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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2-06-26
 제목  <기획> 분과회의자료 - 아시아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복음주의와 교회일치주의
 주제어키워드  <기획>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4106  추천수  20




로져 게이콰드(Roger Gaikwad)는 아시아 그리스도교인을 아시아의 타종교인들과의 관계에 따라 아시아 복음주의자, 아시아 교회일치주의자, 아시아 가톨릭 신자 등 세그룹으로 나누었다. 각 그룹을 대표하는 범아시아 기구가 있다. 교회일치주의자를 대표하는 것은 CCA(Christian Conference of Asia)이다. FABC(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은 가톨릭 신자를 대표하며 ATA(the Asian Theological Association)는 복음주의자를 대표하는 단체이다. 타종교인들과의 관계에 있어 교회일치주의자와 가톨릭신자는 차이점보다는 유사성이 많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는 비록 같은 개신교 전통에서 왔지만 교회일치주의자와는 현저하게 다르며 심지어는 대조적이기까지 하다. 필자는 이 논문의 지평을 복음주의자와 교회일치주의자 사이의 갈등으로 한정하려고 한다.



FABC의 관점은 바티칸이나 아시아의 대부분의 정교회의 관점과는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따라서 내 견해로는 아시아 가톨릭신자를 대다수의 정통적 가톨릭신자와 소수의 교회일치적 가톨릭신자 등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내가 사용하는 ‘교회일주의자’라는 용어는 가톨릭과 정교회 그리스도인처럼 비개신교를 포괄할 정도로 의미가 넓다. 그리고 내가 정의하는 ‘복음주의자’이란 용어는 교회일치적 관점에서 두 그룹 곧 더욱 개방적인 복음주의자와 근본주의적인 복음주의자로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게이콰드의 정의와는 차이가 있다. 내 의견으로는 교회일치적으로 개방적인 복음주의자와 더욱 복음주의적인 개방적 교회일치주의자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또 나누어야 한다.



복음주의자의 그리스도 중심적 포괄주의에 따르면 “하나님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활동을 통해 실현되고 있으며, 그가 유효하게 만든 구원은 우주적 보편타당성을 가진다.”(Gaikwad, 40-41) 예수 그리스도는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혁명적 변화에서도 활동할 뿐 아니라, 모든 역사가 움직여 들어가는 종착지이며, 모든 것에 대한 최후의 심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말하자면 자연과 은총,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의 이분론은 이러한 입장을 신학적으로 불완전하게 만든다. 게이콰드는 성령이 “하나님의 일반 계시와 구원활동 혹은 우주적 그리스도를 나자렛 예수의 인격과 활동에서 특별한 완전히 충만한 계시와 연결한다.”고 지적한다. (Gaikwad, 41) 계시 교리의 관점에서 우주적 그리스도와 나자렛 예수 사이의 차이는 지탱될 수 없다. 그것은 한편으론 우주적 그리스도의 불완전성(열등성은 아니더라도)과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적 예수 전에 삼위 하나님의 활동에 있어 성령의 부재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론 뿐 아니라 삼위일체론은 아시아 종교사에서 성령의 중요한 역할을 해석하기 위한 보다 좋은 틀을 제공할 것이다.



포괄주의의 모호성과는 달리 아시아 복음주의는 “타종교인들도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적 계시를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고 굳게 믿는다.(Gaikwad, 40) 그들은 “아시아인을 위한 예수의 신적 지위와 결정적 타당성을” 주장한다. (Gaikwad, 42)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시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고 선포한다. 그러나 일부 복음주의자 조차도 “그리스도의 인격과 활동이 신학적으로 옳다고 해도 상황적으로는 추상적이다.”는 것을 인정한다. (Gaikwad, 42) 이러한 교회일치적으로 개방적인 복음주의자는 “우리들은 아시아인들이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열망을 인식해야 하며, 그들의 요구에 필요에 민간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Gaikwad, 42) 더욱이 “그들은 그리스도를 타종교의 소생, 압제에 맞서는 정의의 투쟁 그리고 전통적 가치관이나 현대화 등과 같은 도전들에 연결시켜야 할 것이다.”(Gaikwad, 42)



