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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작성일  2004-01-31
 제목  <기획> 트랙3- 선교사의 현지 이미지와 선교훈련
 주제어키워드  기획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3889  추천수  49
현대선교는 이전 식민지 시대처럼 일방적 주입식도 아니고, 우리가 선교하고 있는 각국의 사회문화가 그렇게 개발이론이란 명분 하에 모든 것을 주입하는 주종적 관계를 받아드리는 것도 아니다. 또한 현시대는 복음의 질은 변할 수 없지만 선교사의 문화까지 복음의 핵이라고 변명할 수 있는 신학의 주인행세를 할 수 있는 시대이다. 선교지도 선교사 자신 보다 건실한 복음의 일꾼과 신학자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기에 선교사와 선교 파송국 교회들이 그들의 가슴의 언어에 기울이는 것은 결국 자기도취로부터 스스로를 흔들어 깨우고 자기 지역의 역사, 문화적인 틀을 벗어나 자신을 갱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질 것이다. 그리고 보다 나은 선교사를 만들어 내는 기반이 되어질 것이다.

이를 위하여 본 논고는 실질적인 선교의 장에서 현지인들이 그린 선교사들의 이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이미지를 그리는데 있어 필자는 필리핀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이유는 물론 필자의 사역지로서 문화적인 오리엔테이션을 받아 그들의 의식의 흐름에 편승하는데 다른 지역보다 보다 유리한 이유와 더불어 필리핀은 이러한 연구에 좋은 모델이 된다는 이점에 있다. 필리핀은 식민지 시대 카톨릭 선교장으로, 그리고 근대 자본주의 시대의 미국 개신교 선교의 장으로 가장 선교사들의 활동의 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각 시대마다 스페인어권과 영어권으로 변하여 선교사의 본국의존도의 자아상을 그려내는데 보다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Ⅰ. 필리핀에서 기독교 선교사에 대한

거시적 인식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의 필리핀 사회는 모슬렘 공동사회였다. 사회적 특징은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씨족사회가 모여서 이루어진 일종의 종교 공동체 사회였다. 모슬렘을 삶의 기초로 하는 사회에서 모슬렘 선교사는 그 사회의 지도자요, 문화의 중심이요, 행정의 기반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가 이루어지게 되어진 연유는 모슬렘의 확장에서 상인선교사론, 학자선교사론, 그리고 정치적 리더로서 선교사의 세 부류를 들지만 그 중에 가장 중심이 되어지는 상인 선교사론은 동남아시아 사회가 자연종교 상태와 힌두교 사회에 있을 때 현지 문화와 사회적 상황에 가장 근접하게 접근되어진 선례를 남겼다.

사실 동남아시아의 전통적인 힌두교 사회가 무너지고 모슬렘 사회로 넘어가게 된 연유는 신은 왕이라는 신정국가의 수장인 힌두교 왕권이 무너지면서이다. 따라서 모슬렘 선교사는 그가 상인이 되었든, 정치인이 되었든, 아니면 학자가 되었든 자신이 신이라는 신적권위를 가진 선교사로 임하지 아니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선교사의 "자아-이미지"를 어떻게 가져야 했고, 가졌는가를 보여주는 근거가 되어진다.

