 시각입니다.”

“북한에게 기독교가 신뢰를 얻으려면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신뢰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쌓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린튼 형제는 가장 소외감을 많이 받는 결핵환자를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알렌은 민영익을 치료해서 순교없이 순조롭게 선교활동을 펼 수 있었습니다. 그 한 사람을 통해 선교가 이루어졌습니다. 학교와 병원, 교회를 세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배가 불러도 소외당한 사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북한은 우리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런 주민들이 결핵이라는 끔찍한 병으로 전쟁에서 죽은 사람의 수보다 더 많은 수가 죽어갑니다. 100년 전 알렌이 기독교에 대해 신뢰를 얻은 것처럼 의료선교를 통해서 기독교가 북한에 신뢰를 얻자는 것이 우리 형제의 취지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형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기독교의 신뢰를 쌓는 데 힘을 기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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