그러나 나의 질문은 “제한된 배타주의의 아시아 복음주의자가 그것은 신학적으로 옳으나 상황적으로 추상적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진정 가능한가?”라는 것이다. 어떻게 상황적으로 추상적인 신학이 옳은 신학이 될 수 있는가? 신학적으로는 옳으나 상황적으로 추상적인 신학이 있는데, 상황적으로는 구체적이지만 신학적으로 옳지 않은 신학이 있다는 말인가? 게이콰드는 소수의 아시아 가톨릭신자(실제로 FABC)의 신중심적 혹은 구원중심적 다원론이 타종교인의 전통에 대한 개방성과 보다 깊은 존중을 위한 여지를 제공한다고 암시하는 경향이 있다. 게이콰드는 FABC의 가장 최근의 연구를 자신의 연구에 포함시키지 않는데, 필자는 가장 중요한 FABC의 자료를 설명하고 평가하려고 한다.



“오늘날 아사에서 활동하는 성령” (The Spirit at work in Asia today)(FABC Paper No. 81)은 아시아의 교회일치적 성령 신학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토대를 마련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 중심적 배타주의나 포괄주의, 신중심적이거나 구원론 중심적인 다원주의도 아닌 성령중심적인 수용적 다원주의(pneumacenric receptive pluralim)가 그리스도론과 성삼위의 신비를 연결시키고 있다. 한편으론 아시아 종교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비의 관점에 있어서 성령의 보편적 현존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언급한다거나 다른 한편으로 아시아 타종교 경전에 연관짓는 부적절한 성서 교리가 나와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다원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우리의 관심을 끈다.



아시아 복음주의자는 대화를 복음화의 도구로 생각한다. 그들은 대화를 “자신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활동을 주목하게 하고 자신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에 연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다른 종교에 대한 개방성의 관계”라고 주장한다. (Gaikwad, 49-50) 또한 포괄주의적 신념을 가진 편에 서있는 아시아 교회일치주의자는 “대화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의 가치를 손상하지 않는다.”, “대화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그에 대한 헌신을 교정시키고 풍부하게 하고 심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Gaikwad, 47) 그러나 어떤 아시아 교회일치주의자는 이와 같이 대화에 주어지고 있는 포괄적인 그리스도 중심적 방향을 시인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다른 사람을 강제하는 독단이 아니라 체험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Gaikwad, 47-48) 그러므로 전통적 의미에서 대화는 그리스도교 선교의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대화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 진리, 정의, 평화와 상호 계발을 갖춘 다원적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타종교인은 고귀한 노력을 위해 그들 특유의 헌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Gaikwad, 48)



아시아의 복음주의자가 대화의 위험성에 대해 조심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아시아 교회일치주의자는 개신교이던 가톨릭이던 아시아 교회의 선교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서 활동하며”, “모든 형태의 불의에 대한 투쟁을 수반하며, 아시아의 총체적 발전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한다.(Gaikwad, 44) 그러한 선교는 자연스럽게 하나님 나라의 목적을 향하여 다른 종교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수반한다. 대화가 도대체 그 자체로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선전포고의 수단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아시아 복음주의자는 강하게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그 왕국은 오직 복음 선포와 그리스도로의 회심에 의해 올 수 있다”라고 주장할 것이다.(Gaikwad, 50)



그들은 종교간 대화에 교회일치적 접근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혼합주의적 타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이콰드는 “불가지론적이고 세속적이고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은 종교간 신앙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그것에 의해 양육을 받지 못한다며 의미와 목적을 결여할 것이다.”라고 잘 지적한다.(Gaikwad, 50) 만일 많은 현대의 아시아 교회일치 신학자들이 종교 다원주의를 옹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 그들은 성서적으로 정당화되지 않은 보편주의적 구원론을 지지하는가? 어떻게 교회일치 신학이 세계 인구의 4/5가 살고 있는 아시아에서의 복음화의 시급성이나 아시아의 종교다원성을 책임을 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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