모슬렘 사회에서 선교사는 힌두교 사회와는 달리 그는 종교인으로 분리되어 사회에서 이탈되거나 사회 위에 있는 직분이 아니었다. 그는 사회 속에서 사회문화와 함께 살아가는 평민이거나 아니면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였다. 그러기에 그는 사회인이라 불리는 것이 종교인이라 불리는 것보다 더 타당한지도 모른다. 그의 선교사의 자질론은 사회와 가장 친숙하게 어울리는 것이다. 그는 동시대 사회인들 보다 더 나은 인격이나 더 나은 지식이나 더 나은 종교적 행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사회인이라는 동질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가족을 가진, 그리고 상업에 종사하고, 그리고 남들과 함께 긴 여행을 하거나 아니면 같은 삶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종교개념의 전파자가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자신의 종교에 충실하고 그 종교를 자기 자식들에게 일차적으로 전달하는 가정의 머리였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그는 한 사회 구성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사회구조의 변화의 흐름과 함께 자연이 그의 종교를 한 사회의 새 종교로 등장케 하였다. 새로운 시대정신의 변화가 그 사회 속에 이미 존재하는 종교를 요청케 한 것이다. 이러한 면은 다음 서구식민주의와 함께 들어온 카톨릭 선교사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스페인 군인과 행정가의 배에 동승하여 온 스페인의 신부들은 필리핀에 도착할 때부터 신적권위를 가지고 왔다. 그에 의하면 필리핀 원주민의 모든 땅은 신의 땅으로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교황이 모든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신학과 함께 들어왔다. 그러기에 그 신학은 군인의 대포의 지원을 받아 원주민의 땅에 대한 권한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의 개종방법은 인격적인 도덕성에 기초한 것도 아니고, 신학의 설득력에 기초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특별한 신적 능력에 기초한 것도 아니다. 가령 그의 첫 번째 개종은 정치와 종교가 서로가 필요로 하여 이루어진 정략결혼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기에 이렇게 점철된 개종이 불러온 것은 의식적인 것이며, 행정적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이루어진 집단 개종은 각종 원주민의 노동력도 동원할 수 있는 행정적 능력까지 얻게 되었다.

그들은 신의 대변인이었다. 미사와 고해성사를 주관하는 신적 위임자였다. 이러한 이미지는 카톨릭 선교사에 대한 이미지는 하늘에서 내려온 사도, 성인, 아니면 이러한 옷을 입은 악마의 표상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이미지는 현주민들의 이미지를 무지한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해주는 구원자로 나타난다. 그들은 태풍과 기근과 여러 자연재해에서 구해주는 신적 사도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근대국가주의가 싹을 발하기 전 까지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근대 국가주의 정신이 현지 지식인들 사이에 이식되고 난 후, 특히 계몽주의 정신이 유럽과 그 식민지의 지식층에게 까지 확산되고 난 후에의 카톨릭 선교사론은 국가 독립을 빼앗아 가는데 가장 큰 정신적 지주로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 필리핀 땅에서 선교사의 이미지는 다시 한번 바뀌었다. 1898년에 스페인으로부터 미국으로 필리핀의 통치가 넘어가고 난 후에 미국선교사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사회개혁자의 사도로 등장하였다. 스페인의 주도권에 대항했던 저항 세력들은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하여 병원이 세워지고, 학교가 세워짐을 환영하였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교회가 세워졌지만 그들의 복음은 주로 도덕적인 시민이 돼야 할 것을 전파하였기에 교리적으로 크게 저항의식을 갖지 않게 되었다. 그들 눈에 큰 차이점은 다만 교회의 의식에 있어 종교예식이 다른 것이었다. 더욱이 스페인 통치 때에는 갖지 못했던 종교적 자유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마리아와 교황과 그 대행인 신부들 모두를 인간의 수준으로 내려놓은 것이다. 물론 선교사들의 보고에 의하면 많은 적대감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개신교에 대한 적대감이기 보다 사회변화의 새 물결을 경건치 못한 것으로 인식하는 자들의 거부감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좋다. 선교사는 점차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심어져 갔다. 그리고 그들은 미국의 민주정치 양식이 들어온 만인 평등사상과 함께 점차 선교사와 자신들 같은 인간으로 받아 들여졌다.

