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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선교정보기타  작성일  2006-10-26
 제목  아직 끝나지 않은 종교개혁
 주제어키워드  선교칼럼  국가  S.Africa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5369  추천수  17




아직 끝나지 않은 종교개혁



종교개혁 489주년을 지나면서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수 있도록 신앙의 선조들이 얼마나 눈물을 뿌리며 기도하였고, 얼마나 마음을 조이며 고뇌하였을까를 생각하며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아니 우리 주님 오실 때까지 미완성일지도 모를 오늘의 종교 개혁의 과제를 나름대로 떠올려본다.



사도신경의 문제는 그냥 덮어 놔도 될 것인가



대부분의 장로교회의 예배의식에서 사도신경을 신앙고백으로 채택하고 있다.

사도신경의 기원, 형성 과정이나 역사성이 불명확하고 본질적으로 여러 문맥에서 비신학적인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천주교에서는 유독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 마리아에게 나시고’를 강조하여 이 부분에서 실제로 고개를 깊이 숙이는 것을 보면 이 신앙고백문의 초점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교회의 사도신경 번역에는 빠져 있지만 ‘지옥으로 내려가시고’라는 부분은 천주교의 연옥을 뒷받침하고, ‘거룩한 공회와’는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교회란 다름 아닌 오직 천주교만을 의미하고,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는 성도 간의 교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성자 숭배와 교제를 뒷받침하고 있다.



천주교와 똑같이 개신교에서도 이 사도신경은 기독교냐 아니냐의 척도로 또는 이단과 정통을 나누는 잣대로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혹자는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로만 카톨릭에서는 그렇게 하더라도 칼빈을 비롯하여 종교개혁자들이 긍정을 했고 전 세계개혁교회에서 채택하고 있는 이 고백문을 성경적으로 해석을 달리하여 사용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로 인한 더 큰 문제는 실제 기독교(개신교)가 천주교와 똑 같은 신앙고백을 사용함으로 결국 천주교와 개신교는 다른 것이 아니라 제도와 관행만 조금 다를뿐 동일선상에서 분리된 교회로 간주되고 만다.

흔히 천주교인이 개신교회로 옮길 때 개종으로 취급하여 세례를 받게하여 입교절차를 밟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영세를 받았기 때문에 마치 타 교회에서 이래한 유아세례 신자인 양 아주 자연스럽게 입교하는 행태가 그 한 예이다.

대한성서공회에서 천주교와 성경을 같이 출판해도 큰집과 작은집이 협력하는 하나의 프로잭트 성 사업정도로 이해함으로 여전히 성서공회는 성경출판을 독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방 종교와 타협해도 분노 할 줄 도 모른다. 혹시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슬슬 눈치를 살피는 비겁한 교회를 주님은 과연 어떻게 보시고 뭐라고 말씀하실까. 이러저런 면에서 사도신경의 고백이 비성경적 에큐메니즘의 한 매개체로 자리 잡고 있지는 않는지 파헤쳐봐야 한다.





연합과 일치의 본질이 무엇인가?



마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에 비텐베르그대학에 게시판에 95개 조항을 내걸어 사실상종교개혁이 폭발하였다. 1520년 7월 15일 교황 레오 10세는 파문장(破門狀)을 발포하여 루터로 하여금 그 주장을 철회하도록 60일간 여유를 주었다. 1520년 12월 10일 루터는 학생들이 지켜보는 비텐베르크대학교정에서 교황의 파문장을 불살랐다. 그 후 다수 공직자와 귀족들이 모인 보름스 제국회의 석상에서 “성경이 제시해주는 확실한 증거에 의해 증명되지 않는 한 주장을 철회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맞섰다. 이로써 철옹성 같은 중세 천 년의 암흑시대를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버렸다.

교회 연합이나 일치를 말할 때 개신교 내의 교파나 교단의 분열을 잇슈로 끄집어내어 부각시키는 척하지만 그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제스쳐에 불과하다. 단도직입적으로 교회의 연합과 일치라는 큰 깃발은 개신교내의 분열 문제 때문이라기보다는 개신교와 이방종교인 천주교가 손을 잡는 것을 말하고 루터나 칼빈 같은 이른바 교회분열주의자들에 의해 잘못 오푼 된 개신교라는 간판을 철거하고 세계교회(천주교)로 되돌아가라는 메시지임을 간파해야한다.



