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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선교정보기타  작성일  2005-08-12
 제목  러시아 신학생에 간증문
 주제어키워드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6474  추천수  51
사진은 러시아 선교사 와 신학생들



겨자씨 선교회(Mustard seed Mission America) 에서

중보기도와 장학금 후원을 받고 있는 마리야 자매의 간증문입니다.

기도 후원자 여러분들이 그 자매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난 후에는

더 구체적으로 기도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 간증문을 받아서 번역해

보내드립니다.

계속 기도해 주십시오. 물질 보다 더 큰 후원은 바로 여러분들의 기도입니다.



저의 이름은 아가피예바 마리야 니꼴라예브나입니다 .

저는 1983년 러시아 벨리끼 로브고로드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재혼을 하셔서 새로운 가정을 만드셨고 다리아 ( 애칭으로는 다샤 ) 라는 여동생을 낳으셨습니다.

어머니와 이모가 저희를 양육하셨습니다.

여덟 살도 되기 전부터 '나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내가 없었다면?,

내가 살고 있기는 한데….?' 등등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씩은 이 질문들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제가 열 살 되던 해 어느 날 이모는 어딘가 가셨고 엄마는 직장에

가셔서 집에는 저와 여동생 다샤 둘 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슴이 답답하고 무서워졌습니다. 저는 갑자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너무 너무 무섭습니다. 지금은 여동생과 저 둘 뿐입니다. … …»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을 믿으면서 어린 아이의

말로써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나는 울고 있었고

무슨 이유에서든 집에 혼자 남게 된 온 세상의 아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가 거의 끝나갈 부렵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아버지하나님, 저에게 아빠가 없어요.

그러니 하나님이 제 아빠가 되어 주세요. 제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보고

계시 쟎아요 아버지

이렇게 기도를 드린 후 저에게 놀라운 평안이 왔습니다.

그리고 잠이 들었지요.



한달 쯤 지난 후 산책하러 거리로 나갔다가 여저 친구들을 만났는 데

그 중 한 친구가 저에게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너 토요일에 교회학교에 안 가 볼래? 참 재미 있는데…

저는 가고 싶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6,5살 밖에 안 된

여동생을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우리는 도시의 반을 지나서

가야하는 장소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했고 엄마는 저를 초대한

친구의 아버지, 즉 어른이 동행을 해서 오고 간다는 조건으로

교회 학교에 가도록 허락을 해 주셨습니다. 교회학교 수업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집에 가기가 싫을 정도로

너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2시간 30분 동안이나

열심히 들어야 하니 어린 여동생은 피곤해 했지요.

공부가 끝난 후 교회 목사님이 저에게 다가 오셔서

주일 예배에 나오라고 초대를 하셨습니다. 저는 동의했습니다.

집에 돌아 왔을 때 출장에서 돌아온 이모가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모는 저희가 그곳에 가서 무엇을 했는지 꼬치꼬치

물어보셨습니다.

( 이모는 우리가 그 어떤 이단에 빠져들어가나 싶어서 그러셨나 봅니다. 그 당시 소비에트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정권이 바뀌면서

사람들은 뭔가 새로운 것을 찾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많은

이단들이 확산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끌렸습니다.

이상한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하여 사람들은 지붕이나 창문에서 뛰어내렸으며 자신을 불태우기까지 했습니다.)

이모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교회에 가도록 허락한 어머니를 자주 나무라곤 하셨습니다. 이모는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 조차 싫어하셨습니다.

이모는 나와 여동생에게 러시아 정통 정교회를 가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변함없이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 다음 번 여동생과 함께 교회에 갔을 때

저의 온 인생이 변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목사님께서 회개로 청하셨습니다.

열 한 살 밖에 안된 제가 앞으로 났을 때 나이가 어린 까닭에

놀라셨지만 되돌려 보내지는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 시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셨습니다.

저는 기쁨으로 차고 넘쳤으며 날고 싶었고 마치 어깨에 날개가

돋은 듯 했습니다.

저는 기쁨으로 그냥 차고 넘쳤습니다!!!

그날 저는 기쁨과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한 큰 가슴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건에 관해서는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기쁜 데 왜 그렇게 눈물은 한없이 흐르는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일 이후에 저는 여동생과 여자친구를 데리고

계속 교회에 다녔습니다. 저는 기독교 서적과 전도지 그리고

어린이 성경 등을 집으로 들여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이모도 회개하고 진리의 길로 들어서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쩌다 전도지를 읽어 보셨고

이모는 아예 우리를 이단에 다닌 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거듭남의 체험을 한 후 1년이 지났습니다.

제 마음이 새로와 진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이모는 저와 동생을 먹여 살리시고 교육시키시기

위하여 항상 일하셨기에 바쁘셨기에 저를 특별히 돌봐주실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 마음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너무도 잘 알고 계셨고 언제나 저를 선한 길로 인도하셧습니다.