그들은 선교사를 그들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개신교가 평민들 속에 확산되게 된 중요한 디딤돌이 된 것이다. 전통적인 전체 사회의 종교인 카톨릭이 무력화된 것은 평민들로부터 교육과 의료라는 사회기초 시설을 통하여 종교가 확산되는 물결을 막아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미국 선교사들이 새로운 식민지의 또 하나의 힘이라고 인식되게 된 것은 필리핀 지성인들이 미국에 대한 태도가 바뀌면서다. 원래 미국은 필리핀을 스페인의 식민세력으로부터 자유를 주기 위한 사도로 생각했다. 19세기 말, 필리핀 독립을 위한 메손닉 운동 (Masonic movement)을 지지하는 소수의 독립인들은 미국의 입국을 환영했었다. 그리고 필리핀은 스페인이 독점하는 카톨릭의 세력에서 손을 떼거나 불가능 할 시에는 카톨릭의 붕괴도 불사하였던 것이다. (Cllymer, 1986, 93-98)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 견해는 필리핀이 미국의 손에 들어가 다시금 또 다시 다른 형태의 지배를 받는 상태에 놓였다는 것을 깨달을 때, 특히 인근 국가들이 각기 식민국가 손에서 벗어난 후, 독립된 필리핀에 아직도 지도자로서 거주하는 미국행정관과 상인, 그리고 심지어 선교사들까지 같은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II. 필리핀에서 선교사들에 대한 미시적

인 인식

A. 로마 카톨릭 선교사들에 대한 인식

스페인의 식민지로 대동하고 들어온 카톨릭 선교사들의 지역활동은 개신교의 활동보다 더 빠른 선교열매를 거두었다. 그들이 성공하게 된 이유는 토착민들이 그들의 활동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보여줄 것이다. 그들은 현지 언어훈련이 단지 종교활동에 대한 수단이라고 보기보다 현지인들에 대한 사랑과 친절의 방편으로 여기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사회의 중심부에 서서 공공지도자로 인정을 받았다. 가령, 교회를 마을의 가장 중심부, 곧, 시장과 공공관청과 학교의 옆에 세움으로 종교행사를 사회행사로 만들고 그들은 종교지도자 뿐만 아니라 사회지도자로 인지되었던 것이다. 또한 문화적 지도자였다. 사제는 종교의식을 주관하는 종교인뿐만 아니라 문화활동의 중심에 서있게 된 것이다. 가령, 사회의 축제를 종교화 시켜 가장행렬, 결혼식, 사회각종절기를 모두 종교 문화화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카톨릭 신부는 문화행사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 카톨릭 신부는 공공재산은 크고 작은 일의 지도자가 되었고, 실재 많은 재산도 있었지만 원주민들에게는 근면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였다. 그들의 문화비는 종교활동비로 인식되었고, 그들의 개인 사생활은 근면한 삶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점차 후기 카톨릭 신부들의 사생활의 방종은 그들의 인식을 부정적으로 바꿔놓았다. 화려한 의상과 만행 된 교권주의적 행동이 그러한 인식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들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여러 각도에서 이루질 것이고, 이미 많은 평가 자료가 나왔다. 이러한 평가는 이들의 원시사회악에 대한 관용과 수용, 종교교리의 혼합화, 종교의 정치에 대한 시녀활동, 현지 사역자 양성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 등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역사적 평가보다 당시 그들의 활동과 삶에 대한 현지인들의 시각은 어떠했는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먼저, 그들은 현지인들의 눈에 종교적인 정렬, 현지문화습득, 그리고 그들의 근면한 사생활에 있어 모범이 되었다. 그들의 이러한 이미지는 카톨릭 선교의 전달자로서 현지인의 좋은 반응을 얻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B. 개신교 선교사에 대한 인식

개신교 선교사들의 성공적인 교회개척과 공공기관 설립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미지는 손님으로 초대된 것이었다. 그들의 개척교회의 방법에서 이러한 것이 드러난다. 이들은 개신교 선교사에 호의적인 몇 소수에 의해 한 마을에 초청되어 사역터를 넓혀갔다. 따라서 이러한 사역터 확장은 사회 중심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한 사회의 주변에서 시작되어 확대된 것이다. 사회적인 신분에 있어서도 그들의 일차 접근자들은 한 사회의 주변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개종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선교사는 자신들의 신분을 상승시켜줄 수 있는 자로 보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교사에 대한 인식은 필리핀에서 두 가지로 나타난다. 먼저 개종치 아니한자들이 바라보는 사회개혁의 방편으로, 또한 신분상승의 수단으로서 말이다. 이들은 종교의 중심인이 원래 되지 못하였다. 초기부터 평신도 조력자와 현지목회자의 안수로 인하여 현지인이 종교의 중심위치에 선교사는 종교 활동에 있어 보조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가 개신교의 양육프로그램이 약화된 연유이다. 개신교의 교파증가도 카톨릭에 비하여 크게 진전된 것이 없다. 다만 성경을 공식적인 믿음의 기초라는 중심원리 외에는 말이다. Bulatao (1980, 148)의 말대로 필리핀의 가슴은 카톨릭 선교의 3세기 후나 그 후 개신교 선교 1세기 후인 지금에 이르기 까지 아직도 정령숭배 수준이다.