종교개혁 반 천년에 즈음하여 로마카톨릭(“세계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함)과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연합과 일치의 전위부대 격임)는 1968년이래 줄기차게 에큐메니컬운동을 전개하여 상당한 결실을 보이고 있다. 그 예로 루터로 상징되는 의화논쟁(義化論爭)에 종지부를 찍었고(2000년) 최근 한국에서 개신교의 루터교회와 감리교회 그리고 천주교가 이신칭의에 대한 신학적인 일치를 다시 확인 조율하였고 본격적으로 개신교와 로마카톨릭의 통합운동(“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에 미국 내 개신교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대거 앞장서거나 배서(背書)하였다. 연합선교(Cooperative Evangelism) “Billy Graham Association”, “The Trinity Broadcasting Network” "Promise Keepers", 이해와협력위원회(한국) 등을 전 세계적으로 풀 가동시켜 역사적인 종교개혁에 의해 야기된 단절을 무마시키고, 세계교회와 손을 잡는데 노력함으로 마침내 개신교의 죽음(The death of Protestantism)을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항간에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진리에 대한 항거였는데 21세기 종교개혁의 모토는 ‘사랑을 통한 교회 일치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분적으로 일리가 있지만 진리의 싸움이 다 끝나버린 양 무게 중심을 옮기는 것은 바로 사탄이 쌍수를 들고 바라는 일이다. 이름표를 달리한 교회가 얼마든지 있어도 성경의 빛 가운데 있다면 그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일치(Sameness)선상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격도 없는 친 카톨릭 이사들이 그럴듯한 논리로 마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최선봉의 사도인양 나팔을 분다면, 분명 이들은 성경말씀에 불순종하거나 정치와 종교라는 두 얼굴을 가진 천주교의 법과 교리에 무지한 자들로 교회 순결을 해치기 위해 침투한 사탄의 세작이 아닌지 자세히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영성운동과 심리학의 침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 국내외에서 유행하고 있는 ‘뜨레스디아스(스페인, Tres Dias)’로 소개된 이 운동은 로마카톨릭이 1960년대부터 전 세계에 보급한 프로그램이다. 주로 교회마다 이름표를 달리하여 3박 4일간 외부와 차단하고 자기 정체성(나는 누구인가)·침묵·인간관계 회복이나 내적치유·감수성훈련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물론 교육적으로 긍정적인 점이 없지는 않으나(유신 정권 때 새마을운동 교재로 이 프로를 교육기관마다 보급한 적이 있음), 문제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외면한 채(훈련기간 동안 거의 성경을 사용 안함) 상담 심리학에 기초하고 천주교의 피정에서 실시하는 프로와 거의 유사하거나 동일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딤전4:1)

혹자는 마치 이 프로그램이 21세기 목회의 마지막 대안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성경 속에 무진장한 보화를 마다하고 인위적인 어떤 프로를 여과 없이 무분별하게 목회 현장에 적용함으로 순진한 교인들에게 심리학적 마약을 성령의 권능인 양 주사함으로, 마치 ‘천주교 큰 형님이 역시 달라’ 하는 식으로 에큐메니즘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른바 기독교심리학(Christian Psychology) 또는 기독교 상담학(Christian Counseling) 같은 학문이 “오직성경”이 가르치는 방향을 무시하고 있다면 이 또한 샤마니즘의 현대적 한 양태(form)일 뿐이다.("T. A. McMahon의 “Berean Call”에서The basic theories of psychological counseling are contradictory to what the Bible teaches about the nature of man and God's solution for his mental, emotional, and behavioral problems.")

알파코스의 “성령의 만져주심”이라는 부분이 상당한 매력 포인트인 것 같다. 한번은 어떤 교회에서 이 과정 중에 있던 한 건강한 여성도가 목사의 안수도중 즉사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가족들의 이해로 별 탈 없이 사건이 마무리는 되었지만 이 한 죽음에 어떤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성령운동 , 성령쇄신운동(천주교), 영성계발운동 등이 과연 순수한 성경적 운동인지 그 본질, 과정, 방법, 열매를 분별하고자 하는 노력은 건강한 교회지도자의 마땅한 의무이다.

대배도의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을 강탈하려는 사탄의 주 무기는 이적, 신유, 기적임을 성경에 명백히 여러 차례 경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이 카리스마틱 운동에 한 눈을 파는 것은 가뜩이나 교회부흥에 어려움을 겪거나 뭔가 세상적인 것에 유혹을 받는 교회지도자들이 “ 말씀만 가지고는 안 되더라”라고 말하면서 일말의 오아시스 같은 인위적인 돌파구를 기대하는 심리도 문제이지만 이 어둠의 세력이 얼마나 극성스럽게 미혹하는지 완전히 헷갈리게 만들어버리는 교묘함을 이겨낼 장사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선교의 상황화와 혼합주의 난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랄프윈터(USCWM대표)와 그의 추종자들은 전방개척선교 (Mission Frontier) 전략의 하나로 “내부자 운동”(Insider Movement)을 강력하게 거론한다. 내부자 운동이란 예수 신앙에 의해 삶의 스타일이나 문화가 변혁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문화나 종교의 정체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윈터는 오늘날의 세계선교동향을 다음과 같이 코멘트 하였다. “ 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언제인가? 누군가가 찹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언제 말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는 “그의 이름이 아니라 열매로그들을 알지니 “라고 하였다. 이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어느 누가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두가 다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요 교회를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찰을 달지 않았다고 해서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한 예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나 아직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Messianic Jew”는 어떤가? 한편 자신들이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카톨릭은 어떤가? 보통 신앙의 입장에서 이들은 적어도 성경을 넘어섰거나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넓은 시야를 필요로 한다. 크리스천과 모슬렘이 함께 예배하는 시리아의 한교회의 예나, 힌두크리스천, 유대크리스천, 모슬렘크리스천이라는 라벨을 붙여 언급하기 시작했었다. 물론 카톨릭이나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등도 성경에서 조금 멀리 나갔을 뿐 예수를 믿는 신앙을 인정하는 넓은 시야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Mission Frontier Vol.22,No.2)  대체로 이들은 범 기독교적 관점에서 개신교를 뛰어넘어 독립교회, 카톨릭교회 그리고 정교회를 바라보는 넓은 시각 내지는 너그러운 관점이 필요한데 그이유로 그들이 적어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 중 상당수가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복음 선교의 우선점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한정국, KWMA)