머리속에 나쁜 생각이 생기면….예를 들자면 공부시간에

땡땡이를 친다던가 아니면 거짓말을 한다든가…공정하고

엄격하신 하나님께서 벌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러셨구요. 하나님께서 스스로 우리를 교육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제 인생 속에서 이 아름다운 시간들이 지나고

우리 가족은 로브고로드라는 도시에서 그 주위의 작은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는 설교자도 없고

믿음의 형제 자매들의 입술에서 흘러 넘치는 찬양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고통스러운 시간을2년이나

그곳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영원히 계속되는 것 같았습니다.

기도했지만 제 마음 속은 불편했습니다.

이사를 간 후 저는 거의 모든 것 즉 사랑하는 학교,

친구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꿈과 계획들을 모두 잃어 버진 것 같았습니다.

나의 삶은 온통 먹구름 낀 하늘 같았습니다.

주님 만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걸 느낄 수 있엇습니다.

물론 저의 영적인 상태는 나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때는 저에게 어떤 유익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는 그 이유를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런 연단의 기간을 지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들이 이런 어려움에 처해서 영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열린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어려운 연단의 기간 가운데 주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기에 저의 믿음은 단련되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 2년 이라는 기간 동안 저는 두 번이나 입원을 했었습니다.

처음엔 순환기 질환으로 기침이 너무 심해서 입원을 할 수

앆에 없ㅇ었는데 늘 바쁘신 어머니와 이모는 아주 가끔 병원에 오시곤 했습니다.

유일하게 제 옆에 있던 것은 성경 뿐 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입원을 하게 된 것은 위에 문제가 생겨서 두 달 반 동안이나

병원에 있었습니다.

그 때 여호와 증인들로부터 저를 지켜 주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셨습니다. 겨우 1년 교회를 다녔기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께로서 나지 아닌 자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여호와 증인 자매가 저에게 어린이 성경을 하나 선물했는 데 거기에는



예수님이 좋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들 이기는 한데 하나님이시라고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전능하신 분이시라서

자신의 자녀들을 꼭 필요한 곳으로 보내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열 네살 되던 해 드디어 저는 다시 노브고로드로 돌아올 수

있었지요. 이 일이 어떻게 일어 났느냐 하면은요…

제가 회개의 체험을 했던 그 때부터 저는 어머니와 이모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했왔었습니다.

우리가 이사를 했을 때 이모는 노브고로드를 떠나기 싫어서

그냥 그곳에 남았었습니다. 그 후 얼마 후 이모와의 연락이 끊어졌지요.

짧게 말하자면 그 당시 이모의 삶의 상황이 좋지 못한 쪽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저는 이모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고까지 생각을 했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모를 위해서 기도를 계속했고 어머니에게 모든 것이 잘 될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나와 여동생 모두가 집에서 쉬고 있는 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제가 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보니 이모가 온 것이었습니다.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이모는 살아 있을 뿐 만 아니라 건강했고 여러가지 기독교 서적과 복음서 몇 권을 한 가방 가지고 왔습니다.

이모가 주님을 영접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기도를 시작한 지 6년 만에 주님께서

자신의 긍휼하심으로 하신것입니다. ) 그녀의 자녀들까지 모두

신앙인이 된 것 뿐 아니라 죽은 줄만 알았던 동생을 다시 만난

어머니에게는 이 모든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이모는 얼마 후에 믿음의 형제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다시 노브고로드로 와서 함께 살며 그곳에서 공부하고

교회도 함께 다니자고 하셨습니다.

제 마음은 혼란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도시에 가서 공부도 하고 교회도 가고 싶은데

또 한편으로는 어머니와 여동생만 남겨 두고 가는 것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것은 남동생들이 어머니말씀 뿐 아니라 학교의 선생님

말씀도 너무 너무 안 듣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게서 저보다 저의 자족을 더 잘 아시고

도울실 것을 믿고 모든 것을 주님게 의탁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그렇게 하셨습니다.



저는 도시에서 학교도 다니고 교회도 다닐 수 있었습니다.

(대략 1년 반 쯤) 그 후 이모와 이모부가 침례교회에 나가시게 되어

저도 그들을 따라 함께 침례교회에 나가되 되었습니다.

전 그 때 열 여섯 살이었고 전 그냥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성도일 뿐 이었습니다.

제가 다닌 교회는 미국 텍사스에서 오신 선교사님이 세우신 교회였습니다. 그 선교사님이 본국으로 돌아간 후

저의 여동생이 한 번은 교회에 왔었는데 그 당시 사역들 중에 한 사람이 동생에게 거짓되고 이상하게 대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마음은 깊은 상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그 교회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엔 그 사역자를 용서할 수 없어서 기도도 할 수 없었고 교회도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공정하지 않은 것을 보왔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저 자신이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데는 종지부를 찍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결론에 바로 다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거의 1년 반 동안 가끔식 다른 교회를 나갔고 저의 영적인 상태는

계속 눌려있어야 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비오는 거리를 울면서 걸어 오고 있었습니다.

눈물 때문에 자동차가 저를 향하여 돌진해 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운전기사가 제 시간에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면 저는 분명히

큰 일을 당했을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 온 저는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사역자들이 성경적이지 않은 일을 행하는 것을 대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람들 가운데 저를 위해 기도해 주고 제맘의 지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저의 영적인 지도자가 없을 때 전 어떻하지요?

