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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4-03-03
 제목  <특집>기고1-도시빈민선교활동과 가난의 영성
 주제어키워드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1994  추천수  10
도시 빈민 선교활동과 가난의 영성

김기돈 목사(기독교도시 빈민선교협의회 회장)

1. 도시빈민 선교의 자리

예수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과 예수의 현실은 ꡒ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소서ꡓ라고 간절하게 부르짖지 않으면 안 되는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의 현실이었다. 그것은 바로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예수의 자리이기도 했다. 예수는 바로 오늘 필요한 양식을 기도하라고 이르신다. ꡐ밥ꡑ의 청원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매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당시의 사회적 곤궁을 전제하고 있다. 진정 ꡐ우리의 밥ꡑ이 되기 위해서는 함께 생산되어야 하고 그렇게 분배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소비되어야 한다. 불의한 밥,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은 결과로 얻은 밥은 결코 일용할 양식이 아니며 그 안에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형제자매의 사랑과 우애의 연대를 담아낼 수 없다. ꡐ밥ꡑ은 집단적인 뒤바뀜을 요구하고 있다. 복음 속에서는 타인의 필요를 무시하고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밥은 나누어야 하고 그 나눔의 현실에서 ꡐ하나님 나라의 잔치ꡑ가 싹튼다. 이로써 우리의 우애와 친교는 완성되고 아울러 밥은 바로 지금 굶주린 삶의 여정 한복판에서 만족스러운 양식인 ꡒ예수와 그의 나라ꡓ를 현존하게 한다. 가난한 자들과 우선적으로 함께하는 신앙적 확신은 바로 이 절실한 나날의 밥의 현실에서 출발한다. 예수께서 가진 것이라고는 거칠어진 빈손뿐인 평범한 노동자들, 어부들의 손을 잡아 이끌고 그 손들을 한 곳에 묶어 세워 예수공동체의 기초로 삼았던 사실에 주목한다. 예수께서 사망과 절망적인 실의와 좌절을 희망과 용기로 바꾸어 놓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손을 주셨다. 예수공동체는 그들의 좌절과 굴욕의 자리에 서있다. 가난한 이들의 한숨의 실제에 구체적인 관심을 가진다.

도시빈민들은 늘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노동에 놓여있다. 언제나 계절적 실업에 놓여 있고, 예고 없는 일의 단절로 1년의 4-6개월은 강요된 실업상태에 놓이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노동조건 속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새벽을 열고 어떤 사람들보다도 장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평생을 벌어도 가까이 접근할 수조차 없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집을 짓고, 환기통 없는 지하실, 좁은 공장 안에서 먼지와 솜가루를 먹으며 종일 미싱을 밟고 실밥을 뜯는다. 이러한 외적인 조건들을 ꡒ선택의 여지가 없이ꡓ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바로 가난의 한숨이다.

가난의 한숨은 60년대에서 75년 사이의 농촌을 떠난 이농의 발걸음들을 그 배경으로 한다. 저임금과 저곡가를 기본 축으로 하는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기 위해서 값싼 노동력이 구조적으로 필요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농촌의 피폐화와 거대한 도시빈민층의 형성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달동네 사람들이 가파른 산중턱에 거대한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게 된 까닭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대로 주거비와 생활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생존방식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도시빈민들이 안고 있는 불안하고 불안정한 삶의 조건 즉, 고용과 소득, 주거와 교육, 탁아 등의 삶의 질을 규정짓는 환경은 근본적으로 정책과 구조의 산물이다. 시장경제의 무한 착취가 뒤따르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속에서 계속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농촌의 철저한 몰락은 60년대의 이농현상과 또 다른 형태로 도시빈민의 생성을 예고하고 있다. 게다가 앞서 말한 재개발로 인한 도시빈민 밀집지역의 해체는 가난한 이들을 향한 또 다른 투신과 연대의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신앙적 성찰과 고백은 바로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의 실제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어떠한 추상화가 아니라 뼈저리게 ꡐ나날의 밥ꡑ을 기도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가난의 실제적인 현실은 우리에게 ꡐ신학 이전의 것ꡑ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어떠한 신학이나 이론 이전에 빈곤의 현실과 이 가난에의 투신이 연대가 있음을 인식해야한다. 어떠한 이론이나 신학이전의 것에 관심 하는 것은 ꡐ가난을 논하는 신학ꡑ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가난의 현실에 투신하여 섬기는 하나님의 선교현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가난은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띤다. 불의에 의해 조성된 상황이며 하나님을 상심시키고 인간 곧 하나님의 형상을 비하시키는 것이다. 바로 신학 이전의 현실에 이러한 가난의 현실과 가난한 사람이 있다. 이러한 신학 이전의 현실은 가난이나 부를 추상화하여 칭송하는 사회가 아니라 ꡒ정의와 사람다움을 회복하고 창조하는 사회ꡓ를 제안한다.



2. 빈민선교과 바닥교회, 그리고 가난의 영성

- 빈민선교의 역사는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현재의 선교적 실천이다.

