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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6-05-02
 제목  <타임즈 강단> 그리스도인의 흔적
 주제어키워드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2510  추천수  21
그리스도인의 흔적



갈라디아서 6:11~18



진인문 목사 ( 하북감리교회 )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찌어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찌어다 아멘.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함께 일년 동안 사람들을 가르쳤는데, 제자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습니다.(행11:26)

안디옥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은 칭찬의 말이 아니라 멸시의 말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예수쟁이’에 해당되는 비아냥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인’, ‘예수쟁이’가 얼마나 좋은 뜻이 되었습니까?



아마 예수님 당시 ‘십자가’란 말은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신21 : 23)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은 죄인 중에서도 흉악한 죄인이었습니다.

누가 그런 십자가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본문 말씀 14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저주스럽게 여겼던 십자가를 자랑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아니면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두 관계를 회복시켰습니다.

본문 말씀 17절에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자기 몸에 예수의 낙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자랑스런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낙인이라는 수치스러운 말이 그리스도인의 손에 들려지면 영광스러운 말로 변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크든 작든 예수의 흔적을 가져야 합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는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 발전되었고 부흥되었습니다. ‘흔적’이라는 헬라어는‘스티그마’ 이고, 복수로는 ‘스티그마타’ 라고 합니다. 이 말을 다시 번역하면 ‘내가 내 몸에 예수의 상표를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서부 평원 지대에는 각 농장마다 각기 고유한 상표가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K 목장이라면 그런 영문 약자를 가지고 상표를 만듭니다. 그래서 소들이 섞여도 자기의 짐승을 찾아내기 위하여 짐승의 머리에나 등에 화인을 새깁니다. 유대인들의 몸에는 선민 이스라엘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할례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할례를 선민의 흔적으로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흔적이 있어야 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자라면, 예수 닮은 흔적이 어느 부분에라도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보아도, 남이 나를 보아도 예수 닮은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한 고난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회를 하다가 과로로 쓰러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상에서 “주님 제가 이렇게 과로로 쓰러진 것이 왜 입니까?”라고 원망을 했더니 기도 중에 응답하시기를 “나는 너희들을 위해 수십 번도 더 쓰러졌는데 겨우 한 번 쓰러졌다고 불평하느냐?”라는 마음의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그래서 회개했다고 합니다. 시골 어느 교회에서 한 청년이 은혜를 받아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어느 날 피투성이가 되어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목사님이 놀라 왜 그러냐고 물으니 “목사님 제가 전도지를 돌리는데 왜 남의 집에 쓰레기를 버리느냐”고 다짜고짜 때리기에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했더니“이 병신아 너나 받아라 하면서 떠미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어요.” 라고 했답니다. 찢어진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면서 목사님이 형제의 손을 잡고 “형제는 예수의 흔적을 가졌습니다.”라고 위로해 주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이러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분문 17절에서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선언합니다.

이 흔적은 참 신앙고백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당시에 낙인은 주인의 소유물임을 나타내는 표시였습니다. 로마제국이 발전 하게 된 것은 자유인 100만 명에 노예가 60만 명이 있어 노예를 사용함으로 발전한 나라였습니다. 한번 도망했던 노예는 다시는 자유인으로 보내지 않으려고 노예의 이마에 화인을 새겨 넣었습니다. ]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 된 바울’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 예수의 노예 된 바울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내가 내 몸에 노예의 흔적을 가졌노라’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만이 나의 주인이라는 고백입니다. 다메섹에서 만났던 예수 그리스도 그 분에게 자신의 모든 생애를 걸고 주인으로 모시고 살았습니다. 바울 당시 로마는 왕제를 ‘큐리오스’라고 불렀습니다. 황제 외에 다른 이에게 ‘큐리오스’라 부르면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을 ‘큐리오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만이 나의 주인 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분의 소유라는 고백입니다.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당신은 진정한 주님의 것이 되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소속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땅에 살고 있지만 하늘나라의 시민입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사는 목적이 다르고 종착점이 다릅니다. 바울은 롬 14 : 7 ~ 8절에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까? 여러분의 생명 / 물질 /세상 즐거움 이것들을 붙들고 내 것인 양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도난 플라스틱 공장을 인수하여 세계 제일의 공장을 일구어낸 ‘스탠리 탐’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사업가가 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부도난 플라스틱 회사를 인수 하였습니다. 최선을 다 해 보았지만 한해동안 많은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이 사업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됐습니다. 그는 변호사를 찾아가 법적으로 그 회사 주식 51%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돌려놓았습니다. 회사를 운영하여 크게 성공하였고 주식의 51% 이익금을 선교비로 쓰고 있다고 합니다. 오래 전에 온 국민의 가슴을 울리며 눈물을 흘리게 한 TV 프로가 있었습니다. 소위 ‘그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하며 벌어진 이산가족 찾기였습니다. 민족이 해방이 되었지만 남과 북으로 나누어지고, 부모 형제가 월남 했으나 뿔뿔이 헤어져 40년이 지났습니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얼굴도 변하고 서로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쉽게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은 몸에 지닌 점이나 흉터 등을 통해서였습니다.



우리는 그 어느 날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내가 너를 확신할 수 있는 흔적을 보여 다오”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보여 드리겠습니까? 나의 생명도/ 시간도 / 물질도 / 자녀들 까지 주님의 것이요 나는 그분의 소유임을 고백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 분이 마지막 남기고 가신 지상과업, 그분의 유언을 이루어 드리는 삶이야말로 그 분이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가라 아니면 보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의 시간, 나의 물질, 나의 땀을 그 분의 유언적 과업인 선교를 위하여 드리면서 이 땅에서 예수님 닮은 흔적을 만들어 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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