저의 상하고 아픈 마음을 치료해 주세요.

제가 교회 안에서 할 수 있는 사역을 제게 주세요.

만약 나의 삶을 주님께 드리지 않고 평범하게 그렇게 살아갈 수가 없어요.

주님 없이는 제 삶이 의미가 없습니다.»



석 달이 지난 후 어느 날 친척들이 개척한지 얼마 안 된 복음주의교회로

저를 초대를 했습니다.

그 날 예배를 드릴 때 주님께서 많은 것을 말씀하셨고

저는 그 교회를 출석하지 시작했습니다. 매일 방과 후

태권도 훈련이 끝나면 곧장 교회로 향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교인 수는 작았지만 진정한 가족이라는 느낌이 드는

교회였습니다.

처음엔 비디오를 대여해 주는 부서를 담당해서 봉사하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신디사이져를 연주하는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년 후 모든 사랑 받기에 합당하신 주님께 저의 삶을 드리기로

작정하고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2002년 7월26일에 세례를 받았는 데 그 하루 전 날 주님께서 아주

중요한 걸 하나 기억 나게 하셨습니다. 어릴 적 어른들이 하나도

집에 없던 그 날 제게 이 땅에 아버지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어 달라고 했던 기도를 기억 나게 하셨습니다.

그 때서야 저는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제가 어린 시절 그 기도를 주님께 올려 드렸을 때 이미

저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다는 것을….

제가 주님의 말씀을 끝까지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하나님은 저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셨던 것이고 저를 지금까지 지켜주셨던 것이었습니다.

세례를 받던 날 저는 주님께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이 세상의 아이들은 자기들의 아버지가 사장님이라

유명한 스포츠맨이라 아니면 대통령이라 자랑을 하겠지만 전 '나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라 고백합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이렇게 공평하시고 전능하시고 거룩하시며 독생자를

우리를 위하여 주실 만큼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

지금까지도 저는 이 고백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이건 그냥 말이 아니라 이것은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은 후 교회에서 사역을 계속했습니다.

주님께서 저의 음악적인 재능들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기에 저는 신디사이저도 연주하고 더 나아가 포노그램을

녹음하는 일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솔로로도 찬양을 하게 되었고

얼마 후 다른 자매 한 사람과 함께 찬양팀을 인도하는 중책이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교회에 사역자들이 모자라는 까닭에 전 3년 6개월도 지나기 전에

교회 당회의 서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1년 반 전부터는 제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시작했습다.

신학교를 다니던 때도 아니었는데 목사님께서 설교를 해 보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 열 여덟 살이었고 이미 독립해서 일하며 교회에서도 사역을 계속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저는 저의 성경 지식이 너무 미미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말씀을 해석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그 동안 큰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성경의 구약과 신약이 쓰여진 그 언어를 조금 이라도 알아서 원문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그 당시 저는 교육전문학교의 심리학과에 진학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우선 주님께 어디서 공부해야 할지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주님은 새학기부터 너는 공부를 할 것이다'라고 응답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새 학기가 되어도 저는 공부를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때 가나안 신학교에서 학장님께서

저희 교회를 방문을 하셔서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 순간 제 심장 박동수가 갑자기 빨라지는 것을 느길 수 있었습니다.

번쩍 손을 들고 공부하러 가겠습ㄴ다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못했습니다.

아마도 약간은 의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학장님께서 열 흘 간 시간을 더 줄테니 잘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다시금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전문학교에 다니던 여동생의 생활비를 제가 책임을 지고

있었기에 많은 의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미성년의 여동생을 내팽개치고 올 수가 없었기에…

어머니가 이 도시로 이사 오려면 먼저 직장을 그만 두기 전에 다른

직장을 구해야만 하는 문제도 안고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저의 발목을 붙잡고 잇었기에 저는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금식이 끝난 후 교회의 성도님들 몇 분과 목사님이 한 목소리로 공부를 하러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전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 이것이 나의 욕심이 아닐까? 실수하면 어쩌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금식을 다시 시작 하는 그 날 직장에서 너무도 일이 많아서 기도할 시간 조차 없었습니다.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목사님께 기도할 시간 조차 주시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 공부하러 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목사님과 몇몇 형제들이 실망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 자녀에게 언제 마음의 문을 두드려야 하실지

정확히 아시는 분이십니다.



공부하러 가지 않겠다고 목사님게 말씀드리고 나서 저의 마음을 세상을 향했는데 왠지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저는 주님께서 저의 결정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지금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주님은 매일 매일 많은 것들을 열어 보여주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향하신 여러가지 계획들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주님의 음성 듣기를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신학교에 입학 하자 마자 저는 어머니를 주님께

인도할 수 있었고 어머니는 거듭남의 체험을 하신 후

지금은 노브고로드로 이사 하시어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신앙 생홀도 열심히 하고 특히 여동생은 교회에서 봉사도 하고 있고 가끔은 저에게도 도움을 줍니다.



주의 자녀가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주님은 그 자녀를 책임지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4:3 말씀은 항상 제게 큰 위로가 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내가 부를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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