이런 관점에서 내부자 운동을 말할 때 소위 무슬림 예수신자, 힌두 예수신자, 부다예수신자, 카톨릭 예수신자, 정교회 예수신자, 몰몬교 예수신자, 여호와의증인 예수신자, 등등으로 불리는 사례들 속에  본질적으로 하나님외에 다른 우상을 배격해야만 하는 신앙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 고백의 모습을 잘 떠올리려 하지 않는데 큰 문제가 있다. 저들의 말대로 이른바 서구의 틀(form)이라고 하는 교회 운동의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깨고 상황화가 철저히 잘되어 이리저리 세련되게 홍 길동이처럼 둔갑을 하고, 혼합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양심의 가책 따위는 느낄 필요도 없고, 전혀 못 느낄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을 마치 선교의 큰 흐름인양 이야기하며, 자칭 너그러운 시각, 넓은 시각, 하나님 왕국의 큰 통을 가진 자들이라고 할 때 뚜쟁이 짓을 일삼는 에큐메니칼 주의자들의 입에서나 흔히 들어 볼 수 있는 이야기로 놀라울 뿐이다.



이 내부자 운동은 기본적으로 창의적 접근지역인 모슬렘 권 선교필드에 초점이 주어진 맞춤전략의 하나로 계발된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이 기독교의 아주 기본적인 정체성을 짓밟으면서까지 선교의 상황화를 추구한다면 본질과 수단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운동이 윈터 자신도 우려했듯이 혼합주의나 옅은 믿음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합리화시킴으로 전투하는 지상교회의 순교신앙을 욕되게 하고, 복음과 거리가 먼 이단에게까지 정통성을 부여해주는 극히 위험하고  비복음적, 비신학적 사상으로 경계하는 것이다.



이 운동은 2000년간 진행되어온 교회운동이 마치 거추장스런 서구풍 (Western Form)인양 동일시함으로 현대 선교 필드의 여기저기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는 서구 선교의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고민과 노력의 하나로 엿보이나 “교회 없는 기독교”(Churchless Christianity)운동이 새로운 대안인양 무분별하게 떠벌림으로 선교 전략에 크게 혼란을 가져올 뿐 만 아니라 마침내 교회의 세계 선교의 역량을 무력화시키고 말 것이다.



우리는 여리고 성의 라합이나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 같은 숨겨진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중에 있음을 믿는다. 선교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랄프윈터의 지적에 부분적으로 공감하나 참 그리스도인의 잣대를 불필요하게 카톨릭이나 기독교 이단이나 다른 종교에 까지 들이대면서 자칫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려는 것 과 같은 어리석고 위험한 발상으로 간주한다.

 

복음의 연속성(連續性)문제를 이론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하나의 거대한 스팩트럼 상황화(C1,C2......고무줄 같은 만능 분류법?)라는 아주 편리한 척도로 분류하여 변증을 하면서 다른 이방종교나 성경말씀의 괘도에서 이탈한 혼합된 신앙운동까지도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 거대한 흐름이라고 운운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진단이다. 

도대체 무엇이 넓은 시각이고 , 무엇이 하나님의 시각인가? 성경대로 오직 예수를 얘기하면 편협하고 배타적이어서 하나님의 시각이 아니고, 개신교를 뛰어 넘어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에큐메니칼 시각이어야 너그러운 우주적 하나님의 시각인가? 그들 중에 상당수가 비 성경적, 비 복음적 모조품 예수를 부르짖어도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선교할 필요가 없는 양 말하는 그 논리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우리는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린 세대에 살고 있다. 누군가 오늘의 교회를 혼수상태·무열의(無熱意)·혼란·오염·타협·묵인·방관 상태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였다. 다른 무엇이 아닌 성경 진리의 무지로 인해 마비된 것이다. 예수님의 지적대로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함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융통성이 많아서인지 이교 사상에 감염되고 타락된 것을 인식하려 하지 않는다. 심각한 세속의 오염으로 절름거리면서 성경의 진리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세속의 신학, 지혜, 방법 등 인본주의 수단에 의해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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