더 나아가, 개신교의 종교활동은 표피적인 종교활동에 그치기에 사회중심에서 보면 Lapiz (1997, 72-73)가 지적한대로 종교적 사회전복을 기도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 중심에서 요청하는 변화도 아니며, 그렇다고 종교성 중심에서 시작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에서 보든지 종교심리상태에서 보든지 중심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단지 변죽만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죽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사회 중심부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와 더불어 개신교 선교사 자신의 세계관으로 현지문화를 비판하고 판단하는데 기인한다. 로마 카톨릭의 사제들은 종교행사와 문화행사를 구분하지도 구분하지 않지도 않는다. 그럼으로 "수용성 있는 종교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카톨릭 신부들에게 종교적 사회전복자라든가 아니면 변죽을 울리는 자로서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젊은 개신교 선교사는 한 사회에서 노인과 젊은이의 질서를 바꿔놓는 자로 또한 비춰진다. 처음에는 공경하는 듯 했으나 해가 지나갈수록 젊은이들이 득세하는 종교형태를 취한다. 물론 노인들은 공개적으로 그들의 심정을 토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들의 예의방법은 신실성에 기인하기보다 사회도덕의 한 이행자에 그친다.

개신교 선교사의 또 다른 이미지는 감정적 주입자라는 것이다. 이들의 복음전도방법은 감정을 자극하는 감동적인 설교를 무기로 하지만 그들의 삶은 그렇게 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현실적 사회에서 살기는 무리한, 아니면 현실사회와 틀이 맞지 않는 굴곡된 생활상을 전하고 있다고 본다. 가령, 사회의 관습을 죄악으로 취급함으로 사회관습의 파괴자가 되지 못하는 개신교도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적 주입과 사회관습에 도전하는 설교는 그들의 추종자의 사회생활을 더욱 주변인으로 만들고 자신 역시도 주변인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추종자는 "심장의 중심부" "진정한 자아" "진정한 이웃"이 되지 못한 것이다. (Lapiz, 1997, 84-94) 단지 그들이 개체화를 인정하는 도심사회에서 숨을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그러나 선교사는 영원한 이방인 손님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두 사회 형태에 두 가지 선교사의 이미지를 본다. 전자는 전통적인 사회구조를 바꾸거나 아니면 개종자에게 사회적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종교 활동이 아니라 사회전통의 수호자요, 사회중심의 리더였다. 그들의 선교방법은 주입식이고, 사회의 모델로써 역할을 스스로 자기 사명으로 인식하고 그렇게 활동하였다. 그들은 아직도 역사의 맥을 이어 현지인의 존경 속에서 사역하고 있다.

반면 개신교 선교사들은 전통사회를 전복하는 자요, 사회변혁을 이루기 위한 자였다.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문화계에서는 주변인으로 남아 받아지지 아니하는 종교문화를 이식하였으나 피상적인 이식만을 행하였을 뿐이다. 이들을 따르는 개종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존경하기보다 사회신분의 상승을 위한 기회로, 아니면 그들의 실생활의 도움이 되는 맏형으로 따르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결코 그들은 사회 중심부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회의 주변인이 되어 종교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두 사회의 구조 속에서 활동한 선교사의 이미지를 바라보면서 오는 세대의 선교사 상을 바라본다. 전술한대로 21세기는 문화의 국경이 없다. 문화의 울타리도 없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필리핀 사회뿐만 아니라 모든 선교지에서 문화의 구조는 아직도 건재하다. 선교사의 전략은 국제적이지만, 전술은 국부적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선교사의 삶은 전술과 전략으로 이루어진 계획성도 있지만 한 삶이 자기의 인격을 한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전술도 전략도 아니다. 같이 살아가는 현지인의 선교사에 대한 인식이야 말로 살아있는 인간관계요, 자기 정체성과 인격적 주체를 만들어내는 피와 살이 되지 않겠는가!