빈민(주민)선교의 자리는 조직이나 프로그램 이전에 가난한 사람들의 실질적인 좌절과 분노, 그리고 참담한 바닥현실에 있다. 그것은 정연한 논리적 언급이나 규격화된 도그마가 아니라 영성적 삶이며 실천적인 고백이다. 그것은 바닥에서 몸으로 읽고 말하지 않고서는 이루어 질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30년을 가로질러 한결같이 걸어왔다. 이렇듯 빈민선교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바닥현실과 바닥 사람들을 중심에 두고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일어서서 서슴없이 자신의 말을 하고 함께 아픔을 나누는 바닥현실, 그리고 온갖 모순과 소외의 현실을 거스르며 선교적 실천을 이어가는 사람이 바로 빈민선교의 출발점이자 과정이며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빈민선교는 경직된 제도교회의 물량주의와 개인주의적 신앙 형태에 대한 대안적 실천의 성격과 바닥 민중현실의 좌절과 모순에 맞서 함께 살아가는 변혁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독교도시빈민선교협의회(이하 기빈협으로 표기)는 70년대부터 비롯된 민중운동의 전통을 이어서 80년대 90년대의 바닥 민중현장을 가로질러 함께 성찰적으로 걸어오면서 그 내용을 실천해 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ꡐ왜ꡑ라고 적극적으로 묻지 않았다. 바닥 민중현실의 모순과 그 아픔이 너무나도 자명하고, 절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빈민선교는 가난한 사람들의 절박한 좌절과 굴욕의 자리에 서서 그들의 말을 경청하여 듣고 보았다. 경직된 문화적 도그마가 지배하는 이 사회 속에서 약한 사람들, 아무도 자신의 말을 경청해 주지 않기에 몸으로 부대끼며 이야기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다가설때, 그들 사이에서 어떠한 조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빈민선교는 민중현실에서 비롯되는 조짐들이 서로 얽히고 연결되어 조직되는 과정 안에서 경험되는 선교적 실천이다. 그 과정 안에서 소통을 이루어 가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좌절과 분노와 소박한 희망이 서로 부딪치고 교차되어 새로운 흐름이 되어가는 경험을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빈민선교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걸어온 선교적 실천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빈민선교 30년 역사는 물리적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일관된 선교적 실천과 그 내용을 말함이며, 새로운 역사를 몸으로 읽어내기 위해 바닥현실과 새로이 만나가는 현재를 의미한다. 이렇듯 역사성을 담고 있는 현재는 프로그램의 가짓수나 그 외형을 중심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더욱더 심화되어 가는 빈곤현실과 민중의 삶의 자리에 다가서서 함께 살아가는 선교적 실천의 영성적 자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빈민선교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며, 선교적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 빈민선교는 동시대적 모순을 가로질러, 역사적으로 ꡐ존재하는ꡑ 것이 목적이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도전적인 대안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세계는 무한 착취가 구조화 되어 있는 ꡐ글로벌 카지노ꡑ 세상이다. ꡐ세계화ꡑ라는 말에는 세계 거대자본의 악마적 모습이 담겨 있다. 여기에 사람의 얼굴이나 사람다움이 자리할 곳이 없다. 바로 여기에서 사람을 우선적 가치에 두고, 피가 통하는 사람과 사람의 사람다움을 추구해 가면서 ꡐ존재하는ꡑ 것은 그 자체로 대안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빈민선교의 소재는 바로 이 거스르며 가로질러 존재하는 지점이다.

빈민선교는 참담한 바닥현실 속에서 현실적으로 ꡐ막다른 선택ꡑ을 강요받곤 하였다. 역사적이고 동시대적인 모순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 머리의 판단이나 사색을 넘어서는 존재적인 경험이며, 실존적인 지점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절박한 도전에 대해서 ꡐ거스르며 존재하기ꡑ는 하나의 싸움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버티며 거스르며 버젓이 존재하기가 하나의 대안으로 지점을 만나게 된다.

단절의 시대, 경적을 울려대며 일방통행으로만 치닫고 있는 이 광적인 착취와 자본주의적 소비의 메커니즘의 흐름을 가로질러 대안적 사람과 생명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ꡐ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유일한 길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많이 쌓여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청을 높이고 있는지에 따라, 그 양이나 숫자에 의해 결코 그 정당성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는 사실에서, 빈민선교의 성찰은 비로소 사람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ꡐ역사적이고 대안적인 존재하기ꡑ인 것이다.

이것은 동시대성을 바탕에 두고 하는 말이다. 이렇듯 동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가로질러 가는 것이 아니라면, 시체운반자이거나 그 자체로 죽은 존재 일 것이다. 빈민선교는 바로 이 동시대적 고백으로 존재하며,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빈민선교의 소중한 전통은 그대로 살아가고 실천하는데 있으며 이로써 그 내용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빈민선교 30년의 역사는 그저 흘러온 것이 아니다. 그 실천적 경험과 고백이 사지거나 단절된 것이 아니다. 흐르지 않듯 하면서도 면면하게 실천적인 고백으로 생생하게 기억되고 재생산되고 새롭게 체험되는 과정을 지나온 것이다. 그것은 존재하기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존재하기의 과정을 통해서 소중한 빈민운동의 전통이 대안적 실천으로 재해석되고 재생산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대체 누구인가? 하는 일련의 물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지금을 더욱 철저하게 인식하는 만큼, 지금 내가 영성적 확신으로 존재하고 실천하며, 어느 지점을 가로질러 걷고 있는 것인지를 깨닫는 만큼, 역사가 주는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역사적 존재라는 것, 지금 역사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전망이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안에 이미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다보는 것은 현재적인 실천이 그 창이 되고 통로가 되어 분명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지금 ꡐ존재하는 것ꡑ이 우리의 목적이며 지향이 되는 이유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빈민선교활동은 여러 가지 한계나 결핍에도 불구하고, 지금 역사적 존재로서 빈민선교의 실천적인 공유지대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며, 이것이 이후의 역사적 실존을 품는 그릇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빈민선교의 실천적인 경험들을 새로이 소통하는 구조를 만들어 가고 이것을 우리의 현재적 경험이 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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