Ⅲ. 선교사 훈련에 대한 제안

상기한 대로 우리는 이전 시대의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에게 어떠한 이미지를 주었는지 살펴보았다. 이에 근거하여, 21세기 현 사회를 살아가는 선교사로서 몇 가지 우리 상황에서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을 선교사 훈련프로그램의 정책수립에 있어 고려해 줄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1. 전략적 선교라는 말이 선교는 파송국이나 선교사가 선교지를 객체화하여 만들진 단어가 되게 하지 말고 피선교지와 그 교회의 주체적인 생명에 귀를 기울이는 말이 되게 하자. 곧, 리더십 개발이나 창의적 접근방법, 미전도 족속입양, 파워 인카운터 그리고 전략적 창구라는 선교의 큰 용어들이 방법론적인 개발에만 치우지는 파송국의 일방적인 접근방법을 넘어선 단어가 되게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효율성과 자본주의적 원리에 입각한 피선교지(교회)의 객체화 자세를 지향하여 현지인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미시적이며, 주체와 주체가 만나는 훈련프로그램이 되어져야 할 것이다.

2. 타문화적응이란 과목이 이론적인 면에서나 이해되는 수준이나 현지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편 정도로 인식되는 것을 넘어선 자기인격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선교훈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곧, 문화이해가 생활인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지인의 중심부에 진입할 수 있는 종교지도자의 인격으로써 기초실력을 갖추도록 격려하고 도와주는, 곧 현지의 내제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인격이 되도록 보다 깊이 있는 훈련 프로그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령 생활인은 쌀값과 집세에 선교사의 주된 관심임을 벗어나 한 사회의 지도자가 되려면 그 사회에서 쌀이 무슨 의미를 경제, 정치, 문화적으로 갖는지 이해할 수 있는 그들의 역사와 현 사회의 구조, 문화구조, 그리고 종교 활동의 구조를 파악하는 지식과 인격이 요청되는 것이다.

3. 선교사의 전도활동이 교회설립이라는 작은 틀 안에 제한되지 않도록 보다 넓은 의미의 교회의 개념도 이해될 수 있는 선교훈련프로그램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는 한 행위가 다면적으로 해석되는 사회이며 또한 확산성도 매우 빠르고 넓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가령, 교회당 건물이 예배처와 개교회 종교 활동의 장을 넘어 한 사회의 상징성을 있다는 면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선교사 자신과 자신의 현지 일꾼이 사회에서 어떠한 위치로 인식되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면도 살필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4. 현지언어 익힘도 살아 남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현지인의 역사와 문화를 감사하고 존경하는 자세로서 익히게 하고, 더 나아가 지도자로 설 수 있는 필수조건임을 깨달을 수 있는 선교사 훈련프로그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선교사의 인격과 윤리에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5. 선교사는 변화하는 사회에 활동하든, 아니면 수구적인 사회에서 활동하든 간에 변화만을 추구하거나, 전통수호만을 애호하는 틀에 밖힌 사역자가 아니라 말씀과 세계 속에서 늘 성장하는 자기실현자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선교훈련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것은 주입식이거나 방법론적이 아니라 신학과 윤리가 살아있는 성육화 되어지는 선교훈련 프로그램이 되어져야 할 것이다.

6. 마지막으로 피선교지 교회가 선교사의 전한 복음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자기실현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참된 조력자로 자랄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는 훈련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곧, 현지인의 이러한 고통에 동참하면서도 자기성취가 아니라 현지교회의 자기실현이 되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